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과학문학공모전 단편소설] 우수 '코로니스를 구해줘' <2회> 깊은 잠에 빠진 주노…등장할 괴물은 과연

세계 굴지의 게임기 개발 회사에서 얼마 전 출시된 가상현실 게임기는 비행기 1등석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침대는 성인 한 명이 길게 다리를 뻗고 누울 수 있을 만큼 널찍했고, 게임을 장시간 플레이해도 피로해지지 않도록 인체공학적으로 디자인되었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 플레이어는 VR 헤드기어를 쓰고 뇌파를 게임기에 연결하는 과정을 거친다. 헤드기어는 머리 전체를 감싸는 헬멧 모양으로 시각과 청각이 완전히 차단되는 것이 특징이다. 헤드기어 내부에서 발생되는 특수한 전자신호는 끊임없이 플레이어의 뇌를 자극하여 게임 속 오감을 구현한다. 특히 게임기와 헤드기어가 서로 주고받는 강력한 신호는 뇌를 거쳐 연수까지 전달되기 때문에 신체적 움직임까지 재현해낼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그녀의 정신세계는 스튜디오 전면에 있는 거대한 화면에 고화질로 상영될 것이다.
기술자들은 게임기에 점검용 노트북을 연결해 주파수를 확인하고 전선을 새로 교체하는 등 매우 다급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주노는 휴대폰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생방송 시작까지 5분밖에 남지 않은 시각이었다. 기술자들이 언제쯤 점검을 마칠지 궁금해진 그녀는 급한 걸음으로 스튜디오를 빠져나오는 남자 스텝을 붙잡았다.
“저 분들은 왜 지금 점검을 하고 있는 거죠? 방송 시작까지 얼마 안 남았잖아요?”
스텝은 모자를 벗어 땀에 전 이마를 닦았다.
“글쎄요. 스튜디오 화면과 게임 캡슐 연결에 조금 오류가 생겼다는데요. 금방 해결될 테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정말로 안전에는 문제없는 거겠죠?”
“물론이죠.”
스텝은 그렇게만 말하고 급하게 사라졌다. 그의 말대로 기술자들은 금세 점검을 마치고 스튜디오 밖으로 나갔다. 스텝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함께 생방송 진행을 맡은 아이돌과 게임 전문 해설자가 스튜디오 가운데로 나갔다. 주노는 갑자기 목이 타들어가는 듯한 갈증을 느꼈다. 그러나 주변에 있는 음료수들은 전부 설탕이 듬뿍 들어간 주스들뿐이다. 40kg의 체중을 지키기 위해서는 목이 말라 죽는 한이 있어도 저런 설탕물을 마실 수는 없다.
“스탠바이,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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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방송이 시작되었다.
MC들의 인사와 특집 방송 소개가 이어지고, 다음으로 BJ 주노를 호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노는 땀이 축축하게 배어나온 손바닥을 황급히 원피스 자락에 문질러 닦은 뒤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스튜디오로 걸어 나갔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BJ 주노입니다. WGN개국 1주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요. 오늘 제가 플레이하는 IOM2 실황 많은 시청 부탁드려요!”
주노는 카메라를 향해 환히 웃어 보이며 판에 박힌 인사말을 했다. 그러고 나서 아이돌과 눈을 마주친 다음 미소를 지었다. 며칠 전 사전회의에서 만난 아이돌은 주노를 보자마자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주노 씨는 카메라발을 참 잘 받으시는 것 같아요. 그녀의 작은 키와 푸석한 피부, 치마 아래로 뼈가 툭 튀어나온 무릎을 보고 하는 말임이 분명했다. 주노는 속으로 이를 갈면서도 겉으로는 변변한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같은 방송인 사이에도 분명 계급이 존재한다.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는 남자 아이돌과 비교하면 인터넷 방송인에 불과한 그녀는 엄연히 급이 떨어지는 존재다.
