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한 시중은행장의 하소연

[기자수첩]한 시중은행장의 하소연

김지민 기자
2011.05.30 11:50

#1. "제발 다른 행장님들 만나면 얘기들 좀 해주세요. 은행들은 정말 숫자 갖고 장난치면 안 되는 업종입니다. 고객들이 모를 것 같습니까. 모르는 척 하는거지 사실 다 알고 있습니다."

한 달 전 A시중은행장이 몇몇 기자들과 함께 한 티타임 자리에서 열변을 토했다. 영업경쟁에 불붙은 시중은행들이 역마진을 불사하고라도 '고객 빼앗기'에 혈안이 돼 있는 실태를 언급하면서다.

이미 다른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있는 고객에게 대출 금리를 2~3%포인트나 내려 제시하고는 시간이 흐르면 다시 금리를 올리는 얄팍한 상술을 쓰는 은행들이 태반이라는 말도 했다.

#2. "은행에서 고정금리 얘기는 아예 안 하던데요? 장기적으로 볼 때 변동금리가 좋다는 직원 말에 저도 변동금리로 대출을 받았거든요. 은행원이 설마 거짓말 하겠어요."

아파트 구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최근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김모씨(32세)의 경험담이다. 요즘과 같은 금리 상승기에는 고정금리 상품이 유리하지만 은행들은 고정금리 상품을 적극적으로 권유하지 않고 있다. 고정금리 상품의 경우 변동금리 상품과 달리 금리변동으로 인한 리스크를 은행이 부담해야 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은행에 가면 '고객'이라는 말 뒤에 항상 '님'을 붙이며 마치 고객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은행들의 이런 행태를 보고 있으면 고객을 님이 아닌 '봉'으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들 수밖에 없다.

은행들의 금리경쟁에 대한 비판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늘 지적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금리를 내리면서 극으로 치닫는 치킨게임을 하면 결국 최종 피해는 고객에게 돌아온다. 은행은 고객을 위해 일정 정도 양보는 할 수 있어도 손해를 감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은행도 당연히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 업종이다. 하지만 그저 이익이 많이 남는 물건을 팔아 돈을 벌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금융기관이라는 위상에 걸맞은 마음가짐을 때때로 돌이켜보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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