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 인생 반세기 '예술행정 마에스트로'

무대 뒤 인생 반세기 '예술행정 마에스트로'

이언주 기자
2014.04.02 05:52

[인터뷰] '공연계 대부' 이종덕 충무아트홀 사장··· "내가 밀어준 사람 잘될 때 행복해"

1963년 문화공보부 문화과 공무원으로 시작한 이종덕 충무아트홀 사장(79)은 오직 공연과 사람에 대한 열정으로 반세기 동안 예술행정가의 길을 묵묵히 걸었다. /사진제공=충무아트홀
1963년 문화공보부 문화과 공무원으로 시작한 이종덕 충무아트홀 사장(79)은 오직 공연과 사람에 대한 열정으로 반세기 동안 예술행정가의 길을 묵묵히 걸었다. /사진제공=충무아트홀

1974년, 한국의 스무 살 청년이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 피아노부문에서 입상하고 돌아오자 김포공항에서 광화문까지 카퍼레이드 행사가 열렸다. 지금은 '세계적인 마에스트로'가 된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은 그날을 기억하며 "그때의 함성과 응원에 힘입어 변방의 젊은 예술가가 세계무대에서도 주눅 들지 않을 용기와 배짱을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이 행사를 기획한 사람은 자신이 한국 예술행정의 대가가 될 거라 생각했을까.

2010년 11월, 성남아트센터 사장직 임기를 마치며 75세로 사실상 '은퇴'를 선언했던 이가 곧장 찾아온 중구청장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 못해 '이젠 정말 마지막'이라며 이듬해 충무아트홀 사장을 맡았다. 3년의 임기를 채우고 떠날 준비를 하던 지난 1월, 1년만 더 맡아 달라는 요청에 오늘도 공연장으로 출근한 이종덕 충무아트홀 사장(79)이다. 올해부터는 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장도 맡았다.

"정말 굉장한 어른이셔. 이 분의 끝은 보이지 않아."

일단 공연계에서 이 사장 얘기가 나오면 누구도 명함 내밀기가 쑥스럽다. 1963년 문화공보부 문화과 공무원으로 시작한 이 사장은 반세기를 꼬박 문화계에 몸담았다. '예술경영', '예술기획'이라는 말도 익숙하지 않던 시절 오직 공연과 사람에 대한 관심과 열정으로 예술행정가의 길을 묵묵히 걸었다.

20년간 공무원으로 일 했고,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상임이사, 88서울예술단 단장, 서울 예술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1995년 예술의전당 사장을 시작으로 세종문화회관 첫 민선 사장(1999~2002), 성남아트센터(2004~2010) 사장을 지내는 동안 세 곳은 수도권 지역 '빅3 공연장'의 내실을 갖췄다.

"가는 곳마다 목적의식이 있었고, 직원들에게도 그걸 심어줬어요. 제일 중요한 건 도전과 긍정적인 사고, 남을 배려하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거죠."

이 사장의 리더십에는 '도전'과 '배려'가 줄곧 함께 했다. 1983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상임이사로 있을 때 그의 아이디어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공연을 기획했다. 지금도 그 공간은 자유로운 예술가들에게 열린 공연장이 되고 있다. 예술의전당 사장 시절 창립한 전국문예회관은 지금은 연간 200억 원 예산을 운용할 정도가 됐다. 공연장 운영을 할 때는 수준 높은 새로운 작품을 올리기 위해 과감히 투자하고 기획한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에 대한 배려도 남다르다. "나는 아침 5시 30분이면 일어나는데, 극장에는 9시 되기 5분 전에 도착해요. 사장이 일찍 와 있어봐, 직원들이 얼마나 불편하겠어? 출근 전에 매일 운동을 하고 오는 게 내 건강비결이기도 하고요. 허허."

최근 뮤지컬이나 연극 등의 공연시간이 지나치게 긴 것도 일종의 관객 배려를 못 한 거라고 꼬집었다. "좋은 공연 보고 기분 좋게 돌아가야 하는데, 지하철 끊길까봐 발 동동 구르게 하면 그건 배려가 아니잖아요. 너무 욕심 부리면 안 되지."

늘 상대를 먼저 생각하고, 조금은 부족한 모습을 비추기 때문일까. 이 사장 주위엔 사람이 넘친다. 그의 50년 지기인 김동호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은 그를 두고 '시대의 낭만파'라 불러도 전혀 손색없는 인품의 소유자라고 말한다. "세종문화회관 시절 몸소 '낭만파클럽'을 만들 만큼 멋을 아는 친구"라며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추어 어떤 모임에서든 분위기를 유쾌하게 이끌어간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는 누구와도 잘 어울리며 나이를 잊고 사는 듯하다. 지난해 여름 서울뮤지컬페스티벌이 한창이던 저녁, 충무아트홀 야외무대를 중심으로 댄스파티가 열렸다. 그곳에서 대학생들과 공연계 스태프, 직원들과 허물없이 같은 티셔츠를 입고 춤을 추는 이 사장의 모습은 현장의 다른 이들까지 기분 좋게 만들었다.

언제가 가장 행복하냐고 묻자 망설임 없이 "내가 밀어준 사람이 큰 사람이 될 때"라고 대답하는 이 사장. 그는 "앞마당에 예술가를 세우기 위해 뒷마당에서 남모르게 고민하고 지원하느라 고군분투 하는 것이 예술행정가"라고 했다.

국내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의 성장과 한국 문화예술의 눈부신 발전 뒤에 인간미 넘치는 이 아름다운 사람, '공연계 대부' 이종덕 사장이 묵묵히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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