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치고 싶은' 조선 문인 7인의 품격있는 문장

'훔치고 싶은' 조선 문인 7인의 품격있는 문장

김고금평 기자
2016.05.28 03:10

[따끈따끈 새책] '문장의 품격'…셀프 디스에서 음식 기호까지 조선 '파워블로거'의 명문

영화 ‘간신’에서 그 정의를 두고 임사홍(천호진 역)이 이렇게 얘기한다. “네가 얘기하는 간신이라는 게 대체 무엇이냐. 난세의 영웅은 평화로울 때 그저 사육자이고, 군자의 도덕은 전쟁터에서 허병이 될 뿐인데.”

사극은 때로 명문(明文)의 놀이터다. 현대극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주옥같은 문장들이 수두룩하다. 어지러운 21세기, 말도 글도 흐트러지는 시대에 품격있는 문장은 삶의 태도를 견인한다. 이를 위해 수백 년 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건 필연의 수순일지 모른다.

허균, 이용휴,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이옥, 정약용 등 조선시대 ‘파워블로거’로 통하던 7인의 문재(文才)들(17~19세기)은 자신의 문장으로 세상을 어떻게 바꿔 놓았을까.

‘문장의 품격’은 저자이자 한문학자인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가 글쓰기로 동시대 삶을 움직인 문장가 7인의 좋은 문장을 골라 해설을 붙인 선집이다.

“내가 죄를 지어 바닷가로 거처를 옮긴 후부터는 쌀겨나 싸라기조차 제대로 댈 형편이 못 되었다.(중략) 산해진미를 입에 물리도록 먹어서 물리치던 옛날의 먹거리를 떠올리고 언제나 입가에 침을 질질 흘리곤 했다.” (허균, ‘두려움없는 저항의 목소리’중에서)

정치와 사상만이 글의 주제로 통용되던 그 시대에선 보기 힘든 묘사다. 사대부의 대표적 지식인이 가난을 주제로 민초의 삶의 바닥을 뚫어보고, ‘침을 질질 흘리는’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태도를 응시하는 것 자체가 파격이었던 셈.

조선시대 문학은 이제 소외계층의 일상에서 기호품까지 다양한 소재를 차용했고, 개별적이고 작은 가치에 시선을 던지며 세상의 변화를 유도했다.

‘셀프 디스’를 통한 자기 수양의 글도 멋지게 탄생했다. “지식과 견문이 나를 해치고/재주와 능력이 나를 해쳤으나/타성에 젖고 세상사에 닳고 닳아/나를 얽어맨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성공한 사람을 받들어/어른이니 귀인이니 모시며/그들을 끌어대고 이용하여/어리석은 자를 놀라게도 했다/옛날의 나를 읽게 되자/진실한 나도 숨어버렸다.” (이용휴, ‘자기다운 사람을 찾는 글’ 중에서)

18세기 문학 변화의 최전선에 선 이용휴는 ‘옛것과 결별’하라는 선언을 통해 개성적 산문의 창작을 이끌었다. ‘미인의 얼굴 반쪽’에서 그는 이렇게 적었다.

“꿈에 나타난 미인의 얼굴이 반쪽만 드러냈기 때문에 그 전체를 볼 수 없었다/반쪽에 대한 그리움이 쌓여 병이 되었다/누군가가 그에게 ‘보지못한 반쪽은 이미 본 반쪽과 똑같다’라고 일깨워주었다/무릇 산수를 구경한다는 것은 모두 이렇다.”

젊은 연암 박지원은 편지 중에서도 짤막한 척독(尺牘)을 통해 자신의 취향과 사상을 재미있지만 무겁게 드러냈다. ‘영대정잉묵 척독 10제’에서 5번째 편지는 깊은 울림의 서사시에 가깝다.

“아이들 말에 ‘도끼를 휘둘러 허공을 치느니, 차라리 바늘을 잡고 눈동자를 겨누라’고 했고, 시골 속담에 ‘삼정승과 사귀지 말고 네 한 몸 조심하라’고 합디다. 그대는 그 말을 꼭 기억해두십시오. 약하지만 단단한 것이 낫지, 용맹하지만 물러 터져서는 안됩니다. 더구나 남의 세력은 믿지 못하는 것 아닌가요?”

파격의 행보는 간결하지만 묘사적인 이덕무의 문장, 괴상하고 기발한 이옥의 문장 등으로 계속 이어진다. 하지만 19세기 초까지 불어닥친 문장개혁은 권위적인 고문의 힘에 눌려 19세기 중반 이후 근대 시기와 더불어 사라졌다.

조선시대 가장 큰 번영을 누린 영·정조 시대에 개혁의 문장은 함께 번창했다. 문장의 품격은 곧 국격과 다르지 않았던 셈이다.

◇문장의 품격=안대회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300쪽/1만5000원.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김고금평 기자

사는 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 대로 산다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