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만 만들던 국산콩의 반란…이번엔 프리미엄 오일이다

두부만 만들던 국산콩의 반란…이번엔 프리미엄 오일이다

이수현 기자
2026.08.04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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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 네츄르먼트 요리연구소장(왼쪽)과 홍성미 네츄르먼트 대표가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네츄르먼트 사무실에서 국산 콩기름 브랜드 '마지담'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이수현
이미경 네츄르먼트 요리연구소장(왼쪽)과 홍성미 네츄르먼트 대표가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네츄르먼트 사무실에서 국산 콩기름 브랜드 '마지담'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이수현

유리병 뚜껑이 하나씩 열릴 때마다 공기 중에 낯선 향이 번졌다. 산초를 닮은 제피의 청량한 향, 봄나무 새순을 떠올리게 하는 가죽순의 은은한 향, 그리고 국산 콩 특유의 고소한 냄새.

지난 달 24일 찾은 서울 마포구 '네츄르먼트' 사무실은 식품회사가 아니라 작은 향신료 연구실에 가까웠다. 20여 평 남짓한 공간 한쪽 벽에는 수십 개의 향신료 병이 빼곡히 놓여 있었고, 작업대에는 압착 콩기름과 계량컵, 레시피 노트가 어지럽게 펼쳐져 있었다.

그 공간에서 가장 먼저 들은 이야기는 의외로 '기름'이 아니라 아이들이었다.

"뇌전증 환아들은 지방 섭취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올리브오일은 특유의 알싸한 맛 때문에 아이들이 맵다고 느끼더라고요."

홍성미 대표는 잠시 콩기름 병을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그때 생각했어요. 국산 콩기름의 고소한 풍미라면 아이들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겠다고요."

선재스님의 밥상 철학 담아…제피·가죽순 향 입혔다
선재스님(가운데)과 홍성미 네츄르먼트 대표(왼쪽), 이미경 네츄르먼트 요리연구소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국산 콩기름 브랜드 '마지담'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네츄르먼트 제공
선재스님(가운데)과 홍성미 네츄르먼트 대표(왼쪽), 이미경 네츄르먼트 요리연구소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국산 콩기름 브랜드 '마지담'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네츄르먼트 제공

이 한마디가 국산 압착 콩기름 개발의 출발점이었다.

기름은 오랫동안 볶고 튀기는 부재료였다. 하지만 최근 식문화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소비자들은 이제 기름의 원산지와 제조 방식, 향과 풍미까지 따진다. '무엇으로 조리했는가'보다 '어떤 기름을 사용했는가'를 묻기 시작했다. 건강을 중시하는 흐름과 미식 문화가 맞물리면서 기름이 하나의 식재료로 다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국산콩도 이같은 변화의 한가운데 서 있다.

그동안 두부와 장류의 원료로 소비되던 국산콩이 이제는 프리미엄 식용유라는 새로운 시장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네츄르먼트가 만든 제품은 평범한 콩기름이 아니다. 국산 백태를 저온에서 천천히 압착해 짜낸 기름에 우리 토종 향신료인 제피와 가죽순의 향을 입혔다.

이 제품에는 사찰음식 명장 선재스님의 철학도 녹아 있다. 선재스님의 제자인 이미경 네츄르먼트 요리연구소장은 오랫동안 사찰음식을 연구하며 배운 생각을 기름에 담아내고 싶었다고 했다.

"스님께서는 늘 맑은 음식을 먹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좋은 기름은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재료가 아니라 건강한 식문화를 만드는 식재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피를 선택했다. 고춧가루가 흔하지 않던 시절 김치에 넣던 우리 향신료다. 가죽순도 넣었다. 참죽나무의 어린 순에서 나는 은은한 향이 국산콩의 고소함과 의외의 조화를 이뤘다. 200mL 한 병을 만드는 데 국산콩은 약 3㎏ 가까이 들어간다. 생산성이 높은 제품은 아니다. 대신 맛과 향, 그리고 국산 원료라는 가치를 담았다.

국산콩, 프리미엄 식용유 시장을 노리다
정형남 쿠엔즈버킷 상무가 지난 24일 서울 중구 쿠엔즈버킷에서 국산 콩기름 제조 과정에서 나온 대두박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이수현
정형남 쿠엔즈버킷 상무가 지난 24일 서울 중구 쿠엔즈버킷에서 국산 콩기름 제조 과정에서 나온 대두박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이수현

이런 시도는 네츄르먼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산 콩을 프리미엄 오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는 식품업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서울 동대문 인근의 작은 방앗간 '쿠엔즈버킷'도 국산 비유전자변형(Non-GMO) 콩으로 프리미엄 콩기름을 짜고 있다. 참기름으로 먼저 이름을 알린 이 회사는 최근 콩기름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박정용 대표는 소비자들의 변화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체감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기름을 볶고 튀기는 재료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음식의 맛과 건강을 결정하는 식재료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번 구매한 소비자는 대부분 다시 찾는다고 했다. 가격은 일반 식용유보다 훨씬 비싸지만 재구매율은 거의 100%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시장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글로벌 식품기업 카길(Cargill)은 일반 식용유 시장이 연평균 4~5% 성장하는 반면 프리미엄 오일 시장은 연평균 17~18%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산 콩은 대부분 Non-GMO 품종이다. 일반 대두유처럼 화학용매를 이용하지 않고 저온에서 천천히 압착하면 콩 본연의 풍미를 살릴 수 있다.

압착 후 남는 대두박도 버려지지 않는다. 단백질 소재와 분말, 스낵 원료 등 또 다른 식품 산업의 원료가 된다. 국산콩의 쓰임새 자체가 달라지고 있는 셈이다.

박정용 쿠엔즈버킷 대표가 지난 24일 서울 중구 쿠엔즈버킷에서 국산 압착 콩기름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이수현
박정용 쿠엔즈버킷 대표가 지난 24일 서울 중구 쿠엔즈버킷에서 국산 압착 콩기름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이수현

하지만 아직 현실의 벽은 높다. 국산 압착 콩기름 한 병(200mL)은 3만~4만원에 이른다.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수입산 대두유와 비교하면 용량당 가격 차이는 수십 배다.

정부는 생산비를 낮추기 위해 정부는 경남 사천에 국산 콩기름 전문 가공공장 건립을 지원하고 있다. 내년 말부터 식용유지류에도 GMO 완전표시제가 적용되면 국산 Non-GMO 콩기름의 차별성도 한층 부각될 전망이다.

결국 시장을 키우는 것은 제도가 아니라 소비자의 선택이다. 기름을 단순히 볶고 튀기는 재료로 볼 것인가, 아니면 맛과 건강을 좌우하는 식재료로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다.

그 인식의 변화가 두부와 된장의 원료였던 국산콩을 '프리미엄 오일'이라는 새로운 시장으로 이끌고 있다. 작은 유리병 속 고소한 콩기름은 어쩌면 국산콩 산업이 찾은 가장 새로운 미래일지도 모른다.

정혜련 농식품부 식량정책관은 "전략작물직불제 등을 통해 국산콩 생산 기반이 확대된 만큼 두부와 장류 중심의 기존 소비처뿐 아니라 기름, 단백질 소재, 가공식품 등으로 수요를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며 "식용유 등 국산콩 가공시설 확충과 제품 개발, 판로 확대를 적극 지원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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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기자

안녕하세요. 경제부 이수현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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