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개월 연속 흑자를 이어오던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당장 1월부터 무역수지가 이미 50억달러(약 6조원) 가까운 적자를 본 터라 경상수지도 흑자 행진이 깨질 공산이 크다. 평소라면 경상수지 개선을 위해 고환율 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환율 하락이 도움이 된다는 분석이다. 그 이유가 뭘까.
1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대비 2원 오른 1198.5원에 마감했다. 미국의 통화정책이 긴축으로 돌아서면서 최근 환율이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
대개 경상수지 또는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면 고환율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환율이 오르면 수출이 늘어 경상수지 개선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수출품 가격을 달러로 환산했을 때 가격이 떨어지는 효과가 있어서다. 예컨대 원/달러 환율이 1000원인 경우 1만원짜리 상품 가격은 10달러지만, 원/달러 환율이 2000원으로 오르면 원화기준 가격은 변하지 않아도 수출 가격은 5달러로 떨어지게 된다. 달러를 주고 한국산 제품을 사는 외국인 입장에서 가격이 50% 떨어진 효과가 나타나 판매량이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오히려 환율이 내리는 게 경상수지에 도움이 된다는 분석이다. 최근 무역수지 적자가 에너지와 원자재 등 수입가격 상승 때문에 발생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WTI(서부텍사스산원유) 가격은 지난 1월 평균 배럴당 88.15달러였다. 지난해 1월 평균가격인 배럴당 52.2달러와 비교하면 72.1% 오른 셈이다. 같은 기간 니켈 가격은 29.4%, 아연 가격은 41.1%, 구리 가격은 21.8%,, 알루미늄 가격은 53.9% 상승했다.
에너지·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환율이 높아지면 기업들의 비용부담이 가중된다. 채산성 악화가 더 심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예컨대 환율이 1000원으로 유지되는 상황에서 원유 1배럴 가격이 90달러에서 100달러로 오르면 한국 기업은 원유 1배럴을 사기 위해 1만원을 더 내야 한다. 이에 더해 환율이 1100원으로 상승하면 원유 1배럴 구입가격은 9만원에서 11만원으로 2만원이 오르게 된다.
물론 환율상승분은 기업의 수출가격에도 반영된다. 그러나 원유 또는 원자재와 개별기업이 생산하는 상품은 가격의 작동방식이 다르다. 국제유가는 글로벌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에 차별없이 적용되지만 각 기업이 수출하는 물품 가격은 시장지배력, 품질 등에 따라 달리 변동된다. 상대적으로 사정이 열악한 중소·중견 수출기업은 비용상승분을 수출가격에 적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다. 경쟁력이 있는 대기업이 생산하는 제품도 에너지·원자재 가격 변동 전체를 반영하기는 쉽지 않다. 또 그마저도 시차가 존재한다. 원자재 가격은 즉시 오르지만 수출품 가격은 비교적 천천히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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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에너지 가격 상승이 국내에 적용되는 전기·가스요금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국제유가 상승에 환율 상승이 겹쳐 한국전력과 발전공기업, 한국가스공사 등의 부담이 커지면 오르지 않을 수 있었던 요금이 오를 수 있다. 실제로 일각에서는 올해 한전이 10조원 가까운 영업적자를 볼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적개선을 위해서는 전기요금을 올릴 수밖에 없고 이는 민간의 부담으로 돌아가게 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환율이 오르면 (에너지와 원자재) 수입단가가 높아지는 만큼 환율을 낮은 수준에서 유지할 수 있다면 (기업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