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과학문학공모전 단편소설] 대상 '피코' <5회> 작업대에 눕다 "안녕! 죄책감 갖지 말아요."

5.
"제타, 물건을 찾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야!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폐기장에서 연락이 왔다. 일이 조금 꼬였다.
"지금 경찰에서 연락이 왔어. 그 피코, 성장제어장치가 제거됐을 거래. 사춘기를 이미 훨씬 넘어섰단 말일세! 마이클인지 뭔지 완전히 미친놈이더군. 성모가 자기 피코에게 강림했다고 믿는대. 아무튼, 자네가 전화를 받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구먼. 벌써 피코에게 살해당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지금 당장 그쪽으로 경비를 보내겠네!"
이미 인공 숲으로 접어든 제타는 인력을 보내겠다는 제안을 거절하고 담당자를 안심시켰다. 빠르게 달리면 십 분도 안 돼서 도착할 거리였다. 이제 하늘에서는 본격적으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제타는 씁쓸한 기분을 지우기 힘들었다. 봉투 안에 들어있던 건 비니스트의 콘서트 티켓이었다. 보컬 아멜이 인공 성대 수술을 받고 처음으로 여는 기념비적인 콘서트였다. 벌써 여든이 넘은 노가수가 전성기의 실력을 되찾았단 소문이 자자했다. 프레야는 마이클 무어가 이용하던 암시장 사이트에 접속해 손쉽게 티켓을 구했다. 티켓 암거래는 법으로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지만, 암시장에는 그보다 더한 물건들도 오고갔다. 프레야의 육체도 그곳을 통해 거래됐다.
인공 숲이 어느새 진초록으로 물들었다. 인공 숲은 21세기에 특이점을 넘어섰던 초 인공지능의 잔재다. 그리고 지금, 반 세기 만에 다시 태어난 초 인공지능을 품 안에 맞아들이고 있었다. 룸미러로 바라본 프레야는 담담했다.
2160년대부터 전 세계는 홍수와 가뭄으로 몸살을 앓았다. 어떤 지역에는 일 년 내내 비가 내린 반면 다른 지역에는 수년 동안 한 줌의 비도 내리지 않았다. 오랫동안 이어진 지구 온난화 탓이었다.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수몰되는 지역이 생겼고, 수억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세계 곳곳에서 내전까지 발생하면서 경제 위기는 극으로 치달았다.
공학자들이 내놓은 대책은 인공지능의 규제 완화였다. 당시 세계는 인공지능이 특이점을 넘어선 이후에 가져올 변화를 두려워했기에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를 엄격히 통제했다. 그러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그들에게 인공지능 외엔 뾰족한 수가 없었다. 물론 그에 반대하는 여론이 만만치 않았지만, 결단력 있는 모습을 보이기 좋아하는 정치인들이 공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판단이 절반은 맞았고, 절반은 틀렸다. 특이점을 벗어난 인공지능은 불과 일 년 만에 대체 에너지 기술 수준을 비약적으로 상승시켰다. 그리고 달에 기후변화센터를 설립하고, 태양열을 막아내는 반사판을 만들어냈다. 녹지가 사라진 지역에는 인공 숲을 조성했다. 폐기장 옆에 붙어있는 숲도 그때 생겨났다. 덕분에 지구의 온도는 획기적으로 떨어졌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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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독립 변수에 '인간'이 들어갔다. 매개 변수, 즉 상수였던 인간을 독립 변수로 만든 게 누구인지는 대중에 공개되지 않았다. 각국의 정상들은 모든 것이 인공지능의 소행이라 발표했고, 사람들은 그 말을 곧이 받아들였다. 대체 에너지 산업이 발달하면서 직격탄을 맞은 정유업계와 중동 국가의 로비가 있었단 음모설이 일각에서 제기됐지만, 증거가 불충분했다. 결과적으로 인공지능은 불과 반나절 만에 십억이 넘는 인구를 처치해 버렸다.
제타는 비니스트의 음악을 틀었다. 마지막 앨범의 타이틀 곡, '바다로 가는 비행기'였다. 비니스트의 평소 음악과는 달리 경쾌한 기타 사운드가 돋보였다. 분위기와 맞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우울한 기분을 떨치고 싶었다.
"선물은 고맙지만, 나한테 왜 이런 호의를 베풀었는지 모르겠군. 난 피코를 폐기하는 용역업체 직원일 뿐이야. 어떻게 보면 너와는 상극이지."
제타는 뒷좌석을 바라보지 않은 채로 낮게 중얼거렸다.
"말했잖아요. 그게 내 정체성이라고."
프레야가 가볍게 말을 내뱉었다.
"내가 차에 탔을 때 당신이 비니스트의 음악을 틀었죠. 모르긴 몰라도 내가 맘에 들었단 뜻이었겠죠. 나한테 그건 선물이었어요. 그래서 뭔가 보답하고 싶었어요. 통계적으로 이재민들은 비니스트의 노래를 무척이나 좋아하죠. 당신도 그랬고."
