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주택을 찾아서
100년이 넘는 전통가옥과 마을,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와 보존의 중요성을 조명합니다. 오래된 집과 마을의 변화, 그리고 그 안에 깃든 삶을 소개합니다.
100년이 넘는 전통가옥과 마을,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와 보존의 중요성을 조명합니다. 오래된 집과 마을의 변화, 그리고 그 안에 깃든 삶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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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龍 두마리 솟아난 아름다운 정원 …'탄성'과 '탄식' 교차 - 조경뛰어난 '건재고택' 후손 사업실패로 소유권 넘어가 - 경매 나왔지만 2차 유찰뒤 취하…마을측 국가매입 건의 - 옆집 감찰댁도 공매 '감정가 20억' 땅값만 12억5000만원 "이 소나무는 일본인들이 20억원에 사가겠다고 한 겁니다."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외암민속마을 '건재고택' 정원에 있는 소나무 두 그루에 대해 이 마을의 주민이 해준 얘기다. 두 마리 용이 무릎을 꿇고 고택을 지키는 듯한 기묘한 형상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20억원 이상 준들 이런 소나무를 구할 수 있을까. 소나무뿐 아니다. 사랑채를 바라보고 왼쪽으로는 학 모양을 한 연못이 있는데 마을 뒷산인 설화산 계곡에서 흐르는 시냇물을 끌어들인 것이다. 집안에 작은 시냇물이 흐르는 것. 시냇물 중간중간에는 두세 걸음에 건널 수 있는 작은 무지개다리도 놓았다. 건재고택의 정원은 행정안전부의 '한국정원 100선'에도 선정된 이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
- 대지 605㎡·건물면적 99㎡… 조선시대 대표 '여름별장' - 1900년 이종상 건립 추정…2006년 5~6억원 들여 복구 서울 전통의 부촌 1번지 성북동. 현재 재벌총수들과 권력층이 모여사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이곳은 1세기 이전인 1890년대부터 왕족과 갑부들의 별장지대였다. 성북구 성북로 131(성북동 243-4)에 위치한 '이종석별장'이 대표적인 조선시대 별장으로 꼽힌다. 특히 삼양사와 대림산업 창업주의 별장 또는 요양처로 사용돼 1세기 동안 갑부들의 별장으로 사랑을 받은 곳으로 전해진다. 지금은 덕수교회가 인수해 영성수련원으로 사용한다. 이종석별장은 담장부터 별스럽다. 대부분 주택 담장은 바람을 막기 위해 쌓아올리기 때문에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기 쉽지 않지만 이종석별장은 담장을 회색 전벽돌로 쌓아올리면서 십자(+) 모양으로 바람구멍을 냈다. 이 주택이 여름별장으로 지어졌음을 쉽게 유추할 수 있는 근거다. 대문 쪽 담장에 바짝 붙어 서면 바람구멍 사이로 행랑채를 엿
- 성읍마을 전통가옥 5채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 - 국가 관리받는 일부 가옥 외부인 잘못 복원 지적 = 고상은가옥만 주민 거주 살림집으로 내부 바뀌어 돌, 바람, 여자가 많아 '삼다도'로 불리는 제주도. 이중에서도 돌이 가장 먼저 언급되는 이유는 눈에 가장 많이 띄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산과 바닷가, 논밭 등 제주도는 구멍이 숭숭 뚫린 검은 현무암 천지다. 제주도가 화산섬이니 용암이 굳어진 현무암이 많은 것은 너무 당연한 결과다. 최근 혁신도시 등 개발지역에서 쏟아져나오는 현무암은 주로 조경을 위한 재료로 쓰이지만 옛날 민가에선 통상 벽과 담의 주재료로 쓰였다. 제주도의 전통가옥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은 역시 성읍민속마을이다. 해안마을 표선리에서 8㎞쯤 올라간 곳에 자리잡은 성읍민속마을에는 △고상은가옥(건립연도 1879년) △한봉일가옥(19세기 중엽) △이영숙가옥(19세기말) △고평오가옥(1829년) △조일훈가옥(1901년) 5채의 초가가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됐다. 모두 100년
