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세계는 일자리 전쟁중, 우리는...]<3부 1-2>히든챔피언 리탈, '사람'이 가장 큰 경쟁력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여를 달리면 인구 2만의 소도시 헤르본에 도착한다. 인클로저(Enclosure) 시스템 분야에서 세계 1위 기업인 '리탈(Rittal)' 본사가 위치한 곳이다.
지난달 19일 히든챔피언으로 알려진 리탈을 둘러보며 가족기업으로 출발한 작은 제조업체가 어떻게 매출 3조원이 넘는 글로벌 리딩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를 직접 확인했다.
◇'사람'이 최우선 가치◇
그 답은 '사람'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인클로저는 컴퓨터 서버나 데이터 장비 등을 보관하는 산업용 캐비닛. 안에 들어가는 장치들이 100%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최적화된 냉각시스템과 효율적인 배전설비 등이 필요하다. 그만큼 뛰어난 기술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리탈은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통해 이를 확보하고 있다. 아카데미 프로그램은 기존 직원들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인력개발 제도. 재교육을 통해 직원 각자의 기술이나 노하우를 살려 고급 인력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교육 내용은 기술적인 분야 외에도 비즈니스·컴퓨터·언어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교육은 근무의 연장으로 인정돼 근무시간에 교육을 받으면서도 급여는 100% 지급된다. 리탈은 이 프로그램에만 연간 100만유로(한화 약 15억원)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
볼프람 에버하르트(Wolfram Eberhardt) 리탈 홍보담당 이사는 "인클로저 생산공장에는 반드시 사람의 손으로 해야만 하는 작업이 많아 질 좋은 숙련 노동자가 굉장히 중요하다"며 "재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안정적인 인력 공급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만 2300여명, 프로그램을 처음 도입한 이래 지금까지 11년간 총 3만6000여명 이상이 재교육 혜택을 받았다.
회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도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사람'.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매출의 30%가 급감하는 위기 속에서도 리탈은 단 한 명의 직원도 해고하지 않았다. 숙련된 직원들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대신 노사 간의 협의를 통해 근로시간과 급여를 일시적으로 줄여 고통을 분담하는 방식으로 위기에 맞섰다. 다행히 오래지 않아 위기를 극복하고 회사는 정상화될 수 있었다. 리탈은 기존 인력이 그대로 회사에 남아 있었기에 경기회복 이후 늘어나는 수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고 노사 간의 신뢰도 굳건히 다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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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싸도 팔린다"···최고의 기술과 서비스◇
1961년 시골마을의 작은 가족기업으로 출발한 리탈은 현재 전 세계 15개 공장과 64개 지사로 규모가 커졌다. 근무하는 직원 수만 1만1500명에 달하고, 연매출은 22억유로(한화 약 3조3000천억원)가 넘는다.
눈부신 성장의 배경에는 기술 혁신이 있다. 독창적이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이 늘 진행 중이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경쟁자가 있고, 특히 중국의 경우 굉장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한발 앞서 기술 혁신을 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기술 혁신을 추구하다보니 자연스레 고급 기술 인력에 대한 필요성이 따라왔다. 이는 결국 앞서 언급한 아카데미 프로그램 등의 직원 재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저가 브랜드와의 차별화 전략 역시 리탈의 자랑거리. 리탈이 생산하는 인클로저 제품은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만큼 가격이 비싸다. 이를 상쇄하기 위해 전 세계 어느 곳이라도 주문한 제품을 48시간 안에 서비스 할 수 있는 운송 시스템을 갖췄다.
에버하르트 이사는 "리탈이 슬로건을 통해 강조하는 세 가지가 있다. 'schneller(더 빨리)·besser(더 좋게)·uberall(어디나)'이 바로 그것"이라며 "천편일률적인 제품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고 각 국가별로 해당 시장에 맞는 제품을 개발해서 최적화된 제품을 공급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가족, 토착기업의 힘◇
대부분의 독일 히든챔피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리탈 역시 가족기업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1961년 회사를 처음 창업한 선대회장으로부터 리탈을 물려받은 현 사장이 40년째 경영을 이어오는 중이다.
리탈 측이 꼽은 가족기업의 가장 큰 장점은 신속성이다. 의사결정체계가 일원화 돼 있어 판단에서 대응까지 진행되는 과정이 굉장히 빠르다. 이는 자회사 혹은 거래처와의 신속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 시간 지연으로 발생하는 비효율을 최소화한다.
리탈은 자회사와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e-plan'이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서로가 대등한 위치에서 의견을 주고받으며 제품의 품질을 개선해 나가기 위해서다.
전체 직원의 절반가량인 5000여명이 지역주민일 정도로 지역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토착기업이라는 점도 특징. 3대가 모두 리탈에서 일하는 사례가 있을 정도로 지역사회와 뿌리 깊은 신뢰관계가 형성돼 있다.
지방분권화가 잘 돼 있는 독일에서 토착기업은 지역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중요한 통로다. 큰 도시로 나가 고등교육을 받은 뒤 리탈에서 일하기 위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에버하르트 이사는 "헤르본에서 리탈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장 먼저 추천하는 직장일만큼 로열티와 자부심의 상징"이라며 "전국에 존재하는 수없이 많은 토착기업들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독일 제조업의 힘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자리라면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 있어야 한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한국. 지역 토착기업으로서 히든챔피언에 오른 리탈은 수도권 집중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이 부러워해서만은 안될, 반드시 이뤄야 할 성공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