[머니위크 커버]소비의 혁신 '쉐어링'/ 빌리는' 개념 아닌 '공동소유'
"소유의 시대는 끝났다." 세계적인 철학자 제레미 리프킨이 '소유의 종말'을 선언한 것이 2001년이니 벌써 10년 전이다. 얼마나 으리으리한 집을 갖고 있는지, 비싼 차를 타고 있는지, 명품 가방을 몇 개나 소유하고 있는 지로 '나'를 증명하는 시대는 끝났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다음 시대는 아무 것도 갖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시대가 오는 걸까. 일부는 맞지만 또 일부는 틀리다. 제레미 리프킨은 '접속의 시대'라는 말로 다가올 시대를 표현했다. 내가 갖고 있는 CD로만 음악을 듣는 건 이미 오래 전 얘기. 지금은 음원사이트만 통하면 자유롭게 어떤 음악이든 찾아 들을 수 있다. '내 것'이 아니더라도 원한다면 언제 어디서든 해당 물건을 사용할 수 있는 '접속'이 가능해지는 시대라는 얘기다.
이러한 일은 온라인에서만 해당되는 얘기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오프라인에서도 '접속의 시대'는 얼마든지 유효하다. 요즘 자주 언급되는 '협력적 소비'(Collaborative Consumption) 또는 '공유경제'(Sharing Economy)가 바로 그것이다.

◆내 차, 내 집, 내 시간… "놀리지 말고 같이 쓰자!"
'물품을 소유의 개념이 아닌 서로 대여해주고 차용해 쓰는 개념으로 인식해 경제활동을 하는 것.' 지식백과사전에서 공유경제라는 단어를 찾으면 나오는 정의다. 어딘지 거창하고 복잡하지만, 쉽게 말하면 필요한 물건을 '같이 쓰자'(쉐어링)는 얘기다.
이정민 씨(31)는 늘 읽고 싶은 책이 많다. 그러다 보니 서점에 들르면 책을 서너권씩 충동구매하기 일쑤다. 어느새 책장엔 한가득 책이 꽂혀 있지만, 정작 읽지도 않은 책이 더 많다. 먼지 쌓인 책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제대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씨는 자신의 책을 일종의 가상 도서관에 보낸다. 다른 사람들의 책도 함께 모인다. 이씨가 책을 읽고 싶을 땐 언제든지 그곳으로 찾아가면 된다. 자연스레 이씨는 집안 무겁게 자리잡았던 책장의 공간을 절약하는 효과도 얻었다. 내가 읽지 않는 책은 다른 사람이 꺼내 읽기도 하고, 나 역시 다른 사람의 책을 자유롭게 꺼내 읽는다. 국내 시사IN에서 주관하고 있는 '기적의 책꽂이'나 장웅 아이에스비엔샵 대표가 운영 중인 '국민도서관 책꽂이'가 대표적인 예다.

단지 물건만 같이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시간이나 재능, 때로는 경험도 공유의 대상이다. 2008년 미국에서 론칭한 '태스크 래빗'이 대표적이다. 일종의 노동력을 주고 받는 이곳에서는 어떤 일도 공유의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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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한 신연정 씨(29)는 작은 원룸에 어울릴 조립식 행거를 주문했다. 그런데 막상 조립을 하자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바쁜 학교 공부에 행거 조립에 낑낑 거릴 시간도 없다. 이럴 때 태스크 래빗에 글을 올린다. 'OO 근처, 행거 주문해주실 분. 보수 OO달러'. 곧 이웃으로부터 연락이 온다. 신씨 대신 이웃주민이 자신의 시간과 기술을 투자해 행거를 설치해주는 대신 소정의 보수를 받아가는 식이다. 혹은 신씨가 한국음식을 대접하는 등 반드시 돈으로 보수를 주고받지 않고 그 대신 다른 재능을 나누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렌트·심부름센터와 뭐가 다르지?
