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영화감독 신상옥 타계


1960년대 한국 영화계는 '이 사람이 손을 댄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로 나뉜다는 말이 있었다. 이 사람은 전후 혼란기 작품성과 흥행성을 고루 갖춘 영화를 발표하며 당시 영화계를 이끌었던 신상옥 감독이다.
1925년생인 신 감독은 최인규 감독 밑에서 조감독 생활을 한 뒤 1952년 '악야'(惡夜)를 연출하면서 감독으로 데뷔했다. 1953년 영화배우 최은희와 결혼하며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영화제작자이자 감독, 촬영기사로 활동하면서 68편을 감독하고 169편을 제작하면서 1960~1970년대 한국 영화계를 이끌었다. 특히 신 감독은 미학적인 완성도와 탁월한 대중 감각으로 한국형 장르 영화의 르네상스를 열었다는 평을 받는다.
그는 1960년 '로맨스 빠빠'에 이어 1961년 한국영화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성춘향' '상록수' '연산군' 등을 내놓는다. 1962년부터 1969년까진 '폭군 연산' '강화도령' '로맨스 그레이' '빨간 마후라' '벙어리 삼룡이' '이조여인 잔혹사' 등을 선보이며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으로 자리매김한다.
'성춘향'은 컬러 현상으로, '빨간 마후라'는 한국 최초 항공영화이자 특수효과로 한국영화 기술사에 한획을 긋는다. 세계적인 명성도 얻게 된다. 신 감독은 안양촬영소를 인수한 뒤 1966년 당시 한국 최대 영화사인 신필름을 세워 1970년까지 운영했다. 최은희·신영균·남궁원·신성일 등 당대를 주름잡은 배우들이 신필름을 통해 대중에 얼굴을 알렸다.
1978년 재정이 어려운 한 예술학교의 외국자본 유치차 홍콩에 간 부인 최은희씨가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북되면서 그의 인생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사라진 부인을 찾으러 홍콩에 간 신 감독도 6개월 후 납북된다.
당시 북한 최고권력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한 영화를 발전시키겠다는 의도에서 신 감독과 최은희씨를 납치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납북 기간에 만든 '돌아오지 않는 밀사' 등 7편의 영화는 한국 영화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 가운데 고려시대 민담에 기초한 '불가사리'는 2000년 7월 국내 극장에서 상영된 북한영화 1호로 기록됐다.
독자들의 PICK!
1986년 극적인 탈출에 성공한 신 감독은 미국에 머물면서 칸영화제 심사위원을 지내는 등 영화관련 활동을 해오다가 2002년 영구 귀국한다.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영광과 몰락을 함께해온 신 감독은 마지막까지 영화 제작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옛 안양경찰서 자리에 20억원을 투자, 실기 위주의 예술전문학교인 안양신필름 예술센터를 설립해 후학 양성에 힘쓴다. 2004년엔 성결대 연극영화학부 명예교수로 위촉돼 이 학부 첫 공연작인 '자살상담 48.6'의 연기지도를 직접 맡기도 한다.
같은 해 신 감독은 간이식 수술을 받았지만 건강이 악화돼 통원치료를 받다 10년 전 오늘(2006년 4월11일) 영화같은 삶을 마무리하고 영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