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野, 텃밭이 사라진다]①광주 흔드는 '이정현 바람'··· 한나라당 약진 이끌까
"물어갈 놈들. 그만큼 해먹었으면 되았지. 민주당은 죄다 '입'으로 배려부렀어. 한 게 뭐가 있어? 잘난 놈도 똑똑한 놈도 필요 없다. 그저 호남에 잘 하는 사람이면 돼. 한나라당이면 어때?"
9일 광주광역시 서구 쌍촌동에서 만난 개인택시 기사 박춘식(58)씨는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일찌감치 선거전에 돌입한 예비후보들의 플래카드를 보며 민주통합당에 대한 불만을 잔뜩 쏟아냈다. 박씨는 "어느 당인지는 이제 볼 것도 없고, 그저 지역에 잘 할 사람인지가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9대 총선까지 90여 일을 앞둔 광주의 민심은 심상치 않았다. 특히 광주 지역의 총선 관련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1위를 차지하는 이변마저 연출됐다. 지난 9일 지역신문 광남일보가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 의뢰한 총선 지지도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광주 서구을 지역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인 이정현 예비후보(21.9%)가 현역 의원인 김영진 민주통합당 의원(19.9%)을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야권 후보 6명과 여권 후보 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다자구도였고 총선을 석 달 앞둔 상황에서 나온 결과라는 점에서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는 게 지역 정가 반응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야권의 정치적 성지, 광주에서 지역구 당선자를 낼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충격파는 적지 않다.
특히 이 의원이 여권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입'으로 불리는 최측근 인사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의원 '바람'은 총선을 넘어 대선 국면에서도 호남발 한나라당 '바람'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선택한 땅, 광주에서 '박근혜도 괜찮다'는 말을 듣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광주의 대표적 재래시장인 대인시장에서 만난 상인 이모씨(53·여)는 "박근혜라는 인물 자체에 대해서는 그리 나쁘게 보지 않는다. 앞으로 처세가 중요하다"며 "한나라당에 정권을 다시 주면 안 되겠지만 안철수·문재인씨가 강력하게 안 나오면 어쩔 수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 의원의 의정보고회가 열린 9일 서구 풍암동주민센터 풍경은 광주에 부는 '이정현 바람'을 실감케 했다. 100여 평 남짓한 주민센터 내 강당에는 200여 명의 지지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른바 민주당 '골수' 지지자들이었던 중·장년층이 다수였다. 강당 밖에 삼삼오오 모인 지지자들도 족히 수십 명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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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옮겨 서창동에서 열린 의정보고회에도 200명 이상의 지지자들이 모였다. 참석자들이 길 가장자리에 주차한 차량 때문에 주민센터 앞 2차선 도로는 시내버스가 제대로 다니지 못할 정도였다.
자신을 민주통합당 '골수 지지자'라고 소개한 한 참석자는 "이 의원이 민주당이었으면 더 없이 좋았을 텐데"라고 아쉬워하면서도 "광주 의원들보다 지역발전에 더 노력하니 지지한다"고 말했다. 주변의 다른 중·장년 참석자들도 "한나라당이란 것만 빼면 최고"라고 입을 모았다.

이 같은 '이정현 바람'은 일찌감치 광주 출마를 선언하고 지역에 공을 들여 온 그의 진정성이 효과를 발휘한 결과라는 평가다. 이 의원 역시 의정보고서 한가운데 "진심이면 통합니다"라는 문구를 적어 지역발전에 대한 자신의 진심을 홍보했다.
지역정가에 정통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일찌감치 광주 출마를 선언하고 호남 각종 현안 관련 예산 확보에 성공하면서 '호남 예산지킴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것이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이 의원이 광주뿐 아니라 호남 전 지역의 민원에 신경 쓴 것도 광주에 거주하는 호남 각 지역 출신 중·장년층의 '빚을 갚자'는 정서를 발동시킨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광주 정가를 휩쓸고 있는 '현역 교체론' 역시 변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광주일보는 2일 한국지방신문협회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 "차기 총선에서 현역 의원을 '지지할 것'이라는 응답자는 21.0%로 전국 16개 광역단체 중 광주가 가장 낮았다"고 보도했다. 남구 예비후보로 등록한 김명진 민주통합당 정책위 부의장은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높아져 현역 교체 여론이 높다"며 "당 간판에 기대기보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성실하게 유권자와 만나고 있다"고 말했다.
오수열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 의원의 약진 배경은 오래된 민주통합당 독주에 대한 식상함"이라며 "아울러 이 의원이 호남을 위해 민주통합당 의원들보다 몇 갑절 몫을 했다는 공감대가 지역 정·관계는 물론 대중적으로도 퍼져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 같은 '교체바람'이 실제 4·11 총선에서 한나라당 의원의 당선으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이 의원의 지역발전에 대한 공헌을 인정하지만 '투표소에만 들어서면 2번으로 손이 가는' 유권자들의 뿌리 깊은 민주통합당 충성도를 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한나라당 소속으로 광주 서구 갑 출마를 준비하던 정용화 예비후보가 9일 탈당을 선언한 것도 광주의 '반한나라당' 정서를 극복하지 못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원회 자문위원,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을 역임한 후 한나라당 소속으로 2008년 총선과 2010년 광주시장선거에 나서 11%, 15%의 두 자릿수 지지를 얻은 당내 몇 안 되는 호남 대표선수 중 한 사람이었다.
정 예비후보는 "청와대를 나오면서 갖가지 좋은 제안을 뿌리치고 광주라는 '불모지'에 내려왔다. 그럼에도 호남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것은 메아리 없는 외침이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호남 주자들의 개인 역량에 기댈 뿐 전국정당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중앙당 차원의 전략과 의지가 없다는 비판이다.
이 같은 회의론에도 이 의원은 '정면승부' 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내 가슴 속에 호남을 위한 열정이 끓어오르고 있고, 민주통합당 의원 누구보다도 호남의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해결할 의지가 있다"며 "광주 유권자들이 내게 기회를 한 번 주시기를 간곡히 당부한다"고 말했다. 4·11 총선에서 광주의 한나라당 바람은 과연 태풍으로 번질까, 아니면 미풍으로 잦아들까.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