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년째 계속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전방위 입찰담합 조사로 건설업계가 휘청이고 있다. 그동안 부과된 과징금만 1조원을 넘어선 데다 잇따른 공공공사 입찰제한 등으로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최근엔 외국 경쟁사들이 국내 업체들의 담합을 문제 삼으며 '흠집내기'에 적극 나서 해외수주 전선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내우외환의 위기 속에 건설업이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28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공정위가 2012년 6월 4대강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적발한 건설업계 입찰담합은 총 29건으로 대부분 MB(이명박)정부 시절 추진된 사업이다. 이들 입찰담합으로 부과된 과징금은 총 46개사, 1조416억원에 달한다. 지난 한 해에만 8496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과징금과 별도로 조달청과 발주처들로부터 공공공사 입찰제한 처분을 받은 건설기업도 62개사에 이른다. 이중 38개사는 시공능력평가 순위 100위에 속하는 기업들이다. 국내를 대표하는 대부분 중대형 건설기업이 담합제재를 받은 셈.
업계에선 서해안철도공사, 호남고속철 등 현재 담합조사가 진행 중이거나 제재가 확정된 것들까지 포함하면 과징금 규모가 연내 2조원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과징금 규모가 이미 업계가 감내할 수준을 벗어났다”며 “중소기업은 물론 대형업체들마저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낀다”고 밝혔다.
하지만 건설업체들에 과징금보다 더 무서운 것은 따로 있다. 바로 공공공사 입찰제한이다. 공정위가 담합조치를 내리면 조달청과 발주처는 일정 기간 관련 건설업체의 입찰을 제한하는 부정당업자 제재 처분을 내린다. 공공공사 영업이 불가능한 것으로 업체들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부정당업자의 입찰제한은 최장 2년이지만 프로젝트별로 담합 처분이 누적되면 제재기간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업계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며 담합 관련 수백 건의 소송에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담합제재는 과징금과 공공공사 입찰제한에서 끝나지 않는다. 기업과 임직원에 대한 민·형사 처벌과 손해배상, 최악의 경우 등록말소까지 최대 6개의 처분이 이뤄진다. 이 같은 중복처분이 가능한 것은 담합제재에 대한 규정이 △공정거래법 △건설산업기본법 △국가계약법 △형법 등으로 흩어져 있어서다.
이는 헌법상 기본원칙인 과잉금지원칙(비례원칙)의 관점에서 볼 때 문제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따라서 건설산업의 고질적 병폐인 담합을 해결하고 제재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선 업계의 자정노력과 함께 담합을 유인하는 입찰·발주제도와 중복처분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독자들의 PICK!
최민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정위의 과징금 처분으로 이미 충분히 제재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에 발주자로선 비례의 원칙에 맞는 적정한 재량권 행사가 필요하다”며 “입찰제한은 심각한 해악을 끼친 건설업체에 부여되는 행정처벌로 담합행위만으로는 과도하다”고 설명했다.
담합제재가 해외수주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문제다. 발주처가 담합제재에 대한 소명 요구는 물론 외국 경쟁사들은 이를 빌미로 국내 업체들을 흔들고 있다. 실례로 최근 동티모르정부는 조사단을 국내에 파견해 8000억원 규모의 항만공사 입찰에 참가한 국내 업체들의 담합제재 관련 실태파악을 진행했다.
한 대형건설업체 임원은 “혐의가 같아도 흑자기업이 적자기업보다 과징금을 더 내는 구조여서 실적 부담이 크다”며 “최근엔 유가하락으로 주요 먹거리인 해외시장 발주가 크게 줄었는데 외국 경쟁사들이 담합을 빌미로 발주처를 흔들고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