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전시는 왜 질문을 남기는가?

좋은 전시는 왜 질문을 남기는가?

이시종 국립세계문자박물관 홍보디자인부장
2026.07.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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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플랫폼 전문가 칼럼] 이시종 국립세계문자박물관 홍보디자인부장

[편집자주] 머니투데이 지식·학습 콘텐츠 브랜드 키플랫폼(K.E.Y. PLATFORM)이 소개하는 전문가 칼럼 코너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상설전시 1부에 전시된 훈맹정음 영상 캡쳐. /사진제공=국립세계문자박물관 제공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상설전시 1부에 전시된 훈맹정음 영상 캡쳐. /사진제공=국립세계문자박물관 제공

며칠 전 동네 카페에서 본 풍경이다. 80대로 보이는 한 어르신이 키오스크 앞에서 오래 멈춰 서 있었다. 화면은 빠르게 다음 단계로 넘어갔고, 어르신은 점점 작아졌다. 결국 옆에 있던 누군가 다가가 도와주었지만, 그 짧은 순간 한 사람이 정보 앞에서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 보았다.

우리는 흔히 정보가 평등하게 주어지는 시대라고 말한다. 검색하면 거의 모든 것을 찾을 수 있고, 영상 하나만 봐도 핵심을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정보가 누구에게나 도착한다고 해서, 이해도 누구에게나 같이 도착하는 것은 아니다.

전시도 마찬가지다. 개막하는 순간엔 보도자료가 배포되고 사람들이 몰리지만, 대부분의 전시는 시간이 지나면 조용해진다. 어떤 전시는 관람객 수만 남긴 채 사라지고, 어떤 전시는 사진 몇 장만 SNS에 남긴 채 잊힌다. 하지만 가끔은 전시장을 나온 뒤부터 시작되는 전시들이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떠오르고, 며칠 뒤 뉴스를 보다가 다시 생각나는 전시들 말이다. 좋은 전시는 정보를 전달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관람객 안에 질문을 남긴다.

잡지 편집장으로 일하던 시절에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단순히 트렌드를 나열하는 잡지는 금세 소비되고 잊혔지만, "왜 지금 이런 분위기와 욕망이 등장하는가"를 질문하는 콘텐츠는 오래 살아남았다. 결국 잡지는 하나의 편집된 세계관이고, 전시 역시 그렇다. 무엇을 보여주는가보다, 어떤 질문을 남기는가가 더 오래 작동한다.

올해 10월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은 훈맹정음 전시를 연다. 훈맹정음은 1926년 송암 박두성 선생이 만든 한글 점자다. 시각이 아닌 손끝으로 읽는 새로운 문자, 의미를 또 다른 감각으로 옮긴 또 하나의 문자 체계(writing systems). 올해가 정확히 반포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이 전시를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전시'로 소개하면 사람들은 한 번 보고 지나갈 가능성이 크다. 점자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순간 어떤 사람들은 한발 물러선다. 하지만 질문을 던지면 달라진다. 읽지 못하는 사람에게 문자는 권리였을까. 기술이 발전하면 장애는 사라질까. 오늘 우리의 정보 약자는 누구일까. 그 순간 훈맹정음은 더 이상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의 문제가 된다.

훈맹정음은 사실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정보를 매일 읽는다고 믿지만, 복잡한 공공 안내문 앞에서, 깨알 같은 약관 앞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키오스크 화면 앞에서, 너무 작은 글씨와 어려운 표현 앞에서 자주 멈춰 선다. 정보를 볼 수 있다고 해서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정보 앞에서 약자가 되기도 한다. 정보는 평등해 보이지만, 이해는 평등하지 않다.

나는 좋은 전시는 설명이 끝난 뒤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전시 공간은 언젠가 닫히지만, 콘텐츠는 그 이후를 만든다. 사람들은 전시를 한 번 보고 잊지만, 어떤 콘텐츠는 며칠이 지나도 다시 떠오르고, 어떤 문장은 일상의 한 장면 안에서 다시 살아난다. 전시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은 단순히 "이런 전시가 열린다"를 알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전시가 던지는 질문을 오늘의 언어로 번역하고, 관람객의 일상에서 생각이 계속 작동하게 만드는 일에 더 가깝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고민은 여기부터다. 어떤 콘텐츠는 정보만 남기고 끝나지만, 어떤 콘텐츠는 질문으로 확장된다. 어쩌면 앞으로의 콘텐츠 제작자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설계하는 사람에 가까워질지도 모른다.

훈맹정음 전시도 결국 같은 일이다. 점자를 보여주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100년 전 한 사람이 점 여섯 개로 다른 사람의 권리를 회복하려 했던 그 마음이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를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전시장 안에서는 점자가 보이지만, 전시장을 나선 뒤에는 다시 일상의 키오스크와 약관과 작은 글씨가 보일 것이다.

전시는 끝나지만, 콘텐츠는 생각을 계속 만든다. 점자를 손끝으로 읽어 내려가듯, 좋은 질문도 천천히 한 사람의 마음을 지나간다. 우리가 정말 만들어야 하는 건 전시가 아니라, 전시 이후에도 오래 살아남을 질문이다.

이시종 국립세계문자박물관 홍보디자인부 부장
이시종 국립세계문자박물관 홍보디자인부 부장

필자는 종합여성지 <Queen>과 월간 <문학사상>에서 편집장으로 일했으며 현재 국립세계문자박물관 홍보디자인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박물관 브랜딩과 전시 커뮤니케이션, 문화콘텐츠 기획 업무를 맡고 있으며 '콘텐츠는 인간을 어떻게 움직이는가', '문화기관은 어떤 질문을 남겨야 하는가'에 관심을 두고 있다. 언론과 문화기관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콘텐츠와 인간의 관계를 시대 감각의 관점에서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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