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설업계가 '입찰 담합'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역대 최고액(4355억원)의 과징금으로 기록된 호남고속철도 공사 입찰을 비롯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올해에만 건설업체들에게 7903억원의 담합 과징금을 부과했다.
올 상반기 상장건설업체들(상장 94개사, 기타법인 32개사)의 영업이익이 1조534억원이었음을 감안하면 담합 과징금 규모가 어느 정도임을 실감할 수 있다. 일부 건설업체의 경우 이미 연간 과징금 규모가 1000억원을 넘어섰으며 나머지 상위업체들도 평균 500억원 안팎의 과징금 폭탄을 맞았다.
담합 과징금 부과는 그 자체로 끝이 아니다. 현행 제도상 1건의 담합 행위로 많게는 7개에 달하는 중복처분을 받게 된다. 먼저 과징금에 이어 발주기관으로부터 최장 2년간 입찰 참여를 금지하는 '부정당업자 제재' 처분이 내려진다. 업체들에겐 한마디로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이후 형사처벌, 등록말소 등의 처분도 이뤄진다.
이는 다시 해당 발주처의 손해배상으로 이어진다. 1115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된 4대강 공사나 1322억원과 401억원이 각각 부과된 인천도시철도 2호선 및 대구도시철도 3호선 공사 등의 경우 현재 발주처의 배상 요구에 따른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이들 3건의 공사에서만 손해배상 요구액은 2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건설업계의 '입찰 담합' 논란은 해묵은 문제로 결코 새삼스럽지 않다. 그만큼 오랜기간 근절되지 않고 있다. 특히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공공공사 담합 행위는 세금 낭비를 초래하는 등의 폐해가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간과해선 안될 일이다.
하지만 이를 다루는 현행 제도의 문제점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한번 잘못에 수차례의 매질을 가하는 현행 제도에 대해 전문가들은 헌법상 과잉금지원칙(비례원칙)에 위배된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과징금과 같은 주된 처벌보다 입찰제한과 같은 부수적인 처분이 훨씬 위력적이어서 주객이 전도된 게 아니냐란 의견도 있다.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의 경우 부정당업자 제재 처분과 같은 징벌적 수단 대신 과징금 부과나 계약보증금 증액 등으로 운영하고 있다.
입찰 담합을 둘러싼 발주처의 묵인이나 조장도 문제다. 대표적인 사례가 4대강 사업이다. 이명박정부 출범 초기 서울시 고위 관료 출신인 당시 정권의 한 인사가 5개 대형건설업체 대표들을 불러 사업 참여를 독려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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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정부가 담합을 조장해 놓고도 처벌을 내린 셈이다. 담합 행위 발생시점과 제재시점간 차이가 큰 것 역시 문제다. 4대강 제재 역시 올해 이뤄졌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발주처가 담합 행위를 조장했거나 묵인한 경우 해당 공공기관의 담당자들도 징계는 물론 민·형사상 제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기업간 담합 행위는 물론, 이 같은 국가나 지자체 등 발주처의 '관제담합' 역시 관련 법으로 강력히 제재하고 있다.
공정위의 담합 제재에 대한 판단도 올바르지만은 않다. 현행 규정상 담합 제재 소멸시효 기간은 5년이다. 공정위가 올해 입찰 담합 과징금을 부과한 공사들도 대부분 5년 전인 2009년 발주 프로젝트들이다. 공정위는 이어 내년엔 2010년 발주 공사를 들여다 본다는 방침이다. 이런 식으로 매년 5년 전 공사의 담합 행위를 조사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입찰 담합에 대한 계도·계몽보다는 처벌 위주로 사안을 처리한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담합 근절을 위해 처벌보다 강력한 수단이 없다면 어쩔 수 없다. 봐주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 담합 행위를 하지 말라는 주문보다 과거의 잘못을 잣대로 기업들의 목만 죄는 것이 과연 올바른 방법인지는 되묻고 싶다.
건설기업들에게 담합은 국민의 혈세를 빨아먹는 행위이자, 부실시공을 낳게 하는 패악이란 점을 되새겨 근절시키는 것보다 처벌로만 다뤄 기업의 존폐는 물론, 국가경쟁력까지도 떨어뜨리는 것이 정부가 그토록 외치는 경제활성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