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웅진 여파 구조조정제도 개선목소리 커...법원은 '감독'만, 채권단이 '회생주도'
웅진그룹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사태를 계기로 '기업 구조조정 제도'의 틀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금융권을 중심으로 커지고 있다. 부실 책임이 있는 기업 대주주나 경영진이 '경영권 유지'를 위해 법정관리를 악용하는 사례가 갈수록 늘고 있어서다.
금융권에선 특히 기업 구조조정 환경 변화로 IMF 외환위기 이후 효과적으로 작동해 온 구조조정 제도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런 맥락에서 워크아웃과 법정관리의 장점을 결합한 새로운 기업 구조조정 모델을 논의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채무동결·경영권유지', 기업에 절대유리 '법정관리'= 최근 동반 법원 행을 택한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 금융권에선 이번 사례를 부실화된 기업이 대표적으로 법정관리를 악용한 사례로 보고 있다. 법정관리 직전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의 웅진홀딩스 공동 대표이사 선임이나 석연찮은 웅진코웨이 매각 무산, 웅진홀딩스의 계열사 빚 조기 상환 등 잘 짜여진 각본에 따라 법정관리가 악용됐다는 정황이 뚜렷해서다.
법정관리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의 적용을 받아 채권금융회사(채권단)가 주도하는 워크아웃과는 여러모로 다르다. 법정관리는 법원이 통합도산법에 따라 회생 과정을 주관한다. 채무 조정 범위도 워크아웃보다 훨씬 넓다. 워크아웃은 채권금융회사의 빚만 동결, 조정되지만 법정관리는 모든 채권자의 채무를 대상으로 한다. 기업 입장에선 장점이지만 하청업체의 연쇄 도산 가능성 등 사회·경제적으로 미치는 파장은 더 크다.
이보다 더 중요한 건 기존 경영진의 경영권 유지 여부다. 기업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 대주주나 기존 경영진은 통상 경영권 포기각서나 주식처분위임장 등을 채권단에 낸다. 경영정상화 주도권이 채권단에 있다는 뜻이다. 반면 법정관리는 2006년 도입된 '관리인 유지'(DIP) 제도에 따라 횡령이나 배임 등 중대한 잘못이 없는 한 '관리인'으로 선임돼 계속 회사를 경영할 수 있다.
법정관리를 택하는 기업 수가 갈수록 늘고 있는 이유다.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 수는 2006년 76개에서 지난해 712개로 불과 5년 만에 10배 가까이 폭증했다. 최근 법정관리 신청 기업 중 기존 경영인이 관리인으로 선임되는 비율은 80~90%에 달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웅진그룹 윤 회장도 법정관리로 경영권을 유지한 채 재기를 노리려 한 것"이라고 말했다.

◇부실경영인 능력 검증절차 無, 법원 '전문성'도 문제= 문제는 현행 법정관리 제도가 기존 경영진을 관리인으로 선임하면서도 '실패한 경영인'의 경영능력을 검증하는 절차는 사실상 생략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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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단 관계자는 "법원이 DIP 제도를 고수하는 건 회사를 잘 알아야 신속한 경영정상화가 가능하다는 것이지만 경영능력 부재로 부실화에 책임이 있는 경영진을 기계적으로 관리인에 앉히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웅진그룹 채권단이 윤 회장의 관리인 선임을 극렬히 반대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기업경영 전문성이 부족한 법원이 회사를 관리한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채권 금융회사들은 채권자협의회를 구성하지만 경영에는 거의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주주권 행사도 극히 제한적이어서 모든 회생 과정을 기존 경영진과 전문성이 부족한 법원이 주도한다.
일각에선 법원이 법정관리 기업을 틀어쥐고 있다 보니 부실기업의 지주회사가 됐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지난달 말 현재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 판사 26명이 맡고 있는 법정관리 기업은 207곳에 달한다. 1명이 9개 기업을 관할하고 있는 셈이다.
◇"워크아웃·법정관리 결합", '법원=감독, 사후관리=채권단'= 기업들의 법정관리 선호 현상을 기업 경영과 구조조정 환경 변화에서 찾는 목소리도 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때는 국내 재벌기업 대다수가 어려웠다. 반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건설업과 조선업 등에서 부실기업이 쏟아져 나왔다. 건설과 조선은 특히 수주산업이라는 점에서 워크아웃 추진에 부적합한 업종으로 꼽힌다. 기업들의 법정관리 직행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한 배경이다.
국내 자본시장의 발달로 기업들의 직접 자금조달 비중이 커진 것도 워크아웃보다는 법정관리가 우선되는 이유다. 회사채나 CP(기업어음) 등은 워크아웃 채권자협의회에 구속되지 않은 비협약채권이다. 기업들이 이들 채무를 동결하려면 법정관리를 택하는 게 유리하다.
금융권에선 현행 구조조정 제도 악용 사례와 환경 변화 등을 두루 감안해 기업 구조조정 제도의 개선 방안을 심도 깊게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외환위기 이후 부실기업 회생제도로 제 역할을 해온 워크아웃과 법정관리 제도의 장점을 결합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부실기업 구조조정 계획은 통합도산법에 따라 모든 채권자가 참여해 확정하되, 정상화 과정에서 법원은 '감독'만 하고 채권단이나 별도의 전문관리회사가 사후관리를 책임지는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한 시중은행 기업 구조조정 전문가는 "워크아웃 제도의 장점인 부실기업 사후관리 시스템과 법정관리의 장점인 채권자에 대한 폭넓은 법적 구속력을 결합하는 형태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