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전 오늘…기울어진 조선, 자주권 상실 빌미준 사건

120년 전 오늘…기울어진 조선, 자주권 상실 빌미준 사건

이미영 기자
2016.02.11 05:45

[역사 속 오늘]1896년 아관파천… 고종 경복궁 건천궁에서 러시아 대사관으로 거처 옮겨

아관파천 1년후인 1897년 고종은 덕수궁으로 거처를 옮기고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 즉위식을 올렸다./ 사진=뉴스1
아관파천 1년후인 1897년 고종은 덕수궁으로 거처를 옮기고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 즉위식을 올렸다./ 사진=뉴스1

1896년 2월11일 새벽. 고종은 세자와 가족들을 데리고 경복궁 내 건청궁에서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다. 일제의 낭인들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 이후 고종이 내린 결단이었다.

을미사변과 단발령 등으로 일본에 대한 반감이 거세졌다. 전국 각지에서 을미의병이 일어나는 등 정세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고종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건천궁에서 계속 지내는 상황이 부담스러웠다.

친러파들은 친위대가 의병들을 진압하기 위해 지방으로 내려간 틈을 타 고종을 설득하고 나섰다. 일본의 위협과 간섭을 피하기 위해 러시아 대사관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종은 당시 인천에 와 있던 러시아 수병 150명과 포 1문을 서울로 이동하고 극비에 정동에 있던 러시아 공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고종은 이후 친일파로 꼽히는 김홍집·유길준·정병하·조희연·장박 등 5대신을 역적으로 규정, 포살명령을 내렸다. 박정양을 수상으로 하는 친러시아파 정부가 구성됐다.

이른바 '아관파천(俄館播遷)'이다. 아관은 러시아 대사관을, 파천은 이동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파천이라는 단어는 이후에 붙여졌다. 고종은 왕권과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러시아대사관으로 이동했지만 상황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러시아 황제로 즉위한 니콜라이 2세는 고종이 대사관으로 옮긴 지 3개월도 안된 그해 5월 일본 제국과 가까워지며 로마노프-야마가타 협정을 맺는다. 경원과 경성의 채굴권과 압록강, 두만강 및 울릉도의 채벌권과 같은 각종 이권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고종은 거처를 옮긴 지 1년만인 1897년 2월20일 덕수궁으로 돌아간다. 고종은 이후 국호를 대한제국, 연호를 광무(光武)로 고치고 같은 해 10월에는 황제즉위식을 거행했다.

아관파천은 외세의 간섭이 심화되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 나라의 국왕이 러시아 대사관의 보호를 받게 되면서 자주권을 상실하게 되는 빌미를 줬다는 이유에서다.

최근엔 오히려 자주적인 통치를 위한 고종의 노력으로 평가하는 의견도 있다.

지난 3일 아관파천 120주년을 앞두고 열린 한·러 관계와 한국 외교의 미래를 조망하는 학술회의에서 김호섭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의 지지와 협력을 배경으로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탈바꿈하고 고종이 황제로 등극하게 된 것은 조선을 근대적 주권국가로 변모시키기 위한 고종황제의 북방외교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 대사관이 위치한 덕수궁 정동길은 '대한제국의 길'로 조성될 예정이다. 서울시는 러시아공사관과 프랑스대사관·손탁호텔 터를 잇는 '외교가', 선원전 터와 아관파천길을 중심으로 하는 '옛 궁안길', 정동교회와 배재학당·독립신문사를 잇는 '신문화의 길', 서학당·양이재 등 '배움의 길' 테마로 대한제국의 길을 새롭게 단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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