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변화보다 포기 택한 신동규회장

[기자수첩]변화보다 포기 택한 신동규회장

정현수 기자
2013.05.22 17:39

"제갈공명이 와도 안 될 것"

신동규 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사의를 표명하며 남긴 '변명' 중 하나다. 농협중앙회의 관리·감독을 받아야 하는 농협금융지주의 특성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불만을 직간접으로 토로하며 제갈공명을 언급했다. 제갈공명처럼 뛰어난 인재가 와도 농협금융지주의 한계를 극복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처음부터 농협중앙회와 신 회장이 생각한 제갈공명의 의미는 달랐다. 농협금융지주는 지난해 3월 농협 신경분리 과정에서 새롭게 탄생한 조직이다. 농협금융지주에게 주어진 역할은 협동조합의 '수익 센터'였다. 신 회장 역시 평소 "농협의 수익 센터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고 공언해왔다.

당연히 농협중앙회 입장에서 농협금융지주는 관리·감독해야 할 조직으로 여겨졌다. 굳이 비유하자면 '왕을 보필하는 뛰어난 충신'으로서의 제갈공명을 원했다. 반면 농협금융지주, 특히 신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금융사로서 '왕을 뛰어넘는 존재'가 되고자 했다. 농협중앙회의 관리·감독이 간섭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는 신 회장의 개인 이력도 한 몫 했다. 재정경제부 출신의 신 회장은 수출입은행장과 전국은행연합회장 등을 거친 금융권의 '갑'이었다. 주로 지시를 하는 위치에 있었다. 신 회장이 지난해 농협금융지주 회장으로 선임됐을 때 그의 이력이 농협중앙회와의 갈등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결국 신 회장은 변화보다 포기를 택했다. 그리고 농협금융지주에 수많은 숙제를 남겼다. 당장 차기 회장 선출에 난항이 예상된다. 신 회장의 문제제기 직후 농협금융지주 회장 자리는 공공연하게 '을'로 자리매김됐다. 농협금융지주 내부에서도 "누가 회장으로 오려고 하겠냐"는 이야기들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신 회장은 지난 2011년 은행연합회장 시절에도 제갈공명을 언급한 적이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 총회에 참석했던 신 회장은 저축은행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며 "지금 상태로는 제갈공명이 와도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저축은행은 기나긴 고난의 시기를 거치고 있다.

"제갈공명이 와도 안된다"는 신회장의 '불길한 예언'이 저축은행처럼 농협에서도 현실화돼서는 안될 일이다. 농협의 '왕'은 농협중앙회장도 농협금융지주 회장도 아니다. 신하들끼리의 다툼이 농협의 주인인 농민과 조합원, 직원들에게 비수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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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수 기자

머니투데이 경제부 정현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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