이와 같은 개념의 '쉐어링'은 대여나 심부름센터와 무엇이 다른 걸까. 쉐어링의 개념은 어느날 갑자기 생겨난 새로운 것이 아니다. 크게 보자면 예전 우리 민족들의 두레나 품앗이가 바로 이 같은 모델의 뿌리라 할 수 있다. 쉐어링 모델과 대여서비스를 구분 짓는 결정적인 차이 또한 바로 이것이다. '소비자의 참여'가 절대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대여서비스는 중간 사업자가 필요한 물건을 구비해 놓고 대여료를 받는다. 대여가격을 결정하는 사람도 사업자이고, 중간에서 이득을 취하는 사람도 사업자다. 그러나 쉐어링의 모델은 소비자들이 직접 자신의 소유를 나누며 콘텐츠를 늘려간다. 그 콘텐츠가 많아질수록 참여하는 사람들 역시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가치를 누릴 수 있다. 국내 쉐어링 모델이 비즈니스 플랫폼뿐 아니라 공동 커뮤니티와 같은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의 루스큐브는 빈 사무실을 빌려줄 수 있는 회사와 이곳에 입주할 벤처창업가들을 연결해 주는 업체다. 세계 각지의 기업들은 루스큐브를 통해 놀고 있는 사무실을 기꺼이 창업가에게 내어준다. 대신 이 기업들이 받는 보상은 벤처창업가들의 기술력이다. 만약 마케팅 전문회사에서 빈 책상 두어개를 웹 디자인전문업체에 빌려준다면 그 대가로 웹디자이너들이 이 업체의 홈페이지를 멋지게 제작해주는 식이다. 더 많은 공간과 더 좋은 기술자가 참여할수록 이를 통해 소비자들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도 훨씬 커지는 '윈-윈' 모델이 완성되는 셈이다.
물론 이 같은 쉐어링이 가능해진 데는 SNS 등 인터넷 네트워크의 발전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 집에 필요 없는 공구를 이웃집 철수에게 빌려주거나 또 외국인 친구의 한국관광 가이드를 해주는 일은 '아는 사이'에만 가능한 물물교환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서로의 필요를 말하고 이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새로운 통로가 생긴 것이다.
김경훈 한국트렌드연구소장은 "나에게 필요한 것이 생겼을 때 예전에는 내 돈을 들여 직접 구매해야 했다면 지금은 SNS 덕에 그 해결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며 "지인이 아니어도, 거리가 멀어도 서로 필요한 것을 손쉽게 트위터 등을 통해 요구하고 이를 해결하는 것이 일반화되면서 공유경제의 효용성은 앞으로 더욱 주목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로운 공유, 돈보다 중요한 건 '신뢰'
지난해 7월, 미국의 한 여성이 일주일 동안 해외출장을 가면서 자신의 빈집을 내놓았다. 빈집을 놀리는 대신 짧은 기간이나마 숙박비나 벌어보자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일주일 뒤 돌아온 그는 난장판이 된 집안풍경에 아연실색했다. 중요한 물건이나 서류는 이미 도둑맞은 뒤였다.
대표적인 미국의 공유경제 서비스 모델인 에어비엔비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이미 창업 3년만에 객실 수에서 호텔 체인인 힐튼을 앞지를 만큼 안정적으로 시장에 자리잡은 업체였지만, 이 사건으로 신뢰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것이다. CEO인 브라이언 체스키는 재발방지를 약속하고 소비자들의 적극적인 의견을 통해 모두 40여개의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았다.
에어비엔비에서 내놓은 해결책은 바로 '평판'이었다. 내 집을 빌려줄 사람을 고르는 선택권은 엄연히 나에게 있다. 그러니 어떤 사람과 거래를 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권을 철저하게 보장해준 것이다. 예컨대 페이스북에 믿을 만하다는 추천을 받는 기능을 만들어 놓고, 이 추천수를 참고해 거래를 결정하도록 한 식이다.
이 같은 평판을 중심으로 한 거래는 에어비엔비뿐 아니라 대부분의 공유경제 모델에서 마찬가지로 통용된다. 실제 국내 아동의류 공유서비스인 키플의 경우도 옷을 기부하는 사람은 물론 받는 사람으로부터도 평판을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통해 공유서비스의 품질을 유지하고 있다. 쉐어링 모델에서 돈보다 귀한 것은 신뢰로 쌓은 좋은 '평판 한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