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큰', 날것의 생동감보다 비릿함에 고개 돌리게 되는

'브로큰', 날것의 생동감보다 비릿함에 고개 돌리게 되는

정수진(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5.01.31 10:00

생고생 전문배우 하정우의 고군분투는 빛났다

사진제공=바른손이앤에이
사진제공=바른손이앤에이

하정우가 피칠갑한 채 쇠파이프를 들고 횟집에서 걸어 나오는 첫 장면부터 감지된다. 이것은 수컷이라 불리는 남자의 이야기다.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에너지가 진하게 느껴진다. ‘양치기들’로 인상적인 데뷔를 마친 김진황 감독이 연출하고, 하정우와 김남길이 ‘클로젯’에 이어 다시 만난 영화 ‘브로큰’. 날것의 생동감에 매료될지, 날것의 비릿함에 고개를 저을지, 남은 건 관객의 몫이다.

‘브로큰’의 주인공은 배민태(하정우). 한때 조직에서 에이스로 활동했지만, 출소한 후 손을 씻고 건설 노동으로 살아가는 남자다. 민태에겐 동생 석태(박종환)가 있다. 허구한 날 아내 문영(유다인)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마약을 하는 실패한 인생으로, 민태에겐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다. 민태는 노동으로 번 돈을 꼬박꼬박 문영에게 송금할 만큼 동생을 챙긴다. 그런 동생이 어느 날 밤 부재중 전화와 함께 메시지를 남긴다. “형, 나 사고 친 것 같아.” 그리고··· 동생이 시체로 돌아왔다.

사진=바른손이앤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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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동생의 죽음에 얽힌 실마리를 찾으려는 민태의 고군분투를 보여준다. 손을 씻었으나 여전히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그의 거침없는 추적에는 주먹질이 오가고, 쇠파이프가 휘둘러진다. 한때 자신이 몸담았고 동생이 속해 있던 조직 창모파부터 라이벌 조직의 동태를 쫓다가 동생의 죽음 이후 사라진 제수 문영이 그날의 진실을 알고 있으리란 생각으로 흔적을 쫓는다. 그런데, 문영을 쫓다 보니 자꾸 그 동선에서 베스트셀러 작가 강호령(김남길)과 마주치게 된다. 알고 보니 문영과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 같고, 심지어 자신의 소설 ‘야행’ 속에 동생의 죽음을 예견한 듯한 내용을 썼단다. 의심스럽다. 이렇게 영화는 미스터리 스릴러로 전환되는 듯싶다. 여기까진 나름 흥미진진하다.

아쉬운 건 미스터리 스릴러 분위기를 조성하던 흡인력이 길게 지속되지 않는데다 그 전개가 그리 영리하게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 호령의 존재와 그의 동선은 분명 진한 의심이 들게 하는데, 그에게 부여된 분량이나 서사가 미미하다. 호령의 이야기가 많이 편집됐음을 알 수 있는데, 편집을 했다 해도 김남길 정도의 배우를 캐스팅했을 땐 그 역할의 존재의 이유는 확실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의아함이 든다. 심지어 퇴장마저 모호하니 관객의 입장에선 당황할 수밖에 없다.

사진=바른손이앤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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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캐릭터들에게 공감의 요소가 적다는 건 뼈아픈 요소다. 동생을 잃고 진실을 추적하는 형의 이야기란 뼈대는 보편적이다. 혈육에게 나쁜 일이 생겼을 때 화가 나고, 분노하고, 심하게는 눈이 돌아가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며,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용되는 정서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정서를 민태와 석태 형제에게 대입하면 조금 묘해진다. 조금 모자란 동생을 돌보겠단 생각으로 조직에 끌어들인 것에 대한 죄책감이 민태에게 있다는 장면을 보여주긴 하지만, 다 크다 못해 중년을 앞둔 동생을 자식처럼 건사하고 그의 죽음에 눈이 돌아가 불도저처럼 폭력으로 사건을 쫓는 주인공에 이입이 쉬울까? 심지어 그 동생은 하루가 멀다 하고 아내를 패는 마약 중독의 조직폭력배인데. 아무리 팔이 안으로 굽어 개망나니 동생을 아낄 순 있다지만, 2025년의 관객들이 석태에게 터럭만큼의 동정을 보일지, 민태의 복수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낄지 의문이다.

인물에 대한 공감이나 서사에 대한 흡인력이 덜한 대신 영화는 하드보일드 감성과 액션에 강점을 보인다. 동생을 잃고 처절하게 부서진 마음으로 흔적을 쫓는 민택의 액션에는 비정하면서도 비감함이 도사려 있다. 골목에서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의 라이벌 조직 떼거리를 상대할 때의 액션과 바닷가 항구 어판장에서 폭발하는 액션신은 처절하고도 치열하지만, 동시에 무감정한 듯 차가운 분노가 돋보인다. 특히 어판장에서 생선과 얼음이 튀고 날리는 가운데, 말린 생선들이 널려 있는 고깃배가 보이는 평화로운 배경으로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민태와 조폭들의 모습은 아이러니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사진=바른손이앤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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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고생 전문 배우’ ‘고난 전문 배우’라는 별명을 지닌 하정우가 이번에도 ‘고생 꽃길’을 걷는다. 미스터리한 소설가 호령 역의 김남길이며, 창모파의 보스 석창모 역의 정만식, 민태의 추적을 돕는 병규 역의 임성재 등 대부분 배우들이 제 몫을 충실히 한다. 다만 그날 밤의 진실을 알고 있는 차문영 역의 유다인은 너무 수동적으로 소비된 느낌이며, 석태 살인사건을 담당하는 형사로 등장하는 허성태나 이설의 존재도 희미한 편이다.

2월 5일 개봉. 러닝타임은 100분, 15세 이상 관람가다. 쿠키 영상은 없지만 속편을 염두에 둔 모습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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