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정한 모습으로 신중하게 생각한 뒤 조심스레 답변을 내놓는 수호의 모습은 '힙하게' 속 김선우의 모습과 어딘가 닮아 있었다. 깊은 생각이 담긴 답변을 하다가도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아닐 수도 있지만"이라고 단서를 다는 수호의 모습은 그가 평소에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가정하는지 느껴졌다. 다양한 변수를 계산하고 모든 상황을 계획하는 수호는 연기도 마찬가지로 접근했다. 그리고 그 결과, 자기 확신이라는 당근을 거머쥐었다.
지난 1일 종영한 JTBC 주말드라마 '힙하게'(연출 김석윤, 극본 이남규)는 범죄 없는 마을에 우연히 생긴 사이코메트리 능력으로 동물과 사람의 과거를 볼 수 있게 된 봉예분(한지민)과 광수대 복귀를 위해 그녀의 능력이 절실히 필요한 욕망덩어리 엘리트 형사 문장열(이민기)이 자잘한 생활밀착형 범죄를 공조수사하던 중, 연쇄살인사건에 휩쓸리며 벌어지는 코믹 수사 활극이다. 수호는 갑자기 무진시에 내려와 편의점 알바생으로 일하는 김선우 역을 맡았다.

방송 종영 이후 서울 성수동 SM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인터뷰를 진행한 수호는 "소집해제 이후 3년 반 만에 하는 매체 작품이라 뜻깊었다"며 "배우 수호뿐만 아니라 인간 김준면으로서도 성장을 많이 하게 됐다"며 작품을 마친 소감을 전했다.
'힙하게'는 '눈이 부시게', '나의 해방일지' 등을 만든 김석윤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소집 해제 직후 '나의 해방일지'를 보며 숨이 트였다고 말한 수호는 김석윤 감독의 존재가 '힙하게'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였다고 밝혔다.
"김석윤 감독님의 전 작품을 많이 봤어요. '눈이 부시게'도 재미있게 봤고 특히 '나의 해방일지'는 제 인생작이에요. 소집 해제 직후였는데 '나의 해방일지'를 볼 때만큼은 일이나 여러 가지에서 벗어나서 숨이 탁 트였던 것 같아요. 사실 김석윤 감독님 작품인지 몰랐는데 많이 본 연출인 것 같아 찾아보니 김석윤 감독님 작품이더라고요. 실제 있을 것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허구적이고 말이 안 되는 사건들이 조화를 이루는 게 매력적인 것 같아요."

