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의 컬처톡톡] 25년만의 졸업

[황인선의 컬처톡톡] 25년만의 졸업

황인선 문화마케팅 평론가
2014.03.19 05:40

대학을 졸업하고 25년을 일했다. 광고, 마케팅, 문화 콜라보레이션, 브랜드 그리고 글쓰기. 그렇게 25년이 갔다. 그리고 2014년 3월 봄이 오기 직전, 나는 나에게 안식년을 주기로 했다. 우리 기업엔 안식년 제도가 없으니까. 그리고 기업인 스스로도 닭장 속 암탉처럼 용도폐기 될 때까지 알만 낳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니까. 그 알이 건강한 알이든 아니든 상관은 없다. 낳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 암탉 인생을 산다.

과거까지는 그게 통했다. 실제로 베이비 붐 세대들은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이제부터 우리는 70까지는 일을 해야 한다. 남자라면 27살쯤에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무려 40여 년을 일해야 하는데 강산이 네 번 바뀌는 시간이다. 문제는 쉼이 없고 재충전이 없는 사회 시스템이 우리를 결국은 다 닳은 칼날로 만들어버린다. 날이 서지 않은 칼이 칼인가? 그러니 쉬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또 있다. 여자나 자식들이다. 그들에게 남편 또는 아빠는 일과 동격이고 일을 하지 않으면 남편도 아니고 아빠도 아니다. 그걸 의식하는 남편, 아빠들은 스스로를 일터로 내몬다. 치사해도 일을 해야 한다. 가장 소중한 아내와 자식들이 일터인지 전쟁터인지 윤태호 만화가 말대로라면 먼지 같은 일을 하는 세상으로 남편과 아빠들을 몰아붙이는 문화. 여기에 또 '아침형인간'이라는 희한한 슈퍼 암탉 숭배와 '꿈을 꿔, 넌 할 수 있어.' 긍정주의가 가세한다. 무서운 노동 프레임이다.

그렇게 안식년 시스템과 문화가 없으니 할 수 없다. 우리라도 우리에게 안식년을 주어야 한다. 전에 들으니 인터넷 포탈회사에 다니는 50살의 전무가 과감하게 회사를 접고 중국으로 자전거 횡단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내가 제주에 있을 때 만난 한 디자이너는 잘 나가던 회사를 접고 제주로 이민을 왔다. 쉬면서 일하려고. 그들 쉼이 단순히 쉼은 아닐 것이다. 그건 70까지 사이클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쉼이다. 우리는 간과하지만 쉼은 곧 경쟁력이고 전략이다. 착각하지 말자. 주말에 쉬는 건 쉬는 게 아니다. 숨 돌리는 거다. 창조력은 5일 일하고 이틀 쉼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긴 쉼이 필요하다. 프로들은 90% 시간을 연습하고 10% 시간만 게임을 한다. 그래서 그들은 프로다. 교수들은 10년을 가르치면 1년의 안식년이 있다. 영화감독들은 몇 년에 한 번씩 영화를 만든다. 그래서 그들은 리더가 된다. 쉼과 일이 구분되고 긴 쉼은 창조적 일을 위한 창조적 쉼이 된다. 그들의 쉼은 곧 사자의 쉼이다. 사흘에 한번 사냥하고 나머지는 그늘에서 쉬면서 힘을 비축하는.

비움이 있어야 채움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들었을 테지만 대부분은 채움만 추구한다. 달도 찼다가 기울고 지구도 낮과 밤을 교대로 돌아간다. 우리의 일, 우리의 쉼도 그와 같은 이치일 것인데 정신없이 채움 채움 채움 낮 일 낮 일로만 달린다. 그러다 보니 심각한 사회심리 부작용이 생긴다. 창조가 다수의 것이 아니라 쉬는 사람들 소수의 것이 되고 사회 다수는 노동 강박증에 시달리다 보니 자기 삶에 대한 자존감이 약해지게 된다. 내가 쉬겠다고 하니 다수의 사람들이 바로 묻는다. "다음엔 뭐할 건가요?", "아직 나이가 있는데 어디로 옮기나요?" 비움은 모른다. 채움만 말한다. 나는 머쓱하게 답할 수밖에 없다. "그냥 쉴 건데요. 공부도 좀 하고." 그러면 또 묻는다. "그 나이에... 그럼 뭐 먹고 살아요?" 또 머쓱하게 답할 수밖에 없다. "조금 덜 먹고 살 건데요. 다른 생각도 좀 해 보고." 여기서 대화는 끝난다.

그런데, 10년 뒤 누가 더 자기 일을 하고 있을까? 10년 뒤 누가 더 아내와 자식들과 잘 통할까? 그 질문이 나를 25년 시즌1을 졸업하라고 명령했다. 나의 긴 쉼을 동의해준 아내여! 그대는 현명한 전략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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