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TBC 수요드라마 ‘조립식 가족’(극본 홍시영, 연출 김승호)에서 황인엽(김산하 역)은 교복을 입고 등장한다. 교복 입은 황인엽은 조금의 어색함이나 위화감 없이 그저 평범한 학생으로 보인다. 자연스럽게 더해진 연기는 고등학생 황인엽을 보이는 그대로 믿게 한다. 그리고 교복을 입었다는 것만으로 황인엽에게는 특별한 이야기가 된다. 그는 올해 서른셋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3년 됐고, 교복을 입는 게 어색할 수밖에 없는 나이가 됐다. 하지만 황인엽은 여전히 믿을 수 없을 만큼 교복이 잘 어울린다.
황인엽이 작품에서 교복을 입는다고 화제가 되지도 않는다. 변요한은 ‘백설공주에게 죽음을’(2024)에서 교복을 입은 것만으로 화제가 됐는데 “좀 부끄럽긴 했다”라고 했고, 황인엽과 동갑내기 배우인 변우석도 ‘선재 업고 튀어’(2024)에서 “마지막 교복”이라며 나이를 의식했다. 서른 넘어 교복을 입는다는 건 배역에 따라 옷을 바꿔입어야 하는 배우로서도 어색한 일이다. 황인엽 역시 항상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교복을 입는다고 말했지만 “작품에서 충분히 전달하는 메시지가 있으면 굳이 교복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라고 했다.

배우마다 잘 어울리는 옷이 있고, 그것이 유니폼이나 슈트, 또는 누더기가 될 수도 있다. 대체로 이 잘 어울리는 옷은 제 나이와 외모적인 분위기를 따른다. 서른을 넘긴 남자 잘생긴 배우에게는 수많은 옷 중 교복은 거의 우선되지 않는다. 하지만 황인엽에게 잘 어울리는 옷은 놀랍게도 교복이다. ‘조립식 가족’에서 황인엽이 등하교를 하고 수학 문제를 푸는 모습은 영락없는 학생이다. 극에서 마찬가지로 교복을 입는 정채연과 배현성은 그보다 6살, 8살이나 어리지만 그들 옆의 황인엽은 완벽하게 터울 적은 오빠와 친구의 모습이다.
교복이 잘 어울리는 건 단지 동안이라서라고는 할 수 없다. 입은 옷에 따라 그 분위기를 잡아끌어 낼 줄 알아야 하는데, 황인엽은 그것을 탁월하게 담아낸다. 그리고 이는 스물여덟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배우로 데뷔한 그의 똑똑한 걸음처럼도 보인다. 2018년 웹드라마 ‘WHY : 당신이 연인에게 차인 진짜 이유’로 배우 생활을 시작한 그는 신인은 아니지만 경력이 오래됐다고는 볼 수는 없고, 전체 출연작도 8편에 불과하다. 보여준 것보다 보여줄 게 더 많은 연차다. 때문에 교복이 상징하는 젊음, 성장 등은 그에게도 마찬가지의 가능성을 넓혀준다.

30대가 된 모습까지 연기해야 하는 ‘조립식 가족’은 그가 교복을 벗고 한 단계 나아가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다. 출세작 ‘18 어게인’(2020)과 ‘여신강림’(2020), ‘안나수마나라’(2022)에서는 교복을 입었고 전작 ‘왜 오수재인가’(2022)에서도 학생을 연기했던 그가 드디어 직업을 갖게 되는 순간이다. 그 흐름을 작위적으로 뛰어넘는다기보다는 한 작품 안에서 서사의 자연스러운 흐름과 함께 보여주게 됐다.
8회까지 공개된 ‘조립식 가족’에서 황인엽은 이제 막 수능을 치렀다. 그리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지금까지 황인엽은 ‘조립식 가족’에서 충분히 자신의 역량을 잘 펼쳐냈다. 학생이지만 평범하지 않은 사연으로 점철된 위태로움을 눈빛과 말의 온도에 그윽하게 욱여넣고, 때때로 주원(정채연)과의 관계에서 간질간질한 10대의 싱그러운 설렘을 피워냈다. 드라마를 본이라면 지금부터 보여줄 황인엽의 성인 연기는 걱정보다는 기대에 무게추를 두게 된다. 서른 셋에게는 학교보다 직장이 더 자연스러운 공간이고, ‘조립식 가족’에서 보여준 황인엽의 깊이는 어떤 옷의 한정을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