“그럼 김성호 해설자님, 오늘 주노 씨가 플레이하게 될 게임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이돌이 게임 전문 해설자에게 순서를 넘겼다. 게임 해설자는 두꺼운 뿔테 안경을 밀어 올리며 미리 준비해온 자료를 슬쩍 훑어보았다.
“네. 오늘의 게임은 가상현실 게임계의 혁명이라 불리는 작품이죠. ‘인사이드 오브 마인드2’, 통칭 IOM2입니다! 전 편이 출시되고 5년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공개된 IOM2의 모습, 화면으로 함께 보시죠.”
해설자의 매끈한 진행과 함께 스튜디오 조명이 일제히 꺼졌다. IOM2 데모 판을 플레이하는 세계 각국 유저들과 게임 개발자들의 인터뷰 장면이 흘러갔다. 그 중 단연 백미는 산 속을 탐사하다가 거미와 지네가 가득 차 있는 함정에 빠진 캐나다 유저의 모습이었다. 체구가 크고 턱수염까지 기른 외국인 장정이 혼비백산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에 방청객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게임을 마치고 현실로 돌아온 캐나다인 유저는 헤드셋을 벗고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 아무한테도 말한 적 없어요. 내가 거미를 무서워한다는 걸 아무도 모르는데. 이 게임이 어떻게 알고 거미 괴물을 만들어냈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유저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그의 대사가 끝나자 해설자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것이 바로 IOM2의 획기적인 시스템입니다. 일정한 시나리오가 존재했던 기존 공포게임과는 달리, IOM2은 유저 맞춤형 공포의 신기원을 창조해냈죠. 인간의 기억을 관장하는 뇌의 영역인 측두엽을 직접 자극하여 유저들의 내면적 공포를 게임 속 괴물의 모습으로 형상화하는 것입니다.”
“게임 장면을 보기만 해도 떨리는데요. 전 어렸을 때부터 개를 무서워했는데, 만일 제가 IOM2를 플레이한다면 개가 마구 쏟아져 나온다는 거 아니에요? 만약 저라면 1분 만에 울면서 게임 포기를 선언할 겁니다.”
아이돌이 짐짓 어깨를 떨며 말하자 방청객 사이에 섞인 팬들이 왁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주노는 아까부터 아이돌이 진행할 때만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그들의 모습이 가증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주노 씨. 만약 주노 씨가 게임 속에 들어간다면 어떤 모습의 괴물이 등장할 거라고 예상하세요?”
아이돌이 물어왔다. 드디어 발언권을 얻은 그녀는 카메라를 향해 경련이 일 정도로 입 꼬리를 당겨 올렸다.
“글쎄요. 제가 워낙 겁이 없는 성격이라서……그리고 전 개나 고양이를 좋아하는 편이라 그런 모습의 괴물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러고 보니 주노 씨는 얼마 전 유기견과 유기묘 입양을 확산하기 위해 캠페인을 벌이기도 하셨죠? 댁에는 강아지와 고양이가 몇 마리 정도 있으신가요?”
“전부 합해서 10마리 있어요.”
“헉, 그렇게나 많이요?”
“이것도 줄이고 줄인 거예요. 제가 데리고 있는 동물들은 심하게 다치거나 장애가 있어서 분양이 어려운 아이들이거든요. 힘들긴 하지만 저만 믿고 있는 애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고 싶지는 않아요.”
“정말 좋은 일을 하고 계시네요.”
“그런데 요즘 병을 앓던 아이들 몇 마리가 한꺼번에 하늘나라로 떠나서……애들한테 너무 미안해요. 모두 내 잘못인 것만 같아서……!”
