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도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병을 얻은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이에요. 왜 뜻이 다르다고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지…”
지난 9월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대표단을 탈퇴하고, 가족대책위원회(이하 가족위)를 구성한 정애정씨는 최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하소연했다. 가족별로 서로 다른 입장이 반영되지 않는 반올림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불만이었다.
피해자 가족 중엔 일의 선후를 달리하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함께 투쟁하던 대표단 8명 중 6명의 생각이 이랬다. 자신들만이 보상받겠다는 게 아니라, 중재위를 통해 자신들에게 적용된 기준으로 다른 피해자 가족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기를 바란 경우다.
가족위에에서 빠져 반올림에 남은 대표 황상기씨와 이종란 노무사 등은 반도체 피해자 문제를 공론화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 반올림이 현재는 가족위와 삼성전자가 합의한 제3의 조정기구(조정위원회)를 거부한다. 자신들과 뜻을 달리한 가족위에 대해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틀렸다'고 말한다.
조정위를 통하면 협상에 참여한 가족들에게만 보상이 이뤄지고 삼성전자가 손을 털고 나가버릴 것이기 때문에 반올림을 통해 협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조정위를 통해 피해보상 기준이 마련되면 피해자 모두 보상하고 재발 방지대책까지 함께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혀 왔다.
가족위 구성원들은 가급적 빠른 시일 내 협상이 타결되길 희망한다. 반면 반올림은 △사업장 화학물질 정보공개 △노조설립 등 타결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11개 사항을 삼성전자에 요구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가족위 입장에게는 반올림이 피해자 이익을 우선시하기보다는 활동가의 정치적 이상을 우선시하는 태도로 비치고 있다.
삼성전자와 가족위 모두 반올림의 조정위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조정위원장으로 추대된 김지형 전 대법관도 반올림 참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동안 반올림이 누구보다 피해자 가족들을 위해 애를 써왔던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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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협상이 지금 상황까지 진전될 수 있었던 것은 삼성전자와 반올림이 대화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조정위에서 어떤 결론이 내려질 것인지 예단하고 대화 자체가 이뤄지지 못하는 지금 상황은 양쪽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피해자 가족들이 가장 빨리 위로 받을 수 있는 길은 '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반올림이 대화와 소통의 길로 빨리 들어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