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누구를 위해 '열정'에 값을 매기는가

[기자수첩]누구를 위해 '열정'에 값을 매기는가

박계현 기자
2014.11.12 06:00

최저시급 기준보다 낮은 조건으로 인턴 고용 만연…개선노력 있어야

박계현기자
박계현기자

"평균 하루 10시간 근무는 기본이고 패션쇼 한 달 전부터는 야근·특근을 밥먹듯이 하지만 한 달에 딱 30만 원 받았습니다."

운 나쁜 한두 사람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닐까 싶었지만 패션노조 페이스북 페이지와 관련 기사 댓글에는 자신도 같은 일을 겪고 있다는 제보가 연이어 쏟아지고 있다. 인턴이라는 명목 하에 고용된 그들은 우리나라 패션산업 밑바닥에서 시장조사, 원단 배달, 샘플 배달, 재고관리, 조사, 입고, 매장지원(판매), 전화응대 등 온갖 '잡일'을 도맡았다. 그러나 손에 쥐는 돈은 많아야 월 30만~80만 원이었다.

패션업종 뿐 아니라 영화·연극계, 호텔 실습생 등 최저임금인 시급 5210원(2014년 기준)을 지키지 않는 일자리가 넘쳐난다.

네티즌들은 스펙쌓기용 '무급인턴'에게 주는 차비도 안 되는 돈에 '열정페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경력이 없으니', '너 아니고도 일할 사람은 많으니', 혹은 '사업이 어려우니' 등 갖은 핑계가 붙은 이 수당은 그야말로 고용주 마음대로 책정된다.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은 상태에서 제공하고 받아들인 일자리이기에 폭행·성추행 또는 산업재해가 발생해도 이들은 근로자로서 구제 받지 못한다. 고용노동부는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은 '무급인턴'에겐 근로자의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런 공고들에는 예외 없이 '시급 등 이것저것 따지려는 사람은 처음부터 지원하지 말라'는 단서조항이 달려 있다. 고용주들이 침묵을 강요하는 이유는 이런 식의 채용이 업계 내에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는 정직원 전환을 얘기하지만 다시 같은 채용공고로 얼마든지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배여 있다. 실제로 그런 식의 해고와 고용은 수없이 반복된다.

4대 보험도 없고 근로계약서도 없다는 고용조건을 받아들이면 '근로자' 지위를 부여받지 못하게 되고, 이 조건을 거부하면 고용이 되지 않으니 꿈은 있되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그나마 최근에 '패션노조가 출범되는 등 '불법고용'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던 젊은이들이 모여 드디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직은 익명으로 서로의 사례를 공유하는 단계에 불과하지만 침묵을 강요받던 이들이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이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기 위해선 20년 전에도 같은 일을 겪었다는 '어른'들의 지지와 독려가 반드시 필요하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