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3월 3일 오전 3시, 서울 강서구 한 건물 관리사무실 앞에서 '건물주' 60대 송모씨 시신이 발견됐다. 송씨는 사건 발생 건물을 포함해 예식장, 다세대주택 등 수천억원대 재산을 소유한 재력가였다. 범인은 두 달 만에 붙잡았지만 살인을 청부한 의뢰인이 따로 있었고 그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사회에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평소 '바른 생활' 이미지로 알려져 있던 당시 현직 시의원 김형식이었다.

CCTV 영상을 토대로 신원 조회한 결과 경찰은 팽모씨(사건 당시 44세)를 용의자로 특정했다. 팽씨는 범행 사흘 만에 중국으로 출국해 도피 생활을 시작했다. 경찰은 중국 공안과 공조 수사하며 그를 추적했고 범행 두 달 후 중국에서 잡을 수 있었다.
경찰은 팽씨가 피해자와 일면식도 없음에도 살인을 저지른 걸 이상하게 여겼다. 경찰의 추궁이 이어지자 팽씨는 "김형식 의원이 살인을 청부했다"고 고백했다.
팽씨와 김형식은 십년지기 친구였다. 그러나 김형식은 빚 탕감을 제안하며 2012년부터 팽씨에게 송씨를 살해할 것을 요구했다. 사건이 발생한 2014년 1월부터는 살해 도구를 건네며 본격적으로 살인을 압박했다.
친구에게 살인을 교사했음에도 김형식은 자신의 안위만 챙기기에 급급했다. 그는 팽씨가 중국 도피 생활을 하던 시기 중국 공안에 잡히면 목숨을 끊으라고 지시했다. 실제로 팽씨가 공안에 잡힌 후 네 차례에 걸쳐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자 김형식은 "그것도 못 하냐. 너랑 네 가족을 전부 죽여야 직성이 풀리냐"고 질책했다.
팽씨가 사건 내막을 자백한 것도 자신을 몰아세우는 김형식과 달리 경찰은 송환 당시 "고생 많았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자"며 안쓰러움을 드러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운동권 출신으로 알려진 김형식은 4선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2010년에는 처음으로 지방선거에 당선됐고 2014년 재선에 성공했다.
그는 시의원 활동 당시 반바지를 입고 의회에 출근하거나 같은 당 소속이었던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게 "부끄럽다", "보편적 복지가 확대하지 않았다"며 일침을 가하는 모습으로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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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올바른 행실로 주변 신망을 받고 있었기에 김형식이 살인 청부에 연루됐다는 소식을 접한 정치권은 당혹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김형식은 '바른 청년'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가 송씨의 살해를 교사한 이유도 송씨로부터 빌딩 용도변경 대가로 5억여원의 금품과 접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송씨가 금품수수 사실을 폭로하겠다며 협박하자 김형식은 정치생명이 끝나는 것이 두려워 친구 팽씨에게 전기충격기와 손도끼를 건넸다. 경찰서 유치장에서조차 "증거는 네 진술뿐이니 절대로 겁먹지 마라. 지금은 무조건 묵비권"이라는 내용의 쪽지를 보냈다.

김형식에 대해 1심 재판부는 "믿고 따르는 친구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고 살해를 교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구체적으로 살인 방법을 모의하고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했다"며 "망설이는 팽씨와 2년간 지속해서 연락해 범행하도록 압박하고 범행 도구까지 구입해 건네줬다"고 지적했다.
2심 재판부 역시 "(팽씨가)자랑스럽고 고마운 친구, 사회적으로 성공한 김형식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고 김형식을 괴롭히는 송씨가 미운 가운데 우정이 그릇되게 발현돼 청부살인을 승낙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2015년 8월 19일, 김형식은 무기징역을 최종 선고받았다.
뇌물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3년이 추가로 선고됐으며 뇌물로 받은 5억여원은 전액 추징됐다.
팽씨 역시 중형을 피할 수 없었다. 재판부는 "살해 방법이 너무 잔인해 중형을 선고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면서도 팽씨가 김형식의 압박에 의해 범행한 점, 뉘우친 점, 유족이 엄벌을 탄원하고 있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징역 20년형을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