주노의 눈가에 갑자기 눈물이 고이자 아이돌이 당황하며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PD는 난처해하면서도 주노의 얼굴을 한껏 클로즈업하라고 지시했다. 기르던 반려동물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는 방송인의 모습은 시청자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그 증거로 주노를 바라보는 방청객들의 시선에 호의가 섞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그녀를 향한 대중의 의심이 꺾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늘 방송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어야만 시청자와 네티즌의 여론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약 10분 정도 후, 그녀는 화면을 바라보는 자세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카메라맨은 그녀의 얼굴을 근접 촬영하고 있었다. 아이돌은 주노에게 마이크를 들이댔다.
“주노 씨.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
“네. 정말 떨리고 긴장돼요. 저 게임하다 무서워서 기절하면 어쩌죠?”
“걱정하지 마세요. 주노 씨. 주노 씨가 기절하면 제가 게임 속으로 구하러 들어갈게요.”
그의 로맨틱한 대사에 방청객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반면 스마트 워치에 떠오르기 시작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 저놈 미쳤네. 주노같이 못생긴 여자를 왜 구하러 감?
- 딱 봐도 멘트에 영혼이 없다. 오글거려 죽겠네.
- 고작 누워서 게임만 하는데 기절은 무슨. 가상현실도 조작하는 주노주작!
주노의 이름과 거짓말을 뜻하는 주작(做作)이라는 단어를 합성한 ‘주노주작’이란 단어가 채팅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 여기 악플러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주노님 힘내세요. 응원할게요.
- 저는 언니 믿고 있어요. 오늘 방송 끝까지 볼게요.
- BJ 주노 누님 욕하는 놈들 전부 신고 버튼 눌렀습니다. 주노 누님 사랑합니다!
주노는 팬들의 댓글을 망막에 아로새길 것처럼 읽고 또 읽었다. 한때 인터넷게시판에는 그녀의 청순한 외모와 깔끔한 방송 진행을 찬양하는 글로 도배가 된 적이 있었다. 그녀는 그 글들을 모두 화면 채로 캡처한 다음 컴퓨터에 저장해 놓았다. 조작 논란이 일어난 뒤, 그녀는 저장해 놓은 댓글들을 읽으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다. 당신을 믿는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은 마음속 창고에 아무리 가득 채워도 뒤돌아서면 바람에 흩어져 버리는 모래더미와도 같았다. 주노는 매일같이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나가 사람들의 칭찬과 위로를 쓸어 담는 청소부나 다름없었다.
스튜디오 조명이 꺼지고 전광판에 게임 시작 화면이 떠올랐다. 여성 방청객들은 음산한 배경음악이 흘러나오는 검게 소용돌이치는 화면을 보고 새된 비명을 질러댔다. 아직 무서운 장면은 나오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라면, 게임 진행 중에는 얼마나 호들갑스럽게 소리를 질러댈지 짐작이 갔다.
“자, BJ 주노 씨! 준비되셨으면 시작 버튼을 눌러주세요!”
아이돌이 외치자 주노는 안경을 쓰고 화면을 노려보았다. 시작 화면은 누군가 타르 구덩이 속에 막대기를 넣고 휘젓는 것처럼 쉼 없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그녀는 화면 시작 지점에 집중했다. 그러자 “Inside Of Mind2”라고 쓰여 있던 제목 글자가 제멋대로 떨어져 나가더니 순식간에 한글로 조합되었다.
과거를 기억 못하는 이들은 과거를 반복한다.
-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
주노는 오른손에 쥐고 있던 조작기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안경 앞이 부옇게 흐려지더니, 눈앞에 스테인드글라스를 펼쳐놓은 것 같은 만화경 세상이 펼쳐졌다. 수면제를 먹은 것처럼 의식이 몽롱해지며 전신의 근육이 축 늘어졌다. 이전에 쌍꺼풀과 코를 성형했을 때 수면 마취를 한 것과 비슷한 증상이었다. 그녀의 정신은 곧장 게임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또 다른 꿈의 시작이었다.<☞3회로 계속>
*제목은 연재를 위해 편의상 붙인 것으로 원작품엔 부제가 없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