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휴지가 된 이유…문제는 '유동성'

돈이 휴지가 된 이유…문제는 '유동성'

최민경 기자
2026.02.01 06:15

[MT리포트]당신의 돈이 잠든 사이②

[편집자주] 유동성의 시대다. 돈이 풀리자, 돈은 가치를 잃었다. 시중에 풀린 돈은 자산 시장으로 향했다. '에브리씽 랠리'(Everything Rally)는 달라진 자산 시장의 흐름을 보여준다. 자산 가치가 올라가자 돈의 가치는 더욱 떨어졌다. 랠리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실제로 가난해졌다. 그 현상을 짚어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 중앙은행은 경기부양을 위해 완화적 통화정책을 경쟁적으로 펼쳤다. 코로나19 팬데믹 등 위기 때마다 유동성은 풀렸고, 넘치는 돈은 소비보다 자산시장으로 흘러갔다.

주식, 부동산 등 투자자산들이 동시에 오르는 '에브리씽 랠리(Everything Rally)'는 그 상징이다. 돈이 넘칠수록 자산가격은 더 뛰었고 돈의 존재감은 희미해졌다.

한국은 경제 규모와 비교해 유동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광의통화(M2) 비율은 2008년 3분기 처음 100%를 넘어선 뒤 꾸준히 상승해 2021년 2분기 150%를 상회했으며 지난해 3분기에는 153.8%를 기록했다. M2는 현금과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 예금 외에도 머니마켓펀드(MMF), 2년 미만 정기 예·적금 등 곧바로 현금화할 수 있는 단기 금융상품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통화 지표다.

한국의 M2는 최근 10년 동안 2232조원(2015년 10월 평잔)에서 4498조원(2025년 11월 평잔) 수준으로 2배 가량 늘었다. 특히 시중 통화량 증가율은 지난해 8월 이후 4개월 연속 8%대(수익증권을 포함한 구 기준)의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그 결과 시중 통화량은 4500조원에 육박하며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통화량도 늘어난 것이지만 이같은 통화량 증가는 필연적으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야기한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화폐가치가 떨어지고 소비자들이 갖고 있는 화폐의 실질 구매력이 낮아진다. 2005년 7억원으로 살 수 있던 주택 가격이 현재 30억원을 상회하는 현상은 돈의 가치 하락을 뒷받침한다. 1980년대 1000원은 짜장면도 사먹을 수 있는 돈이지만 지금 1000원의 가치는 편의점에서도 살 수 있는 물건이 없을 정도다.

한국은행은 유동성 과잉 우려에 대해 최근 M2 증가율이 장기 평균을 소폭 웃도는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금리 인하 국면과 비교해도 증가 속도가 특별히 빠르다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한국의 GDP 대비 통화량이 미국, 유럽 등 주요국보다 많다는 점을 들어 원화 약세와 고환율의 한 요인으로 지적한다.

과도한 통화량 증가는 문제를 야기한다. 시중에 넘치는 자금이 공장·설비·연구개발처럼 생산·고용을 유발하는 실물투자보다 금융자산이나 부동산, 해외로 이동할 경우 환율과 자산시장 변동성을 확대할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2015년에 발간한 '글로벌 유동성, 주택 가격 및 거시경제'연구 논문에서 유동성 충격은 자산가격을 증폭시킨다고 분석했다. IMF가 1990~2012년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한국이 포함된 신흥국 그룹에선 주택가격 상승률의 상승률은 분기당 4.8%로 선진국(1.9%)의 두 배 이상이었다. 주가 변동성도 신흥국이 15.0%로 선진국(10.1%)보다 훨씬 컸다.

유동성이 풀릴수록 자산가격이 더 크게 출렁이며 랠리에 올라탄 계층만 부를 축적하는 구조가 강화된다는 지적이다. 자산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유동성은 '기회'가 아니라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유동성 쏠림'은 불평등 확대로 이어진다. 국회예산정책처가 2021년 발표한 '분위별 자산·소득 분포 분석 및 국제비교' 보고서는 한국의 불평등이 소득보다 자산에서 훨씬 더 심각하다고 짚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우리나라 가계 자산은 소득에 비해 격차가 더 크고 상위계층 집중도 또한 심하다"며 "처분가능소득 격차는 완화 추세였지만 2016년 이후 자산가격 상승이 가계자산 격차 확대를 다시 주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국내의 통화량 증가율은 높은 수준인데 통화량이 늘고 유동성이 늘면 그만큼 돈의 가치가 하락하고, 돈의 가치가 떨어지면 실물자산(부동산·주식) 가치가 상대적으로 올라가는 현상이 맞물릴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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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경 기자

안녕하세요. 경제부 최민경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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