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 대신 일자리만 뽑힌 대불공단

'전봇대' 대신 일자리만 뽑힌 대불공단

대불공단(전남영암)=양영권 기자
2013.06.12 05:05

[창간기획:세계는 일자리 전쟁, 우리는…]<1부, 2-2>, 불황에 울고 탁상행정에 또…

대불국가산업단지에 있는 한 선박 블록 제조업체 공장. 한 켠에 선주 측의 요구로 인도가 미뤄진 선박 블록이 쌓여 있다. 사진=양영권 기자
대불국가산업단지에 있는 한 선박 블록 제조업체 공장. 한 켠에 선주 측의 요구로 인도가 미뤄진 선박 블록이 쌓여 있다. 사진=양영권 기자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중소기업청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고위 인사가 한 달이 멀다 하고 다녀갑니다. 하지만 다녀가면 그뿐 업체들의 어려운 사정이 해결되는 게 없어요."

지난 11일, 전남 영암군 대불국가산업단지에서 만난 소규모 선박 제조업체 대표가 기자에게 털어놓은 말이다. 그는 "중소기업의 어려운 상황을 듣고 있다는 시늉을 보이기 위한 '할리우드 액션'뿐"이라고 꼬집었다.

대불공단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 대형 트레일러의 이동을 막는 '전봇대'를 언급해 화제가 됐다. '전봇대'가 제조업 규제의 상징이 되자 정치인과 공무원, 금융당국 관계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곳은 현재 빈사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체 입주 업체의 73%를 차지하는 조선업체들이 글로벌 경기 불황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으로 대불공단에서 휴폐업에 들어간 업체는 11개. 국가산업단지와 외국인투자지역을 합한 전체 295개 업체의 3.72%에 달한다. 작년 한해 동안은 9개였는데, 벌써 작년 수준을 추월했다. 1분기 생산은 전년 동기보다 5.6% 감소했다.

자료 = 한국산업단지공단
자료 = 한국산업단지공단

기자가 찾은 중견 선박 블록 제조업체 대상중공업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이 업체는 배의 선수·선미 구조물을 만들어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에 납품한다. 그나마 대형 업체에 납품을 하기 때문에 사정이 나은 편이다. 하지만 3만8000여 평을 차지하는 공장 부지의 상당 부분은 비어 있다. 한참 분주하게 일할 시간인 오전 11시였지만 근로자들의 움직임도 뜸했다. 일부 완성된 선박 블록이 한쪽에 쌓여 있었지만 선주사들이 경기 부진 이유로 인도 연기를 요구해 아직 납품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10년 한창 잘 나갈 때는 자동차들이 도로 양 쪽에 2열로 주차 돼 있어 교통 체증도 심했어요. 모두 출근하는 근로자들이나 바이어들이 타고 온 것이었습니다."

문제균 대상중공업 대표는 자동차가 뜸한 왕복 8차선 도로 '나불로'를 가리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업체는 한 때 10개의 협력사와 함께 직원 500명까지 고용했지만, 현재 300명 수준으로 줄인 상태다. 대부분 일용직 형태의 근로자들을 먼저 내보내야 했다. 이들은 대부분 고용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1분기 대불공단의 고용은 전년 동기보다 2.9% 감소했다. 하지만 실제 감소율은 수십 %에 달한다는 게 현지 업체들의 설명이다.

휴폐업 업체도 실제로는 파악되지 않는 업체가 더 많다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름을 공개하기를 원하지 않는 한 소형 조선 부품업체 대표는 "금융회사가 무서워서 휴업을 했다는 얘기는 못하지만 일은 없이 회사 문만 열어두고 있다"며 "우리같은 업체가 20, 30%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불공단은 전남 서남권의 거의 유일한 공업 밀집 지역이다. 이들 업체들의 불황은 인근 영암과 목포의 경기에 직접적인 타격을 준다. 조선 경기가 호황일 때, 인근 목포의 하당 지역 모텔들은 방잡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몰려드는 바이어들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곳 역시 바이어 감소와 함께 불경기를 맞고 있다. 하당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박모 씨는 "기업 회식 팀을 받아본지가 가물가물하다"고 말했다.

대불공단 입주 업체들의 어려움은 1차적으로 조선 경기 불황 때문이지만, 정부의 현실을 모르는 행정도 시름을 깊게 하고 있다.

한 조선업체 관계자는 "정부의 금융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고용촉진특구 지정을 요청했지만, 당국에서는 4대 보험 가입률 등을 내세우며 거부하고 있다"며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게 외국인 근로자 '쿼터'를 늘려달라고 하는데, 이 역시 한국의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줘야 한다는 이유로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형 조선사와 달리 중소형 조선사들은 일이 힘들고 임금은 낮은 '3D' 업종이기 때문에 청년들이 찾지 않고, 업체들은 신용불량자라도 고용해야 한다는 현실을 모르는 탁상행정"이라고 덧붙였다.

불황에 울고 규제에 또 우는 대불공단 입주업체들이 어려워면서 일자리는 줄고 지역경제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관련 기사

양영권 기자

머니투데이 논설위원입니다.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