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고금평의 열화일기] ① 개막작 '뮤지션'

음악은 때론 미학이라는 예술의 영역을 넘어, 각성이라는 인생의 가치관을 건드린다. 최고의 실력을 지닌 4명이 선보이는 '합의 미학적 선율'이 반드시 '좋은 사중주'가 아닐 수 있다는 교훈은 그래서 더 인상적이다.
제21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작 '뮤지션'은 정극의 재미, 이탈리아 장인이 한땀 한땀 수놓은 스트라디바리우스 현악의 감동, 그리고 그 안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보편적 삶에 대한 인생관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바이올리니스트 아스트리드가 아버지의 꿈을 이어받아 세계적 4중주 공연을 기획한다. 아버지가 생전에 지정한 거장들을 찾아 스트라디바리우스를 건네며 합주를 제안하지만, 4명의 '개성있는' 연주자들은 자존심 싸움으로 매일 티격태격이다. 합주 녹음일은 6일도 채 남지 않았는데, 피 말리는 신경전과 논쟁은 끊이질 않는다.
제1 바이올린은 비올라를 향해 "악보대로 따르라"고 충고하고, 비올라는 지휘자가 없는 실내악의 독립적 역할을 강조하며 반격한다. 해결책이 보이지 않자, 아스트리드는 결국 작곡가를 찾아 나선다. 작곡가가 나타나면 쉽게 해결될 줄 알았던 일도 순탄치 않다. 곡의 의도를 기다리는 많은 이들의 호기심 어린 얼굴에 작곡가가 던진 멘트가 기가 막히다.
"무슨 생각으로 썼는지 다 잊었다. 30년 전 그것도 6주 동안의 일이고, 그 뒤로도 많은 곡을 썼다. 놀이터에 많은 애들이 있는데, 애를 잊어버렸다고 아무나 데리고 갈 수는 없지 않은가."
너무나 적확한 말이어서 어떤 반격을 노릴 틈도 찾지 못하는 사이, 제1 바이올린은 아무 의미도 없다는 듯 홀로 그곳을 떠난다. 작곡가가 그를 데려오기 위한 '설득의 논리'는 꽤 근사하다. "비발디 사계는 너무 많이 연주됐지. 예전에 만들어진 곡이어서 자연과 빗소리에 의존하는 소리를 사용해야 한다는 논리에는 반대일세. 그보다 도시 공장의 소리인 오늘날의 소리가 더 맞을지 모르지. 당신이 사용하는 선율처럼, 거트현보다 강철현이 더 어울리는 이유야."

연주자의 개성과 자존심을 살려주는 작곡가의 그럴듯한 한마디에 멤버들은 다시 뭉친다. 경매에서 1000만 파운드(한화 188억원)나 주고 산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여럿 모인 소리는 그 단음에도 귀와 심장이 짜릿할 만큼 '충격적 감동'을 안긴다. 연주 장소의 배치에 따라 달라지는 세계 최고의 악기를 듣는 재미와 맛도 풍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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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실력이 최고의 조화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작곡가는 4명의 화음이 만드는 흠 잡을 데 없는 연주 솜씨를 되레 불편해한다. "좋은 연주자 4명이 좋은 사중주는 아니다. 아버지가 지정한 연주자들이 모인 이유가 명확해야 한다. 250일을 꾸준히 함께 모여 서로를 느끼고 이해하며 조금씩 틀려야 사중주는 맞는다. 그게 조화다."
작곡가는 또 자신이 35번 마디에서 실수했다며 풀밭에서 작은 나비 하나가 살짝 방해하듯 연주해달라고 부탁한다. 때론 합주의 방향이 너무 모호해서 정리가 안 될 때 첼리스트가 리드미컬한 도입으로 방향을 잡아주거나, 너무 직설적인 왈츠를 완만하게 바꾸는 일련의 변화를 통해 사중주는 서서히 완성된다.
사중주는 그러니까, 작곡가의 총체적 설명을 요약해 정의하자면, 수천 마리의 찌르레기가 동그랗게 모여 본능적으로 춤을 추는 모습인 셈이다. 그러려면 서로 마주보고 느끼고 이해해야 한다. 사중주는 귀로 들으며 춤을 추는 것이다.
서로를 헐뜯는 험악한 분위기로 마음이 닫힐 때도 이를 푸는 열쇠가 음악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클래식이 아닌 록이다. 너바나의 '웨어 디드 유 슬립 라스트 나이트'(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바이올린이 선창(先唱)하자 다른 멤버들도 바통을 이어받고 화음을 넣는다.
그렇게 그들은 4분의 1이 아닌 1분의 4가 되어 간다. 최고의 실력자도 결국 결함을 지닌 보편적 존재이고, 서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떤 능력도 무용지물이 되는 상대적 법칙에서 우리 삶이 왜 독주가 아닌 4중주여야 하는지 이 영화는 되묻는다.
제9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데뷔작 '미셸'를 선보인 뒤 12년 만에 개막작으로 돌아온 그레고리 마뉴의 3번째 장편이다. 영화에선 실제 연주자 3명과 악기를 다룰 줄 아는 배우 한 명이 합을 맞춰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