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갔지만 되살아난 영화의 꿈. BIFF 정인賞, 희망을 읽다

떠나갔지만 되살아난 영화의 꿈. BIFF 정인賞, 희망을 읽다

윤지훈(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6.10.27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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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현 감독 '베일러' 첫 수상의 영예....1,000만원 상금도 수여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고 권정인 프로듀서를 기리기 위해 신설된 정인賞의 첫 수상작으로 오세현 감독의 영화 '베일러'가 선정되었다. 고인의 남편인 김성우 다이스필름 대표가 제안하고 상금 1,000만원을 출연한 이 상은 한국 독립영화의 가능성과 열정을 지원하려는 취지를 담고 있다. 김 대표는 정인賞을 개인 추모를 넘어 프로듀서가 수여하는 상으로 정착시키고자 하며 2028년까지 영화제와 함께 운용할 계획이다.
이달 초 끝난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시상된 첫 '정인賞(상)’( 수상삭작인 오세현 감독의 영화 '베일러'. 사진제공=부산국제영화제조직위원회 
이달 초 끝난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시상된 첫 '정인賞(상)’( 수상삭작인 오세현 감독의 영화 '베일러'. 사진제공=부산국제영화제조직위원회 

늘 그렇듯, 축제의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거기에서 남는 건 작은 추억이다. 다채로운 화려함 속에서 이를 즐기려는 이들의 뜨거운 열정이 합쳐져 축제는 또다시 진한 추억으로 남는다.

또 하나의 추억을 남기고 지난 15일 영화의 바다에 축제의 닻을 내렸던 축제가 이를 걷어 올리며 막을 내렸다.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이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해온 부산국제영화제는 올해에도 어김없이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관객을 만났다. 그리고 관객들은 영화의 추억을 안고 부산을 떠났다.

그 사이, 이미 떠나간 사람을 추억하려는 이들의 노력도 관객들이 간직할 추억의 한 자락 위에서 함께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예년처럼 “뛰어난 작품성과 독창적 비전을 지닌 한국과 아시아의 독립영화 최신작을 선보이는” 비전 섹션에서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다채로운 프로그램 속에서 비전 부문은 독립영화에 대한 영화제의 애정을 드러냄과 동시에 부산을 찾은 많은 국내외 영화계 관계자들과 관객에게는 새로운 연출자와 배우를 발견하게 하는 소중한 무대로 자리잡아왔다. 상영작 가운데 일부 작품에는 심사를 거쳐 수상과 소정의 재정적 지원의 영광도 안긴다.

이 가운데 올해에는 처음으로 제정된 시상 부문이 있다. ‘정인賞(상)’(Jeong-in Award)이다. 시민평론가상 수상작이기도 한 영화 ‘베일러’가 첫 트로피를 받았다. 1000만원의 상금으로 ‘베일러’를 더 많은 관객에게 선보일 수 있는 지원의 든든함도 얻었다.

영화 '베일러'로 첫 정인賞(상)’(을 수상한 오세현 감독(가운데)와 고 권정인 피디의 남편인 김성우 다이스필름 대표(오른쪽). 사진제공=김성우 대표 
영화 '베일러'로 첫 정인賞(상)’(을 수상한 오세현 감독(가운데)와 고 권정인 피디의 남편인 김성우 다이스필름 대표(오른쪽). 사진제공=김성우 대표 

오세현 감독이 연출하고 김슬기와 우지현 등이 주연한 ‘베일러’는 백수가 된 채 임신까지 한 젊은 여성이 선배를 따라 나선 농촌 아르바이트에 나서면서 겪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경주’ ‘춘몽’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등 장률 감독 작품의 연출부와 제작부, 프로듀서 등으로 일한 감독이자 배우이며 작가이기도 한 오세현 감독의 재기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이 작품에 첫 수상의 기쁨을 안긴 ‘정인賞’은 올해 1월 세상을 떠난 권정인 프로듀서를 추모하고 추억하며 그의 꿈을 기억해 세상과 나누려는 무대이다. 권정인 프로듀서는 1990년대 충무로에 발을 내디뎌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 등 여러 영화 기획에 참여했다. 2006년 최동훈 감독이 연출한 ‘타짜’ 제작에도 힘을 보탠 그는 2000년대 초중반 탁월한 마케터로서 당대 대표적 제작사인 싸이더스에서 일하기도 했다. 2004년 동료들과 함께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을 수상하며 성과를 인정받은 고인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제작사 초록뱀미디어에서 작품을 발굴하고 기획해 선보였다.

