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모뉴엘과 '이카로스의 날개'

[광화문]모뉴엘과 '이카로스의 날개'

송정렬 부장
2014.10.28 06:00

아버지 다이달로스는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아들 이카로스에게 달아주며 단단히 주의를 줬다. “너무 높이 날면 태양의 열기에 깃털을 붙인 밀랍이 녹아버릴 것이다.”

하지만 하늘로 날아오른 이카로스는 아버지의 충고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하늘을 날고 있다는 황홀감에 취해 더욱 힘차게 날개짓을 하며 더 높이 날아올랐다. 태양열에 밀랍은 녹아내렸고, 아카로스는 푸른 에게해로 추락했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이카로스의 추락'(1636년)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이카로스의 추락'(1636년)

매출 1조원의 고속 성공신화를 썼던 중견가전기업 모뉴엘이 지난주 법정관리를 신청했다는 소식에 문득 떠오른 그리스신화의 한 대목이다.

모뉴엘의 갑작스런 법정관리 신청은 사실 ‘추락’이나 ‘몰락’ 이외에 달리 표현할 말

이 없다. 그만큼 모뉴엘의 날개짓은 화려했다. 2004년 창업한 작은 기업 모뉴엘이 화려한 비상을 시작한 것은 2007년. 개발자 출신의 창업자 대신에 영업맨 출신의 박홍석 대표가 지분을 인수하며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다.

사실 모뉴엘의 성장속도는 무서울 정도였다. 2007년 240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은 그 다음해부터 매년 2~3배씩 꾸준히 성장했다. 지난해에는 매출 1조1409억원을 올리며 당당히 매출 1조 클럽에 가입했다.

이러한 성장신화는 해외에서 쏟아진 찬사와 감탄으로 인해 더욱 화려하게 덧칠됐다. 모뉴엘은 매년 세계 가전전시회(CES) 등 유수의 해외전시회에서 잇따라 혁신상 등을 수상하며, 삼성전자, LG전자 등 내로라하는 국내 대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심지어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모뉴엘을 ‘주목할 기업’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혁신의 대명사`, `고속성장의 신화`로 떠오른 스타기업 모뉴엘에 대해 그 누구도 ‘태클’을 걸지 못했다. 지금에서야 몇년치 재무제표만 살펴봐도 문제투성이 기업이었다는 때늦은 진단과 분석만이 난무할 뿐이다.

소수 거래처와의 계약을 통한 외상매출로 매출 1조원을 만들고, 그 외상매출채권을 할인해 은행에서 막대한 현금을 끌어다쓰고, 한해 1조 매출 기업의 영업활동을 통한 현금유입이 달랑 15억원에 불과한 점 등은 화려한 성장신화속에 깡그리 무시됐다. 고속성장을 구가하던 때나 법정관리를 신청한 지금의 모뉴엘 재무제표는 동일하지만.

결국 고속성장과 혁신기업이라는 모뉴엘의 화려한 날개 앞에 은행이나 보증기관의 이성은 마비된 셈이다. 허위서류에 대한 검증없이 보증기관은 보증을 서줬고, 가상매출에 대한 의구심 없이 은행은 돈을 대출해줬다.

아마도 모뉴엘 경영진 또한 처음부터 '한방 크게 해먹기 위해' 의도적으로 일탈을 선택하진 않았을 것이다. 외부의 찬사와 감탄은 실적과 성장에 대한 또 다른 압박으로 작용했으리라. 여기에 인간의 욕심과 탐욕이 결합되면서 경영진들은 일탈의 자전거에 올라탔고, 어느 순간 제어불능의 상태에 빠져들고, 결국 오늘의 사태가 발생했을 것이다. 마치 하늘을 나는 황홀감에 빠져 '저 죽을지 모르고' 더 높이 더 높이 날아올랐던 이카로스처럼 말이다.

언제나처럼 사건이 터진 후에야 모두 야단법석을 떤다. 금융감독원은 모뉴엘에 돈을 떼이게 생긴 은행들을 대상으로 긴급검사에 나섰다. 검찰도 조만간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부실한 은행권의 대출관행과 금융당국의 감독체계가 도마 위에 올라 질타를 당하리라. 하지만 ‘소잃고 외양간도 못 고치는 것’이 요즘의 세태이다 보니 이번에도 혹여 `일회성 쇼’로 끝나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앞선다.

사실 회계부정, 가공매출 등 부정으로 얼룩진 성공신화들이 무너질 때마다 선량한 다수의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들이 감당해야한 고통이 적지 않았다. 당장 이번 사태로 가장 우려되는 점도 어려운 벤처기업이나 중소수출기업들에 대한 금융지원 시스템이 한동안 꽁꽁 얼어붙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애먼 기업들이 죽어나가는 상황들이 벌어질 수 있다.

`진실`이라는 태양 앞에 언젠가는 녹아내릴 위험천만한 '이카로스의 날개'를 단 가짜 성공신화들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자체에 제대로 된 관리시스템을 구축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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