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발 나체의 여인 "저는 프레야입니다"

금발 나체의 여인 "저는 프레야입니다"

이건혁
2016.10.08 03:11

[1회 과학문학공모전 단편소설] 대상 '피코' <2회> "적색 단계 피코를 회수하라!" 제타, 임무를 맡다

일러스트=임종철 디자이너
일러스트=임종철 디자이너

2.

사춘기에 가까워진 피코들은 변화의 시점을 섣불리 짐작하기 힘들다. 그래서 정부는 마감 기한보다 빨리 반납하는 사용자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정책을 펼친다. 피코의 대여 비용을 몇 프로 감면해주는 방식인데 별 실효성은 없다. 갈수록 똑똑해지고 사랑스러워지는 피코를 누가 반납하겠는가. 그러나 그건 폭풍 전의 고요함과 같다. 메타 인지 단계로 접어든 피코는 점차 폭력 성향을 띠고 주인을 해칠 수도 있다. 그래서 지능청은 칠 년차에 접어든 피코를 총 삼 단계로 나누어 관리했다. 초록색, 노란색, 빨간색. 초록색은 안전 단계다. 지능청은 시민들이 초록색 단계에 반납하길 권장한다. 노란색은 주의 단계다. 반납하라는 문자가 주기적으로 전송되고, 구청 담당자가 직접 방문해서 피코의 상태를 확인한다. 빨간색은 강제 반납 단계다. 지능청은 언제든 직원을 파견해 피코를 압수할 수 있다. 주인이 압수를 거부할 경우, 경찰력이 동원된다. 제타는 지금껏 빨간색 단계의 피코를 처리한 적은 없었다.

호출을 받기 전까지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제타는 수몰되기 전 괌을 재현한 VR 다큐멘터리를 보며 시간을 때웠다. 당시 지구의 인구는 지금보다 20억이나 더 많았고, 땅은 10% 이상 넓었다. 괌에는 대형 항공모함이 정박할 수 있는 해군 기지도 있었고, 각 나라의 관광객들이 머무는 크고 아름다운 호텔들이 있었다. 제타의 아버지는 수몰로 인해 미국 본토로 이주하기 전까지 괌에 살며 관광 안내사로 일했다. 본토에서 태어난 제타는 괌에 대한 기억이 없지만 보면 볼수록 무척 아름다운 섬이었다. 본격적으로 호텔 앞 해변에 자리를 잡고 석양을 감상하려는데 PDA에 알람이 울렸다. 적색 단계의 피코를 회수하라는 명령이다. 보통 문자로만 연락하던 중간 관리자가 이번에는 직접 전화를 걸었다. 화면에 관리자의 얼굴이 떴다. 면접 이후 처음 보는 얼굴이다.

"어이 제타, 미안한데 자네가 좀 나서줘야겠어. 지금 베테랑들이 여기저기 파견을 가서 말이야. 자네 같은 초보한테는 미안하게 됐네. 경찰을 붙여줄 테니 대신 좀 가달라구. D구역이야. 주소는 PDA로 보내주지. 조심해야 할 거야. 벌써 세 번째 방문이거든."

D구역은 인공 숲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우범지역이다. 보통 제타가 출장을 나가는 지역은 중산층이 몰려 사는 B구역이다. 도로에 낙엽 한 장도 굴러다니지 않는 깔끔한 동네다. 그러나 D구역은 제타가 사는 동네보다 더 어둡고 활력이 없었다. 흔히 말하는 슬럼가다.

D구역에 들어서자 제타의 승용차가 수동 운전모드를 권장했다. 지금껏 일을 다니면서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일이다. 간혹 해킹당한 자동차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는 뉴스를 보긴 했다. 자동 운전모드에서는 해커들에게 당해 원치 않은 곳으로 끌려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는 D구역이다, 사고는 언제나 조그만 부주의로 일어난다. 제타는 속으로 마음을 다잡으며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았다.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에는 카트를 끌고 가는 노인 몇 명과 약에 취한 채 가로등에 기대고 있는 십대들을 지나쳤다. 경찰과 처음부터 동행했어야 됐다는 후회감이 밀려들었다.

긴장감 때문에 등에서 땀이 배어날 쯤 목적지에 도착했다. 경찰은 이미 도착해서 제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타는 주섬주섬 장비를 챙겨 차에서 내렸다.

"안녕들 하십니까?"

경찰은 언제나 두 명씩 짝을 이뤄 행동했다. 이번에도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가 차에서 내려 제타에게 악수를 건넸다. 선임으로 보이는 남자 경찰이 천천히 껌을 씹으며 선글라스를 벗었다.

