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전화로 수군수군, 종이값 70% 폭등...'짬짜미' 6개 제지사, 3383억 과징금

공중전화로 수군수군, 종이값 70% 폭등...'짬짜미' 6개 제지사, 3383억 과징금

세종=박광범 기자
2026.04.23 12:00

20년만에 가격재결정 명령

자료=공정거래위원회
자료=공정거래위원회

3년 10개월 간 교과서와 책 등에 쓰이는 인쇄용지 가격을 담합한 6개 제지사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3000억원대 과징금과 가격 재결정 명령을 받게 됐다. 가격재결정 명령이 내려진 건 20년 만이다.

공정위는 6개 제지사의 가격담합 행위에 대해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 등의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3383억2500만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23일 밝혔다. 6개사는 △한국제지 △한솔제지 △무림에스피 △무림페이퍼 △무림피앤피 △홍원제지 등이다. 이중 한국제지와 홍원제지에 대해선 법인 고발도 결정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6개 제지사는 2021년 2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정기적·비정기적으로 최소 60차례 이상 만나 총 7차례에 걸쳐 인쇄용지 기준가격을 인상하거나 할인율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판매가격 인상을 합의했다.

이 과정에서 담합을 주도한 제지사 임직원들은 담합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연락 과정에서 본인 명의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고 근처 공중전화나 식당 전화, 타부서 직원의 휴대전화 등을 이용해 연락을 취했다. 서로의 연락처는 별도 종이에 이니셜과 가명 등으로 메모했다.

특히 거래처에 가격 인상을 먼저 통보하는 업체에 거래처의 반발이 집중될 수 있으므로 담합 참여 회사 간 통보 순서도 합의했다. 합의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는 동전이나 주사위 던지기 등으로 순서를 결정하기도 했다.

이들 6개사가 국내 인쇄용지 판매시장에서 차지하는 시장 점유율은 95%에 이른다. 이에 따라 이들 회사의 담합 기간 인쇄용지 판매가격이 평균 71%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쇄용지는 교과서와 단행본, 잡지, 화보 등 다양한 인쇄물의 중요 원재료로 쓰인다. 제지사들의 가격 담합은 인쇄 업체와 출판사의 제작비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소비자 가격 상승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특히 제지사들은 코로나19(COVID-19),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국민경제 전반이 어려움을 겪는 시기에 원가 상승 부담을 거래 상대방에 전가하기 위해 가격담합을 했다고 공정위는 꼬집었다.

이에 공정위는 6개 제지사의 담합 관련매출액 약 4조원에 홍원제지(4%)를 제외한 나머지 5개사에 대해선 12%의 부과기준율을 적용해 3000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결정했다. 공정위가 담합 사건에 부과한 과징금 중 역대 5번째로 큰 규모다. 제지업체 담합 사건에 부과한 과징금 기준으로는 역대 최대다.

특히 이들 회사가 과거에도 반복적으로 법 위반을 하는 등 담합 행위가 관행적으로 고착화됐단 점을 고려해 적극적 시정조치도 부과했다. 2006년 4월 밀가루 담합 건 이후 20년 만에 독자적 가격 재결정 명령 카드를 꺼낸 것이다. 이에 따라 6개 제지사는 독자적으로 인쇄용지 가격을 재결정하고 향후 3년동안 반기마다 변경 내역을 공정위에 보고해야 한다.

남동일 공정위 부위원장은 "일차적으로 기업들이 스스로 가격 수준을 정하되, 재결정된 가격을 공정위에 보고하기 전 협의하는 과정을 뒀다"며 "보고할 때도 가격과 그 근거를 함께 보고하도록 해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가격인하 등 가격을 결정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2개사에 대해서만 법인 고발을 결정한 것과 관련해선 "고발기준에 따라 개별 사업자들의 위반 행위 내용이나 관여 정도, 역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주병기 공정위원장은 이날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TF(태스크포스) 회의에서 "축소되는 인쇄용지 시장, 낮은 수익성, 공급과잉 등 제지 산업이 겪고 있는 난관을 기술혁신과 신사업 개척 등 생산적 경쟁이 아니라 오히려 경쟁을 제한하고 소비자 등 다른 시장 참여자에게 피해를 전가하는 담합으로 대처하고자 했던 불공정 행위"라며 "이런 중대 법위반 행위에 대해 엄정한 과징금 부과와 함께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을 부과함으로써 담합으로 왜곡된 가격이 정상 수준으로 회복될 때까지 감시와 지도를 지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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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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