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예전에 '귀여운 여인'이라는 영화가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다. 이때 남자 주인공이 리차드 기어였는데 직업이 레이더스, 즉 기업 사냥꾼인 백만장자로 출연했다.
비교적 양호한 회사를 M&A(인수합병)해 우량자산만을 분리 매각한 후 회사는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리는 비열한 사업가였다. 그러다가 나중에 직장을 잃은 수많은 사람을 위한다는 내용도 영화의 주요 축으로 설정돼 있어 더욱 인기가 좋았던 것 같다.
신정부가 들어서면서 공기업 부채감축이 큰 화두로 회자되고 있다. 발표기관마다 차이가 있으나, 개략적 공기업 부채는 2002년 124조에서 지난해 400조원을 돌파하했다. 특히 지난해의 경우 과도한 부채 규모로 중점관리 대상에 오른 18개 공공기관의 이자비용이 9조원을 넘어가면서 더욱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정부에서는 공기업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전 방위적인 노력을 취하고 있다. 방만 경영에 대한 경영효율화를 도모해 부채를 획기적으로 줄인다는 목표로, 사업조정 및 축소, 경비절감, 직원복지 축소 등 그야말로 기업의 경영개선을 위한 모든 정책을 망라하고 있다. 지금 부채가 높은 점을 감안한다면 당연히 시행해야할 정책이고, 여론도 거의 모두 찬성하고 있는 듯하다.
이중에서 자산매각을 통한 부채감축도 중요한 내용으로 언급되고 있다. 이들 공기업이 가진 자산이 대규모인 점을 감안한다면 경영개선에 큰 역할을 할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거의 모든 공기업이 자산판매 전쟁에 돌입했다.
우려스러운 점은 혁신도시 개발을 위해 지방이전을 해야 하는 기관들도 이전 뒤 1년 안에 자산을 팔아야 해서, 헐값 매각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당장 수조원에 달하는 한전 본사 부지를 어떻게 그 기간 내에 제값 받고 팔수 있을지 걱정된다.
지방선거가 있을 때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지방공기업의 부채가 선거 이슈로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선거 직전에 우량자산을 헐값에라도 매각해 경영지표를 보기 좋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해당 공기업의 실질가치는 떨어지게 된다.
과거 외환위기 때도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 당시 상황이 워낙 심각하고 자본이 절실한 상황이어서 직접 비교는 곤란하지만, 보유하고 있던 국내외 부동산 자산이 기존시세의 절반에 못 미치는 헐값으로 대거 해외자본에 매각됐고, 불과 몇 년 지나서 몇 배로 뛰어 '먹튀' 논란까지 일었다. 특히 에너지 및 자원개발 관련 정책은 정부의 매각 강요로 인해 극도로 혼란한 상태를 보여주고 있어 국가의 장기적 계획이 있는가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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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민간참여를 확대시키는 것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사업비용을 민간과 같이 부담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좋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공공부담의 증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도 사회기반시설을 정부가 확충하는 과정에서 최소 수익보장으로 사회적으로까지 문제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다른 분야에까지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날까 우려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지방개발공사의 경우 개발사업 특성상 수익이 나는 부문과 적자가 나는 부분이 나뉘는데, 수익이 나는 부분은 민간이 가져가고 공기업은 비수익사업에만 매달릴 가능성이 높아 이 상태로 가면 공기업이 앞서 영화처럼 휴지조각으로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정부에서 공기업 부채감축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백번 옳다. 그러나 실제 해당 공기업의 사업특성을 좀 더 감안한 정책이 돼야 한다. 강압적이고 일률적인 정책으로 당장은 경영지표가 개선될지 모르나 해당 공기업은 레이더스의 희생양처럼 더욱 만신창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우리 경제가 당장 공기업을 매각해야 할 정도로 아주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공기업이 수행해온 공공성을 고려하고, 장기적 성장 동력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부채감축이 돼야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없애고, 경영효율화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