- 일제강점기 때 지은 2층 목조주택 - 다다미방·덧창등 원형 그대로 남아 - 개발보다 보존… 문화재청에 인계 - '울릉역사문화체험센터'로 재탄생 떠오르는 새해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울릉도. 하지만 2014년 새해맞이는 외지인에게 쉽게 내주지 않았다. 지난달 30일 새벽 5시15분, 서울역에서 첫 KTX를 타고 동대구역으로 향했다. 오전 7시30분 버스를 타고 경북 포항으로 출발했고 9시50분 울릉도행 배를 탔다. 오후 2시 울릉도 선착장에 내렸다. 집을 나와 꼬박 9시간이 걸렸다. 문제는 해상날씨였다. 새해맞이에 나선 외지인들은 언제 배가 뜰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당초 계획보다 하루 앞선 2013년 마지막날 오후 3시 배를 타고 포항으로 밀려나왔다. 울릉도는 그렇게 사람의 계획대로 들어가고 나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울릉도가 3무(도둑·공해·뱀) 5다(물·미인·돌·바람·향나무)의 섬이라고 하는데 도둑이 없는 이유가 바로 이곳에선 도둑질을 해도 이처럼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읍성민속마을은 매년 10월부터 12월까지 '초가지붕 이엉이기'로 분주하다. 낙안읍성을 방문한 지난 7일에도 이곳 주민들은 마을 곳곳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볏짚을 묶는 작업을 하거나 마을 쉼터 지붕 위에 이엉이기를 하고 있었다. 작은 방 한칸짜리 규모의 이엉이기를 하는 데도 6명의 인원이 투입됐다. 순천시내에서 낙안읍성마을로 들어가는 버스는 많지 않았다. 특히 63번 버스는 2시간마다 운행하는데, 주말 오전 이 버스는 서울 출·퇴근 시간의 '만원버스'를 방불케 했다. 2시간을 기다릴 수 없어서 차문 앞까지 빼곡히 탔다가 한 사람이 내리면 우루루 내려 할머니의 보따리짐을 서로 내려주고 다시 우루루 타는 일이 반복됐다. 굽이굽이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그렇게 조선시대로 거슬러 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 시간 같았다. 버스정류장에서 낙안읍성 안으로 들어서기 전 이미 눈앞에는 초가집 여러 채가 펼쳐졌다. 그중 담 너머로 무화과나무가 보이고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 초가
일제강점기에 본격적으로 형성된 전주한옥마을은 1977년 전통한옥을 보존하기 위한 '한옥보존지구'로 처음 지정됐다. 당시 서울 압구정동에는 아파트가 올라갔는데, 전주에 왔다가 한옥마을을 본 대통령이 "보기 좋다"고 말해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됐다는 얘기도 있다. 1987년에는 '제4종 미관지구'로 변경 지정되면서 이때부터 한옥보존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97~98년에는 그동안 주민들이 끊임없이 제기해온 재산권 침해 등의 이유로 미관지구에서 해제됐다. 이때 한옥을 헐고 양옥으로 지은 곳도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99년에는 다시 한옥마을에 대한 보존의지가 강화되면서 '전통생활문화특구'로 지정돼 기본사업계획을 작성했다. 2002년에는 그동안 제기된 재산권 침해 등의 민원을 고려해 한옥 개·보수 등에 관해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전주한옥보존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2003년에는 가장 한국적이고 살기 좋은 생활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해 '전통문화구역' 지구단위계획을 지정고시했다. 200
"전주한옥마을에는 540여채의 한옥이 조성돼 있습니다." 지난해 500만명의 방문객이 다녀갔다는 전주한옥마을. 정해진 시간마다 방문객을 대상으로 한옥마을 곳곳을 안내하는 해설사는 "항공에서 볼 때 기와지붕이 540여채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전주시 완산구 교동·풍남동 일대 29만6330㎡에 조성된 전주한옥마을에는 한옥 543채, 비한옥 165채 등 708채에서 995가구가 살고 있다. 500채 넘는 한옥이 있지만 100년 넘는 전통한옥은 없었다. 전주한옥마을에서 대표 한옥으로 내세우는 '학인당'조차 전통한옥이 아니다. 학인당은 1905년부터 2년8개월 동안 백미 8000가마의 공사비와 4280명의 공사인원을 투입해 1908년에 완공했다. 일제강점기(1930~40년대) 이전에 지어졌지만 내부를 살펴보면 유리로 만든 여닫이문, 세면장, 목욕탕, 화장실까지 실내에 갖춰 전통한옥으로 보기 어렵다. 조선말 개화기 최신식 전통한옥으로 소개되는데 실상은 일제의 영향을 많이 받은 근대 한옥이라는
서울시가 근현대 문물을 보전하기 위해 선정하는 미래유산에 아파트 10곳이 후보에 올라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가장 오래된 충정아파트와 동대문아파트를 비롯해 △힐탑아파트(용산구 한남동 1-44) △성요셉아파트(중구 중림동 149) △서소문아파트(서대문구 미근동 215) △회현 제2시민아파트(중구 회현동1가 147-23) △여의도시범아파트(영등포구 여의도동 50) △개포주공아파트(강남구 개포동 660-1) △반포본동아파트(서초구 반포본동 812) △정동아파트(중구 정동 18-1)가 미래유산 후보로 꼽혔다. 하지만 재정 여건상 시가 아파트를 매입해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위 열거된 아파트들은 대부분 입지가 좋아 매매가격도 비싼 편이다. 이를테면 131가구의 면적이 동일한 동대문아파트의 경우 한채당 2억원으로 계산해도 262억원의 매입비용이 필요하다. 시 관계자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보존가치가 높은 서울시내 근현대 문화유산을 선정하고 있지만 자발
