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건별해결보다 시스템 해결 시급
보험사 임원들 수십 명이 최근 진동수 금융위원장으로부터 싫은 소리를 들었다. 진 위원장은 지난달 말 한 강연에서 “보험상품이 창구에서 계약자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설계되는 일이 있다. 해약도 쉽지 않고 보험금 지급을 늦추는 일도 있어 (계약자들이) 꼭 필요한 보험인가 의문이 들기도 한다”고 꼬집었다.
보험 관련 민원이 많다며 소비자 보호를 강조하기 위한 말이었다. 진 위원장은 "이런 사례는 지인이 해온 (보험 관련) 민원을 듣고 알아보면서 든 생각"이라고 덧붙여 참석자들을 더 철렁하게 했다. 연단 밑의 이들은 ‘혹시 우리 회사 상품이 아닐까’하면서도 '딴 회사 얘기니 괜찮겠지'하는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이처럼 민원이 알려지고 해결되는 과정은 다양하다. 회사(기관)가 정한 절차를 기다리면 대개 하세월이지만 운 좋게 초고속으로 만능 낙하산을 탈 수도 있다. 고위층의 한마디는 법조항이나 약관 몇 구절보다 일사천리 해결의 열쇠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대통령 로또'라는 말이 있다. 대통령이 민생 현장을 들르며 들은 하소연이 어려움을 해결하는 보증수표가 된다는 것이 바로 대통령 로또다. 전봇대를 뽑은 것도, 캐피탈사들의 대출 금리를 낮춘 것도, 봉고차 때문에 기초수급 대상자에서 제외됐던 이가 포함된 것도 고위층 민원 해결의 힘이다.
하지만 이런 건별 해결은 또 다른 그늘을 만든다. 줄을 서서 치료를 기다리고 있는 환자가 새치기 환자에게 밀렸다면 통증에 겹쳐 허탈함이 더하는 것처럼 말이다. 만나는 이가 다르다고 결과가 달라진다면 납득도 어렵다.
모두가 한두 개씩 민원을 갖고 힘센 이들을 만나자고 아우성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내 문제만 해결되면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은 사라져 간다는 급행료를 부활시킬지도 모른다.
최고 경영자나 당국자가 행정이나 기업 서비스의 소비자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문제는 관심의 방향과 해결의 방법이다. 목이 마르다고 아우성치는 이들이 서로 짓밟고 싸우지 않게 하려면 우물을 파 준 뒤 순번을 정해줘야 한다. 딱한 상황을 보고 거절할 수 없는 건 인지상정이지만 우선돼야 할 것은 단발성 진통제보다 병의 뿌리를 뽑는 쓴 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