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이스라엘과 손잡고 이란을 공습, 이란 이슬람 신정 체제의 정점인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를 제거하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80년 동안 이어진 국제법 절차 기반의 다자주의 국제질서 붕괴가 가속화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지난 1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축출에 이어 이란 최고지도자 표적 타격까지 미국이 휘두르는 힘의 논리 앞에 유엔 등 국제기구는 물론, 유럽 동맹국들도 무력한 모습이다.
56일의 간격을 두고 단행된 두 작전은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우는 '힘을 통한 평화' 전략이 점점 더 과감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이 위협으로 규정한 정권과 지도자는 군사적이든 비군사적이든 언제라도 '핀셋 타격'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에 개입했던 이유가 미국의 핵심 이익인 이민통제, 마약근절, 베네수엘라 원유 통제라는 점을 숨기지 않았던 것처럼 이란 공습에서도 이란 핵시설 제거와 미사일 산업 궤멸 외에 신정체제 종식, 친미정권 교체라는 미국 우선주의 목표를 가감없이 공표했다. 이번 공습이 무력을 통해 중동의 지정학적 질서를 미국의 입맛에 맞게 재편하겠다는 노골적 패권 선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제법과 기존 동맹 질서보다 미국의 이익을 우위에 두고 이를 실현할 군사력을 과시하는 '트럼프식 질서'의 민낯이다.
국제사회에서는 마두로 대통령 축출 이후 트럼프 행정부가 견제 장치 없이 폭주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이미 커질대로 커진 상태였다. 지난 2월 독일 뮌헨에서 개최된 뮌헨안보회의를 앞두고 발간된 120쪽 분량의 보고서 '파괴의 한가운데서'에도 트럼프 행정부가 2차 대전 종전 이후 미국과 유럽이 구축해온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해체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이 담겼다. 마두로 대통령 축출 외에도 △그린란드·캐나다 등 동맹국 영토 위협 △국제회의 탈퇴 및 예산 삭감 △일방 관세 부과 등을 두고 트럼프 2기 미국이 '자유세계의 지도자'라는 역할을 포기했다는 말이 나왔다.
더 심각한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가 서반구를 미국 우선주의 기조 아래 재편하려는 정책이 중국과 러시아 등에 미칠 영향이다. 베네수엘라에서 이란으로 이어진 미국의 행보는 중국과 러시아에도 같은 명분을 제공할 수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일본 열도에서 대만을 지나 필리핀, 보르네오섬까지 이어지는 제1도련선 내부 지배권을 트럼프 행정부와 동일한 논리로 정당화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과 달리 특정 지역을 전략적으로 선별해 군사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지도부를 직접 타격하는 접근법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마가(MAGA) 세력이 지향해온 군사적 자제와 비용 절감 원칙의 산물이라는 평가다. 최소한의 부담으로 정치적 압박을 극대화해 원하는 것을 확보하겠다는 의중이 드러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마저도 미국 단독 작전 대신 이스라엘과 손을 잡고 미국이 이란의 핵·미사일 시설을, 이스라엘은 이란 지도부의 거처를 타격하는 방식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트럼프 행정부와 불편한 관계인 콜롬비아, 쿠바 등의 지도부에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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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지상군 없이 지도부만 도려내는 방식이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대로 흘러갈지는 미지수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미 정치매체 노터스와 인터뷰에서 "미국은 마두로를 납치했지만 베네수엘라 정권 전체를 전복하지는 못했다"며 "지도부 제거와 체제 변화는 별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장기전으로 가서 이란 전체를 장악할 수도 있고 2∼3일 후 공격을 그만둘 수도 있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고민을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