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엔드 브랜드' 만들긴 했는데…건설사들의 딜레마

'하이엔드 브랜드' 만들긴 했는데…건설사들의 딜레마

배규민 기자
2026.03.23 17:21
주요 건설사 하이엔드 브랜드 출시 현황/그래픽=이지혜
주요 건설사 하이엔드 브랜드 출시 현황/그래픽=이지혜

"아크로, 디에이치, 르엘, 오티에르, 드파인, 서밋…."

'하이엔드' 브랜드를 둘러싼 건설사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핵심 입지에 연속적으로 적용돼야 소비자들에게 브랜드가 각인되는 효과가 있는데 지금처럼 정비사업 수주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는 꾸준한 수주를 장담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일부 건설사는 하이엔드 브랜드를 만들어놓고도 활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일부 중견사는 론칭 자체를 고민하는 분위기다.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SK에코플랜트는 지난 1월 서대문구 연희1구역 재개발 사업인 '드파인 연희'를 서울 첫 분양 단지로 공급했다. 2022년 하이엔드 브랜드 '드파인'(DE'FINE)을 선보인 지 약 4년 만에 서울에서 해당 브랜드가 처음 적용된 사례다. 드파인 브랜드는 앞서 부산 광안동 재개발 단지 등에 적용된 바 있지만 서울에서는 유독 찾아보기 어려웠다.

SK에코플랜트는 노량진뉴타운 2구역과 6구역 분양을 연내 진행할 예정이지만 이들 단지의 입주 시점은 2028~2029년이다. 서울에서 또 하나의 '드파인'이라는 이름을 단 아파트를 보려면 최소 2028년 하반기가 돼야 한다.

포스코이앤씨도 비슷한 상황이다. 포스코이앤씨는 2022년 하이엔드 브랜드 '오티에르'(HAUTERRE)를 선보였지만 실제 적용 단지는 많지 않다. 서초구 신반포21차 재건축 사업인 '오티에르 반포'를 이달 분양할 예정인데 브랜드 출시 이후 첫 적용 단지다.

개별 단지에 따라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 여부를 고민하기도 한다. 현대건설은 하이엔드 브랜드 '디에이치'(THE H)를 운영하고 있지만 압구정 재건축 단지에는 해당 브랜드를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실제 압구정3구역 재건축 홍보 과정에서 제시된 문구는 "압구정 현대 다음은 압구정 현대입니다"였다.

'압구정 현대'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로 받아들여지는 만큼 다른 단지에 적용된 '디에이치'라는 이름으로 승부를 보기보다 기존 '압구정 현대' 네이밍을 유지하는 것이 더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업계에서는 압구정 조합원들이 해당 지역을 '하이엔드 중의 하이엔드'로 인식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다른 단지에 사용된 브랜드를 압구정 현대에 적용하는 것이 수주 전략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단순히 이름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점에서 하이엔드 브랜드를 둘러싼 건설사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브랜드가 시장에서 힘을 가지려면 핵심 정비사업지에서 연속적으로 적용되는 이른바 라인업이 필요하지만 서울 정비사업 수주 경쟁이 일부 대형 건설사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연속 수주를 자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중견 건설사들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일부 중견 건설사는 수도권과 서울 핵심 정비사업 진입을 위해 하이엔드 브랜드 론칭을 검토했지만 연속 수주가 쉽지 않다는 판단에 전략을 보류하기도 했다. 일례로 시공능력평가 상위권 건설사인 호반건설은 상위 하이엔드 브랜드 도입을 검토했지만 대상 사업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최종 결정을 잠정 보류한 상태다.

반대로 하이엔드 브랜드를 별도로 두지 않는 전략을 유지하는 건설사도 있다. 삼성물산은 '래미안', GS건설은 '자이' 단일 브랜드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두 회사 모두 과거 일부 단지에서 '래미안원', '그랑자이' 등 별도 이름을 사용한 사례가 있었지만 하이엔드 브랜드라는 오해가 생기면서 이후 사용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하이엔드 브랜드의 실제 성패는 '얼마나 많은 핵심 입지 단지를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한 정비사업 업계 관계자는 "하이엔드 브랜드는 단지 하나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요 입지에서 연속적으로 적용돼야 브랜드 파워가 형성된다"며 "브랜드를 만들어놓고도 이를 활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건설사들의 현실적 고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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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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