수호를 캐스팅한 김석윤 감독은 제작 발표회에서 "컴퓨터 같은 계획된 연기를 잘했다. 그러니까 이번엔 계산기를 놓고 연기해 보면 어떨까 하면 또 다른 연기가 나오더라"고 칭찬했다. 이 같은 발언에 대해 "김석윤 감독님이 슈퍼컴퓨터라면 나는 계산기 정도"라며 '계산기 발언'이 나오게 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감독님이 엄청나게 계산적이고 계획적이세요. 모든 신에 대한 계획이 있으시고 콘티도 직접 그리실 정도로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 쓰시더라고요. 저도 그런 성격이라 감독님과 대화하면서 제 계획을 말씀드렸어요. 그러면서 '감독님 슈퍼컴퓨터면 저는 계산기는 되는 것 같다'고 말씀드리니 감독님이 '계산기 좋네'라고 하시면서 현장에서도 별명이 계산기가 됐어요."
다만, 수호가 맡은 김선우 캐릭터는 쉽게 계산하기 힘든 인물이다. 극 중 사망하기 직전까지도 계속해서 정체를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수호 역시 이러한 부분이 가장 계산하기 힘들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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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팅될 때도 범인이 누구인지 몰랐어요. 감독님도 범인인지 모르니까 모르게 준비해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계속해서 '알아야 되는 거 아닐까요 알아야 계산을 두드릴 것 같은데'라고 물어봤는데 첫 촬영 며칠 전에서야 '네가 범인은 아니야.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몰라' 정도만 말씀해 주셨어요. 처음에는 '김선우만 나오면 맥이 끊기고 재미없다'는 평을 받을까 걱정하기도 했어요. 다른 조건이 모두 좋아 출연을 결정했지만, 김선우라는 캐릭터가 의뭉스럽다 보니 구체적으로 그림이 그려지지 않기도 했거든요. 그런 부분이 겁나기도 했어요."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해도, 고민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범인이 아님을 알고서 범인인 척 보이게 연기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계산 끝에 수호가 내린 결론은 김선우의 행동에 이유와 목적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가장 고민을 많이 하고 계산을 많이 했던 지점이기도 했어요. 범인처럼 보여야 하지만, 마냥 의뭉스럽게 보여도 안 되잖아요. 모든 연기를 할 때 명확한 이유,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나름대로 김선우라는 인물이 상황에 따라서 행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 고민했어요. 시청자분들이 받아들이시기 이전에 저 스스로의 목적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게 어려웠던 것 같아요."
이처럼 수호는 철저한 계산 아래 캐릭터를 구축하면서 김선우라는 인물을 그려냈다. 남을 속이는 것을 싫어하는 수호에게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때에 따라 같은 장면을 상반된 분위기로 그려내기도 했다.
"성격도 그런 걸 좋아하지 않는데 뒤로 갈수록 범인이 아닌데 몰아가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너무 속이는 느낌이 들어 감독님께도 '덜 범인처럼 보여야 되지 않을까요'라고 물어보기도 했어요. 그래서 어떤 장면은 두 번 찍은 것도 있어요. 그걸 보고 감독님이 드라마 흐름상 너무 말도 안 되게 몰아가는 것 같으면 다른 장면을 쓰시기도 했더라고요. 제가 초반에 많이 등장하지는 않는데 등장하는 신에 비하면 촬영을 많이 하긴 했어요. 다른 분들은 연기가 좋으면 오케이지만 저는 분위기에 따라 달라야 할 때도 있었거든요."

이처럼 수호가 철저한 계산과 빈틈없는 계획으로 캐릭터를 구축하게 된 것은 그룹 엑소의 리더로 활동했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머릿속에 미리미리 모든 것을 집어넣다 보니 연기할 때도 자연스레 계산과 계획을 하고 돌입한 것이다.
"아이돌이라는 직업은 많은 분들께 주목을 받고 사랑을 받잖아요. 감정적이거나 갑작스러운 실수를 하면 흠집이 생길 수 있으니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는 편이 유리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제가 리더라서 인터뷰를 할 때도 중요한 질문은 저에게 많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더 계획을 많이 세우게 된 것 같아요."
그렇다면 계획이 되지 않았을 때의 스트레스는 없을까. 수호는 "계획을 세네겹 세워놓으면 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또한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빠르게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노하우도 생겼다며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예전에는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계획을 세네 겹 세워놓으면 초안이나 2안이 안돼도 '계획대로 되고 있다'고 합리화를 할 수가 있더라고요. 연기할 때도 마찬가지고 실제 삶에서도 마찬가지예요. 한 해의 계획도 3~4안까지 생각해요. 또 지금은 플랜을 다시 세우는 노하우도 생겼어요. 소위 말해 '나가리'가 되는 순간, 다시 계획을 세우는 것도 빨라졌어요."
오랜 시간 몸에 밴 습관들로 인해 계산된 연기, 계획적인 캐릭터를 보여준 수호. '힙하게'를 통해 얻어낸 가장 큰 소득은 바로 확신이다. 특히 이 확신이 남들의 피드백이 아닌 스스로의 성찰을 통해 얻어낸 자기 확신이라는 점은 더욱 의미가 깊다. 수호 역시 이러한 부분을 강조하며 '힙하게'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편집본을 보지 못해서 방송할 때까지도 걱정이 많았어요. 공개된 작품을 보니 감독님께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우를 잘 보이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연락도 드렸어요. 11년 동안 열심히 하던 대로 했는데 앞으로도 하던 대로 꾸준히 하면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물론 못 표현하고 부족해도 계속했을 거예요. 그러나 이 확신이 피드백에 의한 확신이 아니라 자기 확신이라는 점은 채찍질 속 잠깐의 당근을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