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고용 앞장서는 기업들-3]한수원 입사한 조상연 씨 "고졸 신화 만들겠다"
#중학교 3학년, 인문계고와 실업계고 진학을 놓고 고민했다. 성적은 반에서 10등 내외였다. 대학을 가기 위해선 인문계를 선택해야지만, 걱정이 앞섰다. 우선 고교 3년 동안 학원비가 부담이었다. 가정 형편상 1년에 1000만 원에 이르는 대학 등록금도 맘에 걸렸다. 무엇보다 명문대를 나온다고 해도 취업이 안 되는 사회 분위기가 걱정이었다.
결국 실업계고 진학 후 취업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부모님도 적극 지지해 줬다. 실업계고 중에선 상고보다 공고가 끌렸다. 앉아서 일하는 단순 사무직보다 역동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상위권 성적 덕분에 매년 수 십대 일의 경쟁률을 자랑하는 실업계 명문 수도전기공고에 합격했다.
입학 후 기계 다루는 게 적성에 맞다는 생각을 했다. 3년 동안 기계분야를 열심히 공부한 끝에 명문대학 출신들도 들어가기 힘들다는 한국수력원자력에 고졸 공채로 입사했다. 그에게 '수도전기공고 사상 최초 여성 한수원 입사자'란 별칭이 붙는 순간이었다. 올해 초 한수원 고졸 공채에 당당히 합격한 조상연(20세, 여자) 씨 얘기다. 조 씨는 현재 한수원 고리원자력본부 신고리제1발전소 운영실 발전팀에서 일하고 있다.
조 씨는 여자였지만 펜보다 기계 잡는 걸 좋아했다. 직접 현장을 뛰며 원전 관련 기술을 익히는 것도 재미있었다. 여자라고 내빼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남자들보다 섬세하게 기계를 다룰 수 있다고 자신했다.
"사무직이 적성과 맞지 않았습니다. 활동적인 업무를 하고 싶었고, 상고보다 공고를 가게 된 이유였죠. 3년 동안 기계과에서 많은 걸 배우고 현장에 나가서 꼭 인정받는 기술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 조 씨는 왜 한수원을 택했을까. 한수원은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원전을 운영하는 특수한 조직이다. 원전이라는 특수성 탓에 밤샘 근무도 많고 고된 업무도 많다. 그만큼 여자인 조 씨에게 부담이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는 한수원이 원자력 분야를 개척해 명실상부 국내 전력생산에 가장 큰 기여를 하고 있는 발전회사라고 자부했다. 원자력은 전력그룹사 발전 계열에서 기저 부하(base load)를 맡고 있는 만큼 그 필요성과 우수성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생각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남부발전에서 화력분야 최연소 여성 발전조종사가 된 고교 선배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발전 업무에 투철한 사명감으로 무장한 선배를 보고 발전사에 취업하기로 맘먹었죠. 그런데 원전이 화력이나 다른 분야보다 전망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한수원을 선택했습니다. 지금은 제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도 재미있고, 제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라는 확신도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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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씨가 말하는 한수원 합격 비결은 뭘까. 최근 국민들의 많은 관심 속에서 안전 의식이 강조되고 있는 발전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빠른 대처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그런 직원을 뽑고자하는 회사의 인재상에 자신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한수원이 글로벌 에너지 리더로 도약을 꿈꾸고 있는 만큼 다양한 어학 실력을 갖춰 준비된 인재의 자질을 어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 씨는 아직 우리 사회가 학력을 중시하는 풍조가 많지만, 자신이 고졸 출신이라는 것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입사 후 차별 대우를 받은 적이 없어서다. 회사에서 고졸 출신 선배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다른 기업에 비해 고졸 직원을 이해하고 배려해주는 문화가 형성돼 있음을 확인하기도 했다.
"저는 주변에서 고졸 출신이란 편견보다, 직장 생활을 일찍 시작한데 대한 부러움의 시선을 받고 있습니다. 스스로 고졸 입사자란 걱정을 하는 것보다 신입사원다운 열정으로 매 순간을 보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고졸 출신 선배들이 적극적으로, 열심히 배우려는 자세로 회사 생활하면 아무런 차별 없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조 씨는 자신처럼 고졸 출신들이 사회에서 성공해야 학벌 중심의 사회가 변할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등 정부가 최근 '열린 고용'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이게 우리 사회의 학력 중심 문화를 없애고 능력 중심의 문화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이런 분위기가 잠깐 반짝하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사회 전반에 정착되길 기대하고 있다.
그는 정부 의지도 중요하지만, 기업들이 사내 대학이나 사이버대학 등 취업 후 공부가 하고 싶을 때 다시 대학에 갈 수 있도록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고졸자들을 처음 채용하는 기업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테지만 그런 시행착오를 통해 고졸자들의 능력 배양과 사내 분위기 조성에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얘기다.
"한수원은 고졸 직원들에 대한 시스템이 잘 마련돼 있습니다. 처우도 좋고 본인 의지만 있다면 대학 진학 등 자기계발을 할 수 있도록 적극 돕고 있죠. 이런 이유로 기획재정부에서 한수원을 고졸 채용 우수 기업으로 꼽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조 씨는 고졸 취업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먼저 주위의 시선에 얽매이지 말기를 당부했다. 또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도전하기를 주문했다. 학력을 중시하는 사회의 시선과 그것에서 비롯되는 주변인들과의 갈등, 그 무엇도 자신의 인생을 결정짓는데 첫 번째 요소가 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저도 여자가 원전 분야에 진출한다는 것에 대한 많은 염려의 시선을 받아왔지만 부모님의 응원 덕분에 이겨냈습니다. 대학생활은 4년, 직장생활은 40년입니다. 그러니 취업을 준비한다면 내 40년 인생을 걸어야 합니다. 인생의 반을 결정짓는데 나 자신의 뜻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게 정했다면 나 자신을 믿을 뿐만 아니라, 남도 자신의 선택을 믿고 지지해주게 될 만큼 커가겠다는 생각으로 전념해야 합니다."
조 씨는 끝으로 고졸 출신도 사회에서 당당히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학벌이나 배경이 아닌 실력으로 정상에 서 하나의 롤 모델이 되겠다는 얘기다.
"전력 수요량이 계속 증가하면서 정전 사태 등 전력 공급에 대한 어려움이 많습니다. 발전 현장에서 안정적으로 전기를 만들어 국가 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또 고졸 출신 후배들이 들어오면 저를 롤 모델을 삼을 수 있도록 이 분야에서 성공한 엔지니어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