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송기 롯데호텔 상무(조리R&D 실장) "데이터로 요리하는 시대…호텔 셰프의 진화"

"호텔 주방은 더 이상 전쟁터가 아닙니다. 이제는 연구소입니다."
40년 넘게 롯데호텔의 조리 현장을 지켜온 김송기 롯데호텔앤리조트 상무(조리 R&D(연구개발) 실장)는 조리 환경의 변화를 이렇게 단언했다.
1982년, 22세의 나이로 롯데호텔에 최연소 입사한 김 상무는 현재 대한민국 제11대 조리명장이자, 호텔 조리 개발의 중심인 '조리 R&D실'을 총괄하고 있다. '성실함'과 '꾸준함'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아온 그는 지금도 '조리사'라는 직업의 무게를 묵직하게 마주하고 있다.
그는 입사 초기부터 조리사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온몸으로 겪었다. 조리사가 '숨은 노동자'로 불리던 시절, 그는 서울을 시작으로 울산, 제주, 부산 등 국내 체인 호텔 개관에 참여하며 레스토랑 운영을 총괄했고, 러시아, 미국, 베트남 등 해외 지점 개점에도 참여해 글로벌 현장 경험을 쌓았다. "호텔이 생기면 그곳엔 늘 제가 있었습니다"라는 그의 말처럼, 김 상무는 현장을 지키는 조리사에서 주방을 설계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로 자리매김했다.
이 여정 속에서 '대한민국명장'에 오른 것은 그가 이룬 상징적인 성과다. 김 상무는 "명장은 단순히 요리를 잘한다고 주어지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기능장 자격증, 박사 학위, 특허 출원, 봉사 활동 등 다양한 조건을 갖춰야 하는 까다로운 절차를 5년 이상 치밀하게 준비했고, 수많은 국빈 행사와 국가 주요 만찬을 성공적으로 이끈 실전 경험도 그를 뒷받침했다. 김 상무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자리였다. 조직의 신뢰와 지원이 함께했기에 가능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한식의 세계화를 언급하며 단순히 김치나 불고기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한식이 세계인의 식탁에 오르기 위해서는 '건강'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발효의 미학'과 스토리텔링이 함께 가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짜파구리나 치맥처럼 K콘텐츠와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방식이 진짜 '세계화의 길'이라는 설명이다.

호텔 셰프의 역할도 시대와 함께 변했다고 진단한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었던 조리사가 이제는 '기획자'이자 '콘텐츠 제작자'가 됐다는 것이다. 주방 역시 달라졌다. 과거에는 뜨거운 불과 연기 속에서 '감(感)'에 의존했다면, 이제는 콤비오븐, 수비드 같은 정밀한 장비를 활용하는 실험실에 가까운 공간으로 바뀌었다. 그는 "현대의 주방은 연구소에 가깝다. 음식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조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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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인식과 흐름 속에서 2023년 김 상무는 롯데호텔앤리조트 조리 전문 조직인 '조리 R&D실' 출범을 주도했다. 수십 년간 체득한 현장 노하우를 바탕으로 메뉴의 표준화와 PB(자체 브랜드) 상품 개발에 나섰고, 그 첫 결과물이 롯데호텔 배추김치와 김치찌개 HMR(가정간편식)이다.
그는 경쟁력을 위해 '기본'으로 돌아갔다. 답은 '재료'였다. 강원도 영월, 전남 해남의 고랭지 배추, 경북 영양산 고춧가루, 일반 새우젓보다 5~6배 비싼 고급 육젓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단맛을 위해 감로잎과 토마토를 활용해 인공 감미료 없이 깊고 자연스러운 맛을 구현했다. '좋은 재료에서 좋은 맛이 나온다'는 요리의 본질을 과학과 데이터로 입증해 낸 셈이다.
자신의 이름 석 자로 남고 싶은 이미지에 대해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김 상무는 "그저 '성실하고 꾸준히 일한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다"며 "특별히 화려하진 않았지만, 늘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직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그는 언제나 현장을 먼저 지키고 솔선수범하며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작고 조용한 꿈을 간직하고 있다. 은퇴 후 좋은 재료로 좋은 음식을 만들어 손님들과 소통하는 소박한 레스토랑을 열고 싶다는 것이다. 김 상무는 "신혼 때 살던 아파트 인근 상가에서 장사를 하던 돈가스집 사장님이 기억난다"며 "그분이 들려준 '보람'이라는 단어가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