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뽑으러 왕복 50㎞?…은행 떠난 곳 지킨 상호금융, '당근' 줘야 산다

돈 뽑으러 왕복 50㎞?…은행 떠난 곳 지킨 상호금융, '당근' 줘야 산다

배규민 기자, 이창섭 기자
2025.11.17 08:00

[MT리포트] '대수술' 임박 상호금융, 지역소멸 방패 될까 (下)

[편집자주] 인구가 소멸해가는 지방에서 은행 점포도 빠르게 문을 닫았다. 그 빈자리를 지켜야 할 상호금융은 기업·부동산 편중 영업의 후폭풍으로 전례 없는 위기를 맞았다. 이제 상호금융은 '서민·지역 기반'이라는 본래 역할을 회복하기 위한 수술대에 올랐다. 상호금융이 지역소멸 방패 역할을 하며 정체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 알아본다.
돈 뽑으러 왕복 50㎞…인구감소지역 84곳 중 절반, 4대 은행 '0곳'
인구감소지역, 상호금융 점포 현황/그래픽=이지혜
인구감소지역, 상호금융 점포 현황/그래픽=이지혜

전국 인구감소지역 84곳 가운데 절반이 넘는 지역에서 4대 시중은행 점포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지방은행이 있지만 새마을금고·신협·농협 등 상호금융 약 1800개 점포가 사실상 마지막 금융망 역할을 하고 있다.

16일 머니투데이가 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행정안전부 지정 인구감소지역 89곳 중 부산 동구·서구·영도구와 대구 남구·서구 등 도시지역 5곳을 제외한 실제 분석대상 84곳 가운데 47곳(약 56%)은 4대 시중은행 점포가 전면 철수한 상태다. 농촌 지역에서는 통장 정리나 예금 상담을 위해 왕복 40~50km를 이동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으며 고령층 비중이 높은 지역일수록 교통편 부족으로 금융 접근성이 더욱 떨어지고 있다.

국내은행 점포 수는 지난 10여년간 빠르게 감소했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은행 점포는 2012년 7673곳에서 2023년 5747곳으로 25% 이상 줄었다. 코로나19 이후 최근 3년간 매년 약 300개씩 폐쇄됐으며, 폐쇄 지역의 상당수가 고령화율 20% 이상 군 단위 지역으로 나타났다. 연구원은 "일부 지역은 접근거리만 20km를 넘어 사실상 왕복 40~50km 이동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상호금융은 이러한 지역의 금융 공백을 사실상 전담하고 있다. 머니투데이가 확인한 인구감소지역 84곳의 올해 2분기 기준 점포 현황은 △새마을금고 363곳 △신협 200곳 △농협 1267곳으로 총 약 1830개 점포가 운영 중이다. 인천 옹진군 등 일부 지역에서는 농협이 사실상 유일한 금융기관 역할을 하고 있으며 주민의 연금 수령, 공과금 납부, 생활자금 대출 등 대부분의 금융 업무가 상호금융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단순한 금융 접근성을 넘어 지역 내 관계 유지·생활 지원까지 포괄하는 '생활금융' 기능을 상호금융이 사실상 맡고 있는 셈이다.

새마을금고는 전국 1181개 지역금고·3115개 점포를 운영하며 농촌 지역의 생활금융망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인구 2만명 미만 군 단위에서도 최소 한 곳 이상의 금고가 유지돼 지역금융의 마지막 보루로 평가된다. 새마을금고는 단순한 금융창구를 넘어 지역공동체 기반의 관계형 금융으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으며, 금융교육·생활지원·소규모 행사 등 주민 접점을 확대하고 복합문화공간으로 점포를 재구성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새마을금고 관계자는 "지역금고는 예금·대출 창구를 넘어 지역의 금융·문화·복지 플랫폼으로 발전해야 한다"며 "지역 특성에 맞는 관계형 금융을 확대하는 것이 지방소멸 대응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은행 점포 폐쇄를 단순한 효율성 문제가 아닌 지역 균형과 사회적 책임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점포폐쇄 사전영향평가 제도에 고령화율·이동거리 등 접근성 지표를 반영해 금융기관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미국의 지역사회재투자법(CRA)처럼 지역 공헌도를 평가체계에 반영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금융 접근성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 없이는 지방 금융 인프라가 급격히 약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고령화·인구감소·시중은행 점포 축소의 삼중고 속에서도 상호금융은 여전히 지역의 마지막 금융망을 지키고 있다. '돈보다 사람'이라는 설립 취지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돈 못 벌면 또 PF 간다… 상호금융, 가계·정책대출 '당근' 필요

-상호금융 "가계대출 우리가 했으면"

상호금융 정책자금 대출 취급현황/그래픽=윤선정
상호금융 정책자금 대출 취급현황/그래픽=윤선정

상호금융이 본래 정체성을 회복하려면 최소한의 수익성 보장이 필요하다. 상호금융이 돈을 벌지 못하면 위험한 부동산·기업 대출을 늘리는 과오를 반복할 수도 있다. 은행으로 쏠리는 가계대출 수요를 상호금융이 일부 분담하면서, 정책금융상품을 더 늘리도록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상호금융 업권은 정부의 정책금융상품 취급을 늘리고 있다. 새마을금고는 지난 상반기 2003억원의 서민금융 자금을 공급했다. 정책자금 대출을 많이 취급한 우수 금고를 선정하고 관련 사례를 전파하고 있다. 신용협동조합도 지난 5월부터 새롭게 '햇살론 플러스'를 전국 영업점에서 취급하며 정책자금 대출의 비중을 높이고 있다.

상호금융이 정책금융상품 취급을 늘리는 건 정체성 회복의 차원도 있지만 지금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PF(프로젝트파이낸싱) 위기가 한창이라 기업·부동산 대출은 더 취급하기는 어렵다. 가계대출을 늘려야 하지만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기조 때문에 이마저도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상호금융의 정책자금 대출 취급 비중은 여전히 미미하다. 지난 상반기 기준 새마을금고의 정책자금 대출이 전체 대출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4%다. 신협도 같은 기간 0.3%로 비슷한 수준이다. 직능중심 조합인 농협 상호금융이 그나마 4.4%로 높은 편이었다.

상호금융 업권은 적정 수준의 이익 창출을 위한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상호금융이 돈을 벌지 못하면 이익을 지역과 회원에게 환원할 수 없고, 다시 기업·부동산 대출을 늘리면서 정체성을 훼손하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 게다가 인구소멸로 인한 지방의 경기 침체 문제까지 더해져 상호금융의 수익성 악화는 앞으로 더 심각해질 일밖에 없다.

특히 시중은행으로 쏠리는 가계금융 수요를 상호금융이 일정 부분 가져와야 한다고 본다. 생산적 금융 대전환이라는 최근의 기조에 맞게 은행은 리스크가 큰 기업금융에 집중하고, 정책자금대출 등 저리스크 가계대출은 상호금융이 맡겠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가계대출과 정책자금 대출 수요를 은행이 모두 흡수하다 보니 우리는 공동대출 등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며 "상호금융이 주담대 취급을 늘릴 수 있게 지원해주고, 정책금융상품의 보증 비율을 상향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규모의 경제 실현을 위해 일부 조합과 금고를 대형화하자는 주장도 있다. 구정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상호금융기관이 정체성을 유지하되 과도하지 않은 적정 수준의 수익성과 성장성은 용인할 필요는 있다"며 "이를 위해 전략적 합병을 통해 대형화를 추진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는 방향을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배규민 기자

현장에 답이 있다.

이창섭 기자

안녕하세요. 머니투데이 이창섭입니다.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