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전직 경제부처 장관은 경기진단을 해 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뜸 '산업정책 실종론(論)'을 펼쳤다. "외부변수 핑계에 앞서, 국내서 어떤 정책적 대응을 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책임론은 자연스럽게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향했다. 위기를 앞두고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거다. 정부주도 대책을 내놓기보다는 "산업부는 대체 하는게 뭐냐"며 불만이 쌓일대로 쌓인 기업들에게 "CEO(최고경영자)가 해외로 나가라"며 선제적 대응을 부탁하고 있다.
윤 장관은 산업부 역사상 최장수 장관이며 현 정부 초기 멤버다.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기로 유명하다. 정권 초 회의를 마치며 대통령이 "윤 장관 머리 자르셨네요"라고 말해 국무위원들이 깜짝 놀랐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대통령의 신임에 윤 장관은 워커홀릭적 면모로 화답했다. 주말마다 간부회의를 열고 독려했다. 에너지신산업이나 동북아 오일허브 프로젝트 등이 여기서 나왔다. 산하기관 임금피크제 도입도 착착 진행 중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시름을 덜어주기엔 역부족이다. 기업의 성장동력 부재는 여전하고, 위기를 눈앞에 둔 최근 내놓은 성과물들은 오래전에 씨를 뿌려놓은 FTA(자유무역협정)의 수확을 제외하면 모두 미미한 수준이다.
노동개혁이 모든 이슈를 집어삼킨 이후에는 산업부의 복지부동이 극에 달하고 있다. 이 전직 장관은 "산업 주무부처의 책임감을 찾아보기 어려운 지경이 됐다"고 말했다. 윤장관이 최근 기자들과 만나 "노동개혁 지연이 수출부진의 원인"이라고 말한 것 역시 위기진단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냈다.
경제위기 앞에 배를 깔고 누운 것은 비단 산업부 뿐이 아니다. 노동개혁이 이슈의 블랙홀이 된 후 대부분의 경제부처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로 루틴한 업무 속에서 눈치만 보고 있다. 대책 수립을 진두지휘해야 하는 기획재정부는 부총리에게 노동개혁 트로피를 안기느라 다른 쪽은 관심을 둘 여력도 없어 보인다. 다른 경제부처들은 말 할 것도 없다.
노동개혁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후속적 대응이 아닌 선제적 대응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정책은 이미 위기가 눈 앞에 왔는데도 위기의식조차 없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 한 전직 경제관료는 "산업정책 부재는 경제팀 태업의 또 다른 이름이며, 경제팀 태업은 레임덕의 또 다른 이름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