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UP스토리]박진영 엔닷라이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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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은 수백만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야 비로소 하나의 동작을 익힌다. 문제는 그 실패를 현실 세계에서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이다. 수억원짜리 휴머노이드가 넘어지면 하드웨어가 부서지고 옆에 선 작업자가 다칠 수 있다.
그래서 로봇을 가상 세계에 먼저 넣는 방식이 피지컬 AI(인공지능)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 실제처럼 구현한 시뮬레이션으로 수천번 넘어뜨려 보고 검증이 끝난 뒤 공장 바닥을 밟게 하는 것이다. 이때 승부를 가르는 것은 시뮬레이션 자체가 아니라 그 안을 채울 '물건'이다.
하지만 단순히 '현실과 비슷해 보이는' 물건만으로는 부족하다. 물체마다 질량과 마찰력, 재질, 구조, 충돌 범위 등 현실의 실제 물리 법칙이 적용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물리적 속성을 갖춘 3차원(3D) 데이터, '심레디(SimReady) 에셋'의 중요성이 매우 커졌다.
이 분야를 정조준한 국내 스타트업이 있어 주목된다. 3D CAD(컴퓨터지원설계) 엔진 기술을 오랫동안 파고든 이후 지금은 '로봇의 가상 훈련장'을 만들며 피지컬 AI 분야 데이터 인프라 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엔닷라이트(NdotLight)'다.
박진영 엔닷라이트 대표는 "LLM(거대언어모델)은 인터넷에 공개된 텍스트와 이미지로 학습을 시작할 수 있지만 로봇은 물컵 하나조차 바로 학습에 쓸 수 있는 3D 데이터가 거의 없다"며 "이 세상 모든 사물을 심레디 형태로 다시 만들어야 하는 시장이 열리고 있다"고 했다.
3D 프린터용 CAD에서 피지컬 AI 데이터로

엔닷라이트의 출발점은 로보틱스가 아니었다. 삼성전자(218,000원 ▼1,500 -0.68%)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근무한 박진영 대표는 갤럭시S 초기 30명 규모 태스크포스(TF)에 참여해 런처 프레임워크를 개발했다. 화면은 2D처럼 보이지만 그 뒤에서는 3D 그래픽스 기술이 작동하는 영역이다.
이후 다음커뮤니케이션으로 자리를 옮겨 UX(이용자 경험) 기반 전사 전략 업무를 경험한 뒤 창업에 나섰다. 공동창업자이자 남편인 김선태 CTO(최고기술책임자)는 네이버와 삼성전자 등에서 AI·3D 엔진을 개발한 그래픽스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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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닷라이트의 초기 타깃은 2020년 창업 당시 성장 기대감이 높았던 가정용 3D 프린터 시장이었다. 누구나 집에서 원하는 물건을 출력하려면 전문 지식 없이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CAD 도구가 필요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가정용 3D 프린터 시장은 예상만큼 커지지 않았다. 기업용 CAD 시장으로 방향을 돌리기에는 오토데스크와 지멘스 등 글로벌 기업이 이미 장악한 레드오션이었다.
전환점은 피지컬 AI의 부상이었다. 엔닷라이트가 오랜 기간 개발한 자체 3D CAD 엔진 '엔닷캐드(NdotCAD)'에 생성형 AI를 결합하고, CAD 데이터에 물리 속성을 자동으로 부여하자 로봇 시뮬레이션에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만들어졌다.
박 대표는 "기존 사업을 버리고 다른 사업을 시작했다기보다 10년 가까이 축적한 기술이 피지컬 AI라는 시장을 만난 것"이라며 "초기 엔닷캐드로 기술력을 쌓았고, 기술의 가치를 가장 크게 발휘할 수 있는 시장을 만나 트리닉스(TRINIX)를 출시했다"고 말했다.
"겉모습만 닮은 3D로는 로봇이 학습 못해"

