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간판 버리고 '기술명장' 꿈꾸는 이들의 땀

[르포]간판 버리고 '기술명장' 꿈꾸는 이들의 땀

이현수 기자
2013.04.11 16:34

2013 지방기능경기대회 현장

↑ '2013년도 지방기능경기대회'에 참가한 김호준(경기기계공고·19)군이 용접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김군은 "조선소에 들어가 배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 꿈이기 때문에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사진 = 이기범 기자 leekb@
↑ '2013년도 지방기능경기대회'에 참가한 김호준(경기기계공고·19)군이 용접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김군은 "조선소에 들어가 배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 꿈이기 때문에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사진 = 이기범 기자 leekb@

11일 오전 '2013 서울지방기능경기대회'가 열린 서울 용산구 용산공업고등학교. 용접장에 들어서자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귀를 찢을 듯 울렸다. 섭씨 1천도가 넘는 하얀 불꽃과 용접봉의 피복제 타는 냄새가 눈과 코를 자극했다.

10여 명의 앳된 남고생들은 가로 세로 1미터가 조금 넘는 공간에 각자 들어가 작업에 몰두했다. 용접마스크를 쓴 머리 위로는 피복제가 타면서 나는 기다란 연기가 연신 피어올랐다.

이날 경기는 올해 지방경기대회의 일부다. 대회는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 후원으로 지난 10일부터 전국 17개 시·도 96개 경기장에서 진행되고 있다. 48개 직종에 참가자만 8468명이다. 서울에서는 용산공고를 비롯해 성동공고, 한양공고, 인력공단 남부지사와 서울지부 경기장에 966명이 참가했다. 경기는 3일간 지속된다.

용접 직종은 총 18시간짜리 과제다. 전날부터 진행된 경기로 참가자들이 챙겨 입은 특수 장갑과 가죽 작업복, 장화 곳곳에는 기름때가 진하게 묻었다. 등마다 수험 번호도 큼지막하게 달렸다. 고개를 숙여 용접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박박 깎은 머리에 휴지로 양쪽 콧구멍을 틀어막고 임하는 학생도 있었다.

심사위원은 "정면, 평면, 측면을 그린 도면을 주면 용접을 해서 그대로 만드는 과제"이라며 "완성되면 물을 채워 수압을 올리고 채점한다. 완성품이 터지지 않으면 용접이 잘된 것이고, 물이 새면 불량이기 때문에 낮은 점수를 주게 된다"고 설명했다.

과거에 비해 기술 명장이 줄고 있다는 우려와 달리, 이날 경기장은 기능 명장이 되고자하는 학생들로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실제로 최근에는 고졸 취업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학력이나 간판보다 실력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서 참가자 수준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 '2013년도 지방기능경기대회' 조적시험에 참가한 고등학생들이 작업에 한창이다. ⓒ사진 = 이기범 기자 leekb@
↑ '2013년도 지방기능경기대회' 조적시험에 참가한 고등학생들이 작업에 한창이다. ⓒ사진 = 이기범 기자 leekb@

용접실 바로 옆 야외경기장에서는 조적(組積)작업이 한창이었다. 조적 경기에 참가한 남고생 4명은 무릎엔 보호대를, 허리에는 공구주머니를 두른 채 저마다 시멘트를 떠서 벽돌에 정성스럽게 펴발랐다. 벽돌이 잘 붙으라고 두드리고, 삐져나온 시멘트를 걷어내고, 기울기를 맞추는 작업이 반복됐다.

박태휘 심사위원은 "진짜 에이스는 고등학생 3학년들"이라며 "2학년 중에서 수상자가 나온 적도 있다. 1학년 학생들도 참관하러 오는 등 열기가 대단하다"고 말했다.

지난 1965년에 시작해 올해로 48회째를 맞는 지방기능경기대회는 그간 수많은 명장들을 배출한 우리나라 기능인의 '산실'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용접, 조적, 주조, 판금 등 전통적인 종목 외 게임개발, 컴퓨터정보통신, 웹디자인 등도 새로 추가됐다.

이날 학교 강당에서는 게임개발 경기가 한창이었다. 참가자들은 20시간 동안 과제인 '액션슈팅게임'을 완성해야 한다. 그래픽과 프로그래밍 각 1명씩 2명이 한 조가 돼 콘텐츠를 만들었다. 한쪽에서는 복잡한 컴퓨터 수식들을 입력했고, 그래픽 담당 참가자는 PC 밑에 놓인 태블릿으로 전투기와 폭발물 색칠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 '2013년도 지방기능경기대회' 게임개발 종목에 참가한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고 있다. 게임개발은 '프로그래밍'과 '그래픽' 2인 1조로 진행됐다. ⓒ사진 = 이기범 기자 leekb@
↑ '2013년도 지방기능경기대회' 게임개발 종목에 참가한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고 있다. 게임개발은 '프로그래밍'과 '그래픽' 2인 1조로 진행됐다. ⓒ사진 = 이기범 기자 leekb@

지방기능경기대회 참가자는 고등학생들이 85.7%를 차지하고 있지만, 주부나 지역민이 참가한 종목도 있다. 주로 의상디자인이나 헤어디자인, 화훼장식 종목이 그랬다.

한복 경기에는 고등학생 남녀 두 명과 중년 여성 12명이 참가했다. 직업인이거나 학원에 다니면서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었다. 한복경기장은 용접장과는 달리 쥐죽은 듯 조용한 가운데 가위소리만 사각사각 들렸다. 신발도 한쪽에 벗어두고 비닐 돗자리위에서 경기를 치렀다.

이번 경기에서 주어진 과제는 바지저고리다. 아직 재봉단계 전이었기 떄문에, 옥색 항라를 시침핀으로 고정하고, 자로 재단하고, 대가위로 오리는 작업이 이어졌다. 참가자마다 챙겨온 대형 반짇고리에는 실과 시침핀, 쪽가위, 풀, 커터칼 등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경기가 모두 끝난 13일엔 4시간여의 채점을 통해 수상자가 가려진다. 금상, 은상, 동상을 뽑고, 종목당 참가자가 20명 이상일 경우 우수상도 주어진다. 수상자는 기능사 자격증과 함께 산업기사 필기 면제 혜택도 받는다. 또 오는 9월 강원도에서 개최되는 48회 전국기능경기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전국단위경기 각 종목에서 다시 뽑힌 금·은·동 선수들은 국제 대회에 나가 세계인들과 실력을 겨루게 된다. 올해는 42회 국제기능올림픽이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한편 이번 지방기능경기대회에는 아랍에미리트(UAE) 기능경기 위원회가 심사위원과 대표선수 12명을 파견했다. 이들은 용접, 웹디자인, 자동차정비 등 6개 종목을 참관한다.

산업인력공단은 숙련기술인에 대한 평가와 인식개선을 위해 기능경기대회 입상자의 취업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2007년부터는 삼성전자, 현대중공업 등 대기업과 기능장려 협약을 체결했고, 현재까지 917명의 취업을 지원했다.

송영중 공단 이사장은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경제강국이 되기까지는 숙련기술인들의 땀과 노력이 있었다"며 "많은 기업에서 기능경기 대회 선수들을 채용할 수 있도록 관심과 성원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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