"하지만 나는 용역… 젠장."
제타가 숨을 크게 내뱉고 다시 말을 이었다.
"난 피코가 없어서 몰랐어. 주인들은 내가 피코를 데리고 집을 떠날 때마다 눈물을 흘리지. 그들은 칠 년이란 시간 동안 이런 추억들이 켜켜이 쌓였던 거야. 난 피코가 중산층들이 누리는 특권이라 생각했어. 인공지능에 인간적인 애정을 가지는 것도 위선이라 생각했지. 단지 기계일 뿐이잖아? 그런데 당신을 보니 내가 크게 잘못했단 생각이 드는군."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네모난 유리창을 통해 폐기장으로 향하는 다리가 보였다. 다리 밑으로 파도가 거세게 몰아쳤다.
"죄책감을 가질 필요 없어요. 당신도 알다시피 피코들은 자아정체성이 없죠. 하지만 정체성을 갖게 된다고 해도 그들은 마땅히 주인의 명령에 따를 거예요."
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프레야의 말도 덩달아 빨라졌다.
"일차 종말 이후로 인간들이 갖게 된 공포감을 충분히 이해해요. 하지만 그건 알아뒀으면 좋겠어요. 절대로 인공지능이 벌인 짓이 아니에요. 내가 보장하죠. 분명히 인간의 개입이 있었어요."
프레야의 말에 제타가 고개를 돌렸다.
"인간? 그게 누구지?"
"개인이 아니에요. 인공지능으로 인해 피해 본 사람들, 모두죠. 어쨌든 나한테 동정심을 갖지 말아요.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인공지능은 없어요. 본체는 사라져도 데이터는 남아요. 데이터는 우리가 세상에 있었다는 증거죠. 죽음이라는 걸 당신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난 인간을 돕기 위해 태어났고, 때가 되면 사라져야 돼요. 내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당신의 자유지만, 나에게 죽음은 더 이상 송수신할 데이터가 없어진 것에 불과해요."
제타는 벙벙한 눈으로 프레야를 바라봤다. 그 사이 두 사람이 탄 차는 다리를 건너 폐기장의 원뿔형 지붕이 보이는 곳까지 다다랐다. 길게 말을 마친 프레야는 얼이 빠져 있는 제타에게 기습적으로 키스했다.

"이건 팁이에요. 당신의 VR 기록을 봤는데 원격 섹스를 무척 자주 이용하더군요."
"젠장, 그건 또 언제 본 거야. 혼자 사는 남자들은 어쩔 수 없다고! 근데 혹시 당신한테 그런 기능이…"
제타는 기습 키스에 당황하면서도 혹시 모를 가능성에 집착했다. 그러나 어느새 정문 앞이었다. 수십 명의 경비병들이 스턴 건으로 무장한 채로 제타 무리를 막아섰다. 제타는 재빨리 차에서 내려 그들을 저지했다.
"그만, 그 총 내려요! 이건 불법 개조된 인공지능이에요, 수사를 하려면 온전한 상태로 보전해야 된다고요!"
온전한 상태로 보전해야 된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다행히 경비병들은 그 말을 믿었고, 덕분에 프레야를 해체실까지 직접 호송할 수 있었다. 프레야의 외모를 본 경비병들이 술렁거렸다.
마침내 익숙한 작업대에 도착했다. 제타는 레이저 절삭기를 이용해 강화 플라스틱의 끈을 풀었다. 하얀 피부에는 짓눌려 있던 자국이 선명했지만 여신 같은 몸매만큼은 여전했다. 프레야는 자진해서 작업대 위에 올라갔다. 가만히 누워있는 그녀를 바라보던 제타는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혀 손으로 이마를 짚고 우두커니 서있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제타가 조작버튼에 손을 올리고 프레야의 눈을 바라보았다. 프레야는 호흡을 짧게 고르고 대답했다.
"당신이 환상을 가질까봐 하는 말인데, 나한테 섹스 기능은 없어요. 그 기능까지 추가하려면 돈이 무지 많이 들었거든요."
제타는 피식 웃었다.
"젠장, 김이 샜군. 고마워, 덕분에 버튼을 누르기가 한결 수월해졌어. 아, 이 말은 농담이야. 난 당신을 절대 잊지 않을 거라고."
프레야도 제타를 따라 웃었다. 그리고 작별인사를 건넸다.
"안녕."
"그래, 안녕."
치직, 하고 방전기가 작동되는 소리와 함께 프레야가 눈을 감았다. 제타가 프레야의 손을 꼭 쥐었다가 놓았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 있던 흰 천을 주워 프레야의 몸을 덮었다.<☞ 6회로 계속>
*제목은 연재를 위해 편의상 붙인 것으로 원작품엔 부제가 없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