엔닷라이트의 주력 솔루션 트리닉스는 텍스트나 이미지, 기존 3D CAD 데이터를 입력받아 시뮬레이션에 필요한 심레디 에셋을 자동 생성한다. 물체의 외형만 3D로 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질량·마찰·재질·관절구조 등 물리적 속성까지 추론해 넣는 것이 핵심이다.
예를 들어 로봇이 노트북을 여는 방법을 배우려면 노트북의 겉모습만 알아서는 안 된다. 화면과 본체가 힌지로 연결돼 있다는 점, 힌지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어느 정도 힘을 가해야 열리는지 등을 알아야 한다.
음료수병 역시 병과 뚜껑이 하나의 덩어리로 표현돼 있다면 로봇은 뚜껑을 열 수 없다. 병과 뚜껑이 각각의 부품으로 구분돼 있고, 부품 간 연결 관계와 마찰력 같은 정보가 있어야 실제와 유사한 조작을 학습할 수 있다.
박 대표는 "카메라나 스캐너로 물체를 촬영해 만든 메시(Mesh) 데이터는 겉모습을 빠르게 구현하는데 유리하지만 내부 부품 구조나 설계 정보까지 파악하기는 어렵다"며 "우리는 파츠와 치수, 연결 관계를 담은 CAD 데이터를 기반으로 물리 속성을 부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조기업은 기존 CAD 데이터를 활용해 공장이나 생산설비의 디지털트윈을 만들고, 실제 로봇을 투입하기 전에 가상환경에서 이동·조작·충돌 회피 등을 반복적으로 검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람이 수작업으로 하면 하나의 에셋을 시뮬레이션에 맞게 가공하는데 보통 8~9시간 소요되지만 트리닉스는 이를 '3분 내' 처리하는 것이 목표다. 그는 "숙련된 3D 디자이너가 하루를 꼬박 써야 하는 일을, 설계자가 커피 한 잔 내리는 사이에 끝내도록 만들 것"이라고 했다.
현대차·LG전자 이어 조선소 휴머노이드 실증

전세계적으로 다양한 심레디 기업이 등장한 가운데, 엔닷라이트는 이들 기업과 '결'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경쟁사는 3D 스캔으로 얻은 메시 데이터에 물성 정보를 입히는 반면, 엔닷라이트는 파트(부품) 단위로 구분되는 3D CAD 데이터를 생성한다는 점에서다.
박 대표는 "로봇의 동작 자체보다 로봇이 동작을 수행할 '대상'을 데이터화한다"며 "컨베이어벨트를 지나는 박스의 어디를 잡아야 미끄러지지 않는지, 힘을 가했을 때 얼마나 찌그러지는지, 냉장고 문은 어느 방향으로 열리는지 등을 구현한다"고 말했다.
엔닷라이트의 기술력은 글로벌 플레이어들이 먼저 알아봤다. 지난 6월 대만에서 열린 엔비디아 GTC에서는 젠슨 황 CEO(최고경영자)의 키노트에 '피지컬 AI 에코시스템 파트너'로 엔닷라이트가 이름을 올렸다.
트리닉스의 경우 엔비디아의 3D 개발 플랫폼 '옴니버스', 로봇 시뮬레이션 플랫폼 '아이작 심'과 연동돼 있다. 최근에는 엔비디아와 리얼월드(RLWRLD)가 공동 개발 중인 글로벌 휴머노이드 정교조작(Dexterity) 평가 벤치마크 'DexBench' 프로젝트에도 합류했다.
엔닷라이트는 현재 현대자동차와 LG전자(146,300원 ▲1,800 +1.25%) 등 대기업이 추진하는 피지컬 AI 프로젝트에 데이터 공급사로 참여하고 있다. 홀리데이로보틱스, 에이로봇, 리얼월드 등 휴머노이드·로봇 파운데이션 모델 기업에도 AI 학습 데이터를 공급한다.
삼성SDS가 로봇전환(RX)을 위해 꾸린 로보틱스 파트너십 '팀 REX'에도 참여했다. 조선업으로도 적용 범위를 넓혀 에이로봇과 함께 한화오션(52,800원 ▼1,000 -1.86%)을 대상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현장 실증을 진행 중이다.
박 대표는 "피지컬 AI 생태계는 아무도 해본 적 없는 길을 닦고 있는 단계로, 심지어 엔비디아도 정답을 모르는 채로 길을 내고 있다"며 "심레디 시장의 승자가 3년 안에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 시장에서 엔닷라이트가 1등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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