‘정인賞’은 그런 고인의 꿈을 기리며 “관객의 마음속에 반짝이는 꿈으로 자리할” 한국 독립영화에 주는 상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생전 그와 함께 일한 감독의 말을 인용해 고인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반짝이는 꿈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었다”면서 “영화를 향한 누군가의 꿈을 귀하게 여기고 그것이 실현될 수 있도록 가능성과 열정에 불을” 지피게 하겠다는 다짐을 내놓았다.

이 다짐을 함께하려는 사람, 고인의 남편인 김성우 다이스필름 대표이다. 김 대표는 ‘정인賞’ 제정을 부산국제영화제에 제안하고, 그 상금 1000만원을 선뜻 내놓았다. 이미 세상과 이별한 수많은 영화관계자들 사이에서 한 사람의 이름을 따온 상을 만들기는 부산국제영화제로서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권 프로듀서는 초록뱀미디어를 통해 지난 2022년부터 역시 비전 부문 작품을 두 편씩 선정해 지원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그에게 작은 힘을 빌린 터였다. ‘정인賞’은 그 인연을 계속 이어가려는 의지이다. 김 대표가 아내를 추억하고 추모하려 대학생인 아들과 함께 그 길을 고민하다 찾아낸 인연이기도 했다. 기획자이자 제작자인 한 프로듀서가 아내의 꿈을 이어 참신한 한국 독립영화에 기여하려는 작지만 소중한 의미를 담은 상이다.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시상된 '정인賞' 트로피. 사진제공= 김성우 디아스필름 대표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시상된 '정인賞' 트로피. 사진제공= 김성우 디아스필름 대표

김 대표는 영화 ‘아저씨’(2010)와 ‘우는 남자’(2014)의 프로듀서, 2006년 ‘열혈남아’의 기획자이다. ‘미씽: 사라진 여자’(2016), ‘악질경찰’(2018), 2023년 다큐멘터리 영화 ‘문재인입니다’ 등을 기획·제작했다. 광고대행사 제일기획의 카피라이터 출신으로, “열심히 하는 거지, 뭐”(엠씨스퀘어) 등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카피를 탄생시킨 주역인 그는 돈 잘 벌 수 있는 대형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 자리를 박차고 2000년대 초반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싸이더스에서 일하며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 송해성 감독의 ‘역도산’(2004), 김태균 감독의 ‘화산고’(2001) 등을 선보였다. 그 시절 권 프로듀서를 만나 ‘사내커플’의 사랑을 일궜다.

김 대표는 ‘정인賞’에 대해 “개인을 추모하는 의미를 넘어 앞으로도 프로듀서가 주는 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싶다”는 희망을 품었다. 희망은 현실이 되어 김 대표는 오는 2028년까지 ‘정인賞’을 부산국제영화제와 함께 운용해가게 됐다.

앞으로는 이에 대한 한국영화계의 후원과 도움 역시 필요할 터이다. 한국영화의 극심한 위기를 논하는 시절, 영화에 대한 애정으로써 영화의 꿈을 관객과 함께 지키려는 노력이 한 개인의 것에 그칠 수는 없는 일. 한국영화는 그런 한 사람 한 사람의 피와 땀과 눈물이 빚어낸 오랜 꿈이기 때문이다.

덧붙임!

‘충무로 맏형’으로 불리며 많은 영화관계자들이 의지했지만 지난 2021년 별세한 이춘연 영화인회의 이사장 겸 제작사 씨네2000 대표. 그의 뜻을 기리는 ‘이춘연 영화상’도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시상식을 열었다. 지난 2020년 이후 3년 동안 프로듀서들을 선정해 시상해온 ‘이춘연 영화상’은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다시 시상식을 이어갔다. 이를 선두에서 열심히 이끌어온 사람, 권영락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조직위원장이다.

윤지훈(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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