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 기능 재정립 기본계획' 발표..대형병원 환자 부담 늘리기 돌입
"우리(보건복지부)가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환자 부담을 늘리는 것 뿐이다"
손건익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이 17일 외래환자는 의원, 입원환자는 병원, 중증환자는 대형병원에서 맡는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한 말이다.
손 실장은 대형병원으로만 환자가 몰리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의원이 어디 있는지 잘 모르고, (사소한 증상을) 중병이 아닐까 의심하기 때문"이라며 "대형병원과 지방 중소병원 오진율을 비교해보면 차이가 없는데 환자들이 필요 이상의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게 문제"라고 답했다.
환자들이 의원급 의료기관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조차 없고, 정확한 진단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감이 없기 때문에 지금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복지부가 '기본계획'을 통해 가장 먼저 실시하는 조치는 대형병원을 찾는 경증환자들의 약제비 부담을 인상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18일 오후 2시 개최될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대형병원 경증외래환자 집중화 완화 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다. 이날 최종 결정을 하진 않을 것이라는 게 복지부의 설명이지만, 의결기관에 안건이 올라간 만큼 시행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시민사회단체 등에서는 뜻은 거창하지만 결과적으로 의원에 내 몸을 맡길 수 없어 큰 병원을 찾는 환자들에게 약값 인상이라는 짐만 더 얹어준 셈이라고 지적했다. 원인은 의원에 대한 신뢰부재인데, 해결책은 '돈'인 것이다. 시민사회단체가 "서민들 대형병원 문턱만 높인다"고 비난하는 이유다.
진수희 장관은 "경증환자들을 대형병원에서 밀어내는 정책과 의원으로 끌어당기는 정책을 병행하겠다"고 강조했지만 실제로 보건복지부가 이날 내놓은 '끌어당기는' 대책은 건강보험 재정이 많이 들어 적극 추진하는데 부담이 따르거나, 의사협회와 병원협회 등 각종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려 수년간 방치돼왔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당장 의원에 대한 국민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정부가 하겠다는 의료인 면허신고제는 의사협회의 강한 반대에 직면해 수년 째 표류하고 있다. 대형병원을 연구중심병원으로 만들어 대형병원이 외래환자를 덜 보게 유인하는 제도는 아직 근거법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의원을 찾는 만성질환자와 그 의원에 인센티브를 주는 '선택의원제'는 당장 돈이 필요한 제도라 건보재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 머뭇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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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은 경증외래환자, 병원은 입원환자, 상급종합병원(대형병원)은 중증환자를 진료하도록 수가체계를 조정한다는 큰 그림도 그렸지만, 이는 의료법에 각각 의료기관의 기능에 대한 정의부터 다시 해야 하는 장기 프로젝트다. 이걸 믿고 당장 환자들부터 부담을 감수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는 게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주장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성명서에서 "복지부가 추진하려는 핵심방안들은 의료공급자 간 이견과 반발이 크고 준비과정도 만만치 않은 사안들이라 말잔치만 무성하게 벌이다가 흔적 없이 사라지고 환자 본인부담금 인상만 실행될 공산이 크다"며 "구체적인 추진계획이 제시되지 않은 채 환자부담만 늘리려고 하는 정부를 보면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의 의지와 진정성을 확신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특히 연합회는 "환자 본인부담금 인상은 '현찰'로 내고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은 부도날 가능성 있는 '어음'으로 받으라는 정부 제안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보다 구체적인 추진계획을 마련해 발표할 때까지 환자 본인부담금 조정 논의는 일체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진 장관은 '기본계획' 발표 후 기자들과 가진 질의응답에서 "이해당사자들의 동의와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가능한 일이라 언제까지 구체적으로 해내겠다고 말할 순 없다"고 말했다. 환자단체가 정부를 믿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는 이날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전체 의료 시스템에서 종별 의료기관이 담당할 기능과 역할을 정하는 한편, 인센티브를 병행해 정착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핵심은 상급종합병원은 중증질환 진료와 교육 및 연구 기능을 담당하고, 중소병원은 특정질환 전문병원이나 지역거점병원으로 육성하겠다는 것. 동네의원은 경증외래환자에 대한 포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이를 위해 복지부는 상반기 중 의료기관 종별 표준 업무를 고시하고, 이에 맞게 진료가 이뤄지도록 환자 본인부담금 및 건강보험 수가체계를 단계적으로 조정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