"고택이 쓰러져도 아름다운 건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편리성 때문에 현대재료로 보수한 전통가옥을 보면 너무 안타깝습니다." 강원 고성 왕곡마을에서 만난 해설사 이광수씨(사진)의 말이다. 그는 왕곡마을 집성촌을 이룬 양근함씨, 강릉최씨와 관계가 없다. 왕곡마을 인근에 거주하며 이곳으로 매일 출퇴근을 하는 외부인이다. 하지만 왕곡마을에 대한 애정만큼은 주민 못지않다. 그는 젊은 시절 건설업계에서 일한 만큼 고택을 바라보는 시각과 지식도 남다르다. 특히 전통가옥 보수와 관리방법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씨는 "초가집은 지붕뿐 아니라 황토벽이 중요한데 지금은 편하게 황토색 '몰타르'로 보수를 하고 있어 사실상 뼈대만 남아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제대로 된 황토벽은 짚과 우뭇가사리 등을 넣고 발효해야 한다. 이렇게 정성을 들여 황토벽을 만들면 짚에서 나오는 섬유질 때문에 비를 맞아도 허물어지지 않는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그런데 '몰타르'로 보수하면서 이러한 자연이 주는 깊
여름휴가철마다 인파가 몰리는 동해안. 속초해수욕장에서 동해대로를 따라 북쪽으로 21㎞ 정도 올라가면 송지호가 나오는데 인근에 전통한옥마을이 숨어있다. 강원 고성 왕곡마을이다. 왕곡마을은 조선시대 북방식 전통가옥 원형이 잘 보존돼 있어 2000년 1월 중요민속문화재 제235호로 지정됐다. 특히 초가집이 많다. "혹시 이곳이 영화 '웰컴투동막골' 촬영지(평창군)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찾아간 왕곡마을에서는 기와집 한 채의 기와 교체공사가 한창이었다. 기와를 지붕 위로 나르기 위해 기중기도 동원됐다. 왕곡마을보존회에 따르면 이곳의 주택은 대부분 150년된 가옥이며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돼 정부로부터 매년 10억원의 지원을 받는다. 고택 유지·보수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왕곡마을은 중앙에 흐르는 개울을 따라 양쪽으로 'ㄱ'자형 기와집 20채와 초가집 50채가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다. 가옥과 가옥 사이에는 비교적 넓은 텃밭이 있어 텃밭을 경계로 가옥들이 분리돼 있다. 이곳은 양근
"17세 꽃다운 나이에 처음 이집에 종업원으로 왔어. 그 때 80세 정도 돼 보이는 일본 할아버지가 당신 백일 사진을 들고 찾아왔는데 그 할아버지가 살았던 집이라고 하더라고. 사진을 보니까 정말 이 집 맞더라고. 그러니까 130년도 넘은 집이지." 서울 중구 명동길 87-6(연면적 290.58㎡)에 지하 1층~지상 2층으로 세워진 목조주택(이하 '수향')의 이야기다. 이 집이 '수향'이란 한정식집으로 운영된 지도 최소 55년의 세월이 흘렀다. '수향'을 운영하는 이유순 사장(72)은 "1958년 처음 '수향'에 왔을 때는 어린 종업원이었지만 이후 1975년 4월 서른넷이 돼 다시 와서는 사장으로 일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38년의 세월을 '수향'과 함께 울고 웃으며 한평생을 보낸 셈이다. '수향'이 정확히 언제 건축됐는지, 언제 음식점으로 바뀌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건축물대장에 따르면 '수향'의 주인이었던 박 할머니 앞으로 소유권이 등재된 것은 1961년 7월이며, 2010년 돌
"이 동네 고택 중에서는 가장 늦게 지어진 한옥입니다. 저도 주민들 중에 막내고요.(웃음) 종손이어서 어렸을 때부터 이 마을에 놀러오긴 했지만 터를 잡은 것은 5년전 입니다. 대구 아파트에서 살다가 종친이 이 고택을 기증해주셔서 낙향했죠." 경북 영주시 무섬마을의 무송헌종택(1923년) 앞마당에서 만난 19대 종손 김광호 씨(67세)의 이야기다. 개량한복을 입고 앞마당 잔디를 손질하던 김 씨는 일손을 멈추고 선뜻 고택 안으로 청하며 이같이 말했다. 대청마루에 앉으니 열어놓은 뒤 창문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여간 시원한 게 아니다. "시원하죠? 겨울에는 외풍이 있어 좀 춥지만 여름에는 정말 시원합니다. 또 물이 마을의 삼면을 둘러 흐르고 있어 정말 아름다운 마을이죠." 무섬마을은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마을을 휘감고 있어 안동 하회마을을 연상케 한다. 언뜻 보기에 민속촌처럼 꾸며놓은 마을 같지만 실제 집주인들이 살고 있는 전통마을이다. 현대식 건물도 눈에 띄지만 100년 이상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