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사업은 공적 성격이 강한 만큼 그에 걸맞는 ‘견고한 지배구조’가 중요하고,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최근 금융위에서 발표한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이하 ’모범규준‘으로 약칭함)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이사회·사외이사 구성의 ‘다양성과 전문성’강화, 둘째, CEO 리스크 차단을 위해 ‘임원후보추천위원회’신설, 셋째, 보상체계의 합리화와 공시, 넷째, 공시 등을 통한 지배구조 전반에 대한 시장의 평가강화, 다섯째, 자산규모 2조 이상의 금융회사에 전면적용 및 규준 불이행시 연차보고서를 통한 사유소명 강제 등을 주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모범규준’은 그 법형식과 절차 및 내용상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며, 이 자리를 빌어 몇 가지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모범규준의 성격에 관한 인식 문제이다. 금융당국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금융시장의 근본적 문제를 급조한 규정으로 ‘척결’할 수 있다는 중대한 오해를 한 것이 아닌가 염려스럽다. 한국적 금융풍토에서는 감독당국의 기준이‘사실상의 강제’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려하건대, ‘모범규준’은 관치만능 발상의 산물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선진제국에서는 모범규준이‘권고적 성격’의 지침으로 제시될 뿐이다.
다음으로, 법형식 및 적법절차에 관한 문제이다. 현재 모범규준의 근거법인 금융회사 지배구조 법률 제정안 5건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범규준을 먼저 제정, 서둘러 시행하는 것은 입법절차상에 문제가 있으며, 현행법상 금융회사의 의무가 아닌 사항을 상위법에 근거 없이 강제하는 것은 헌법상 경제활동의 자유와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라 할 수 있겠다. 요컨대 행정조치로 입법의 역할을 대행하는 꼴이어서, 위헌소지도 없지 않다고 판단된다.
비록 가이드라인 성격이라지만, 사실상의 구속력을 지닌 모범규준 역시 상위법령의 범위 내에서 제정되어야 하고, 그 세부 이행을 위한 기술적 사항만 규정함이 마땅하다. 필자는 모범규준의 조급한 모양새가 규제당국의‘의욕과잉’으로 선해하려 하지만, 모범규준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정부 스스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오해의 소지도 없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모범규준에 따르면 사외이사 중심의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설치하고 이를 통해 CEO를 추천해야 하며, CEO 자격요건, 후보군 발굴ㆍ관리ㆍ검증, 승계 계획 등을 금융사 내부 규정으로 두는‘CEO 경영승계제도’를 운영토록 요구하고 있다. 이는 이사 및 대표이사의 상법상의 선임권을 침해하는 기준일 뿐만 아니라, 그렇다면‘임원후보추천위원회’의 공정성·객관성은 과연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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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이런 기준이 과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큰 틀의‘전금융권’공동규범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볼 것인가? 보험업권의 저간의 사정에 비추어 보건대, 은행과 달리 실제 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대주주가 실질적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어, 모범규준의 CEO 승계프로그램은 실효성이 없고 주주 권리만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며, 이에 따라 경영전략의 탄력성을 약화시키고, 장기적 사업추진에도 장해요소로 작용할 것은 명약관화하다.
KB금융사태의 재발방지라는 금융당국의 고민은 이해하지만, 이번 모범규준이 사외이사의 선임권한을 오히려 강화시켜, 주인이 있는 보험 등 제2금융권에 또다른 ‘KB금융사태’를 재연시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요즘 보험산업은 "저출산·저금리"시대 새로운 성장 돌파구를 찾고 발전전략을 마련하느라 여념이 없다. 또한 핀테크(FinTech) 등 융복합화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정착하고 있는 상황에서, 회사 전략의 변화에 적합한 경영진으로의 신속한 교체, 보험권 내외를 아우르는 CEO 선임은 더욱 절실해졌다. 외국 사례를 보더라도 회사가 CEO를 포함하여 이사회 멤버에 대하여 회사자율의 자격요건을 검증하는 위원회를 운영하는 정도라고 한다. 금융선진국이 ‘자율규제(self-regulation)’기조를 충실히 유지하는 점은 시사하는 바 크다.
지배구조 문제에 대해 ‘정답이 없다(one fits all)’는 점은 필자도 공감한다. 그러므로 더더욱 금융사의 자율성과 금융사업의 업권별 차이점을 충분히 고려, 신중한 검토와 충분한 논의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더 이상 법외의 획일화된 규제로 제2금융권을 옥죄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금융산업 발전을 위한 기본이고 원칙이며 금융질서를 위한 금융위의 책무가 아닐까 생각한다.
끝으로, 시행시기에 관하여 일언한다. 지배구조 개선 문제는 금융산업의 지붕을 새로 덮는 일로서, 엄청난 각론적 문제를 수반한다. 금융산업의 지배구조를 바로잡는 거대한 공사를 한달도 안되는 초단기내에 마치겠다는 발상에는 실로 경악을 금할 수 없다. 화재사고 후의 남대문 보수공사가 부실로 드러나, 거듭하여 나라망신을 자초한 사례가 연상되는 건, 필자만의 기우일까?
총괄적으로 보건대, 이번‘모범규준’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깊은 성찰 없는 졸속시행으로 자칫하면‘교각살우’의 우를 범할 수 있음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규제권력의 힘을 과신한 설익은 규제는, 문제해결은커녕 시장의 혼란만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 당국의 깊은 성찰과 신중한 기준모색을 강력히 촉구한다. 칼은 칼집에 들어 있을 때가 가장 무서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