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만든 세계의 랜드마크]<1> 현대건설 '말레이시아 페낭대교'

말레이시아 본토와 '동양의 진주'라고 불리는 관광도시 페낭 섬을 연결하는 페낭대교는 1985년 완공 당시만 해도 세계에서 3번째로 길고 아시아에선 가장 긴 다리였다. 입찰경쟁 당시부터 이미 건설 부문에 있어서는 세계적인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다.
이때 입찰에 참여한 회사만 해도 현대건설을 비롯해 호주 1개사, 프랑스 5개사, 독일 3개사, 일본 13개사 등 세계 유수의 건설사들이 대거 참여해 각축전을 벌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현대건설이 40개 업체를 따돌리고 수주할 수 있었던 것일까.
당시 현대건설은 유지보수에서의 단점을 들어 아치교 대신 사장교로 공사형태를 바꾸도록 발주처를 설득했으며 최종 순간 공사기간(공기)을 단축하겠다고 제안해 수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격면에선 프랑스의 캄프농 베르나사가 현대건설보다 2000만달러나 낮은 금액으로 입찰해 '로이스트'로 선정됐다. 하지만 현대건설은 가격을 내리지 않는 대신에 공기를 앞당겨 통행료를 받게 될 경우 더 이익이 된다고 말레이시아 정부를 설득시켰다. 실제로 원래 공기는 교량 부분이 37개월, 인터체인지와 접속도로 부분이 32개월이었는데 각각 공기를 1개월, 4개월씩 앞당겼다.
1985년 8월 3일 역사적인 개통에 들어간 페낭대교는 개통 당일 마하티르 총리가 직접 승용차를 타고 건넘으로써 개통을 축하하기도 했다. 1986년엔 미국 컨설팅엔지니어링협회에서 주관한 '제16차 연례 엔지니어링 우수상' 시상식에서 대상의 영예를 현대건설에 안겨주기도 했다.
페낭대교에 얽힌 숨은 이야기
공기를 단축해서 공사를 마쳐야 하는 페낭대교 건설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첫번째는 우리나라 인부와 말레이시아 현지 인부의 건설 속도가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뭐든지 빨리빨리 하는 한국과는 달리 말레이시아 인부들은 느긋하기 짝이 없었다. 그들은 일하다가 말고 2~3시간씩 기도하기 일쑤였고 밥을 먹을 때는 1시간 이상이 걸렸다. 땅을 파 놓으면 다음날 코끼리가 빠져 있기도 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공사는 지지부진해졌다.
이에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한 당시 정주영 회장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서 보내면 되잖아"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결국 국내에서 다리를 만들어 커다란 바지선을 통해 나르게 되는데 세계 어느 나라도 시도한 적이 없는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4년을 예상했던 다른 업체들도 현대건설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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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난공사였던 것은 직경 1m, 길이 60m의 당시 세계 최대 콘크리트 파일을 3000개 이상 박는 작업이었다. 바다 한가운데서 20톤급 증기 해머로 작업을 했는데 무려 5000회 이상 때려야만 파일 하나를 박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당시 페낭대교 현장에서는 휴일도 퇴근 시간도 없었다고 전해진다. 일요일에도 현장소장이 나와 바지를 걷어 올리고 작업을 진두지휘하는 것을 본 말레이시아 기자들은 다음날 신문에 '한국 사람들은 24시간'이라는 기사를 대문짝만하게 실어 한동안 화제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