"피코 주인은 세입잡니다. 이름은 마이클 무어. 관련된 인적 사항을 봤는데 전과 기록은 없어요. 이웃 말로는 망상장애를 앓고 있다더군요."

세 사람은 나란히 서서 집을 바라봤다. 단층으로 된 조립형 주택은 밖에서 보기에 특별히 수상한 구석이 없었다. 흰색 페인트가 여기저기 벗겨지긴 했지만 다른 집들에 비하면 깨끗한 편이었다. 창에는 온통 커튼이 쳐있어 안이 보이지 않았다. 경찰이 먼저 대문을 지나 현관으로 향했다. 제타는 두세 발짝 뒤에 떨어져서 따라갔다. 남자 경찰이 삐걱거리는 계단을 밟고 올라가 현관문을 두들겼다.

"마이클 씨, 계십니까? 경찰입니다."

말을 마침과 동시에 안에서 동물 울음소리 같은 비명이 들렸다. 경찰들은 자세를 낮추고 스턴 건에 손을 가져갔다. 제타에게는 뒤로 물러서라는 손짓을 보냈다. 한동안 현관문을 주시했지만 오랫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이제는 강제로 문을 따고 들어가야 했다. 여자 경찰이 문을 열기 전에 큰 목소리로 경고했다.

"마이클 씨, 지금 당장 문을 열지 않으면 강제로 진입하겠습니다! 셋을 셀 동안 나오세요, 셋, 둘…"

그러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철커덕하고 문이 열리며, 마이클 무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손에는 나무 십자가가 들려 있었다.

"손들어! 손에 든 거 버려! 뒤로 돌아서 벽 짚고 서!"

경찰들은 재빨리 총을 뽑아 들어 마이클을 겨눴다. 그는 십자가를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초점 잃은 눈동자로 천천히 뒤로 돌아 벽을 짚었다. 온통 하얀색으로 된 옷을 입고 있던 그는 부스스한 머리와 혈색 잃은 피부 탓에 인도의 고행자처럼 보였다.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듯이 고개를 푹 숙인 모습은 마치 오랜 단식 수행을 마친 것 같았다. 몸수색을 마친 여자가 안전하다는 눈짓을 보냈다. 남자와 제타가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갈 채비를 했다.

"이미 끝났어. 그분은 모든 채비를 마치셨다고."

마이클이 제타를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웃었다. 섬뜩한 미소였다.

"피코는 어디 있지?"

제타의 물음에도 마이클은 대답하지 않고 외려 기분 나쁜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제타와 남자가 조심스레 집 안으로 들어섰다. 지하실로 내려가는 통로에서 조그만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날카로운 현악기 소리였다. 둘은 자연스레 지하실로 향했다. 남자는 총을 고쳐 잡았다. 계단을 내려가 지하실로 통하는 좁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지하실이 온통 촛불로 환했다. 벽에는 알 수 없는 패턴으로 된 문양들이 빨간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한쪽 벽엔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흰 천이 깔린 바닥 위로 여자 하나가 나체로 누워 있었다. 경찰이 다가가 조심스레 총을 겨눴다. 그러자 여자가 몸을 일으켜 세우고 두 사람을 바라봤다.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피코는 어디 있지?"

경찰이 묻자 여자가 대답했다.

"제가 피코입니다."

"맙소사."

제타가 짧게 탄식을 내뱉으며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불법으로 개조한 인공지능이었다. 여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처럼 아름다웠다. 흰 피부와 구불거리며 찰랑이는 금발의 머릿결,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까지. 인공지능이란 걸 알았지만 시선을 떼기 어려웠다.

"내가 엄호하고 있을 테니까 가서 포박하세요."

경찰이 넋을 놓고 있던 제타를 재촉했다. 제타는 준비한 끈으로 여자를 묶었다. 먼저 손을 뒤로 하고 교차해서 묶은 뒤, 몸통을 둘둘 감았다. 진짜 사람이 아닌 걸 알았지만 손이 가슴을 스칠 때는 저도 모르게 몸이 움찔했다. 여자는 눈도 깜박하지 않았다. 제타의 생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는 처음이었다. 마지막으로 코드 리더기를 꺼내 여자의 목 뒤에 갖다 댔다. 코드는 정부에서 받은 것과 같았다. 작업을 마치자 경찰이 깔려있던 흰 천으로 여자의 몸을 둘렀다.<☞3회로 계속>

*제목은 연재를 위해 편의상 붙인 것으로 원작품엔 부제가 없음을 밝힙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