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한달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다양한 이슈를 다룹니다. 사고의 경과, 구조 활동, 피해자와 가족의 이야기, 정부와 사회의 대응, 그리고 국민적 슬픔과 연대의 모습을 심층적으로 전합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다양한 이슈를 다룹니다. 사고의 경과, 구조 활동, 피해자와 가족의 이야기, 정부와 사회의 대응, 그리고 국민적 슬픔과 연대의 모습을 심층적으로 전합니다.
총 30 건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직후 인터넷 카페와 게시판,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는 세월호 침몰 사고의 원인과 정부의 대처를 둘러싼 괴담이 난무했다. 이러한 움직임과 달리 인터넷 공간에서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유언비어를 검증하고, 정부의 적극적인 대처를 요구하는 움직임도 활발하게 일어났다. 정부는 유언비어 유포를 엄벌하겠다고 천명했고, 발 빠르게 유언비어 초기 유포자를 적발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사고 발생 일주일 만에 세월호 관련 악성 유언비어 87건을 적발해 15명을 검거했다. 경찰청이 지난 7일까지 검거한 세월호 관련 유언비어 유포자는 모두 39명으로 이중 구속된 사람은 2명이다. 유언비어 유포가 기승을 부리자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유언비어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사회적 혼란을 야기시키는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이라며 "거짓말과 유언비어의 진원지를 끝까지 추적해 그들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관련 유언비어 중 사회혼란을 부추길만한 내용은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39분. "누나, 배가 이상해. 쿵 소리 났어. 그동안 못해줘서 미안해. 엄마한테도 전해줘. 사랑해. 나 아빠한테 간다." #2014년 4월16일 오전 10시17분. 여객선 '세월호' 선내에서 단원고 학생의 마지막 카톡이 전송됐다. 그 즈음 전해진 또 하나의 카톡. "기다리래. 기다리라는 안내방송 이후 다른 안내방송을 해주지 않아요." 지난달 16일 진도 인근 맹골수도 해역에서 침몰한 세월호. 아이들이 마지막 순간 택했던 연락 수단은 평소 자신들이 즐겨 쓰던 카카오톡(이하 카톡)이었다. 한 학생이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막 해경이 왔대." 카톡으로 아이들과 연락해 왔던 실종자의 형은 카톡으로 동생의 안부를 물었다. "시키는대로만 빨리 움직이면 된다. 데이터 터지면 다시 연락해 형한테." 확인 알림창에 표시된 숫자 '1'은 끝내 지워지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 사랑한다는 표현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못해줘서 미안해. 엄마한테도 전해줘. 사랑해." SN
# 1995년 6월29일 목요일 오후. 그날은 너무도 평화로웠다.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14층 복도에서 바라본 주택가 사람들의 일상은 한없이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얼마 후 구급차의 다급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사망자 502명, 실종자 6명'. 단군이래 최악의 인재로 기록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신축한지 채 5년이 지나지 않은 건물인데 안전기준이란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어요. 부도덕한 건물주는 건축비를 아끼려고 대충 설계했더군요. 공사 중간 계획에 없던 증축 요청에 건설사가 위험하다고 거절하자 아예 건설사를 바꾸는 등 불법 용도변경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뤄졌습니다." 사고 당시 서울지검 형사1부 건축담당 주임 검사였던 이상권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은 19년전 최악의 사고를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 사장은 지난달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대한민국의 안전의식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9년이 지났지만 낯설지 않은 기억. 데자뷰(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검찰 출석기한 마지막 날인 16일 오전 7시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신도들이 모인 경기 안성시 금수원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밤새 찬송가를 부르며 추위와 싸운 신도들의 얼굴에서 지친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정문 입구부터 길 양측에 두 대열로 길게 늘어선 신도들은 이날 오전 방송에 맞춰 15분여간 스트레칭을 하며 밤새 쌓인 피로와 싸웠다. 일부 방송사들도 일찍부터 나와 카메라를 세우고 촬영을 준비했다. 일본 방송사의 취재진들도 보였다. 전날 저녁까지 금수원 입구 주변으로 뻗어있던 차량 대열은 절반 이상으로 크게 줄었다. 구원파 교회 측에서 주변에 있던 신도들의 차량을 모두 금수원 안으로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오전 8시가 되자 남성 신도의 찬송가 독창이 방송으로 흘러 나왔다. 불과 1시간 사이 취재진이 크게 늘어나면서 금수원 정문 앞에 모든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유 전 회장이 금수원 안에 머무를 가능성에 대해선 사정당국마다 의견이 엇갈린다.
"두유차 좀 드릴까요? 몇 잔 드릴까요? 맛있게 드세요. 고생이 많습니다." 세월호 침몰사고 30일째인 15일 오전 6시, 이른 새벽부터 따뜻한 두유 한 잔으로 팽목항의 아침을 깨우는 사람이 있다. 세월호에 탑승했다 실종된 안산 단원고 양승진 교사(57)의 동생 양모씨(54)는 지난 주말부터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두유차가 실린 수레를 끌고 팽목항에 늘어선 천막마다 '사랑의 두유'를 전달하는 얼굴엔 미소가 감돌았다. 한 시간 반쯤 지났을까, 한 바퀴를 돈 그는 "어제도 오늘도 '완판'"이라며 뿌듯해했다. 밤샘 근무와 봉사가 일상인 팽목항 사람들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은 정을 나누고 힘을 북돋아주는 매개체가 된다. "가만있으면 뭐 해요. 온종일 바다만 바라보고 있으면 답답하잖아요. 여기 있으면 하루가 엄청 길어요, 엄청 긴데… 그걸 이겨내려면 늘어지지 않고 이렇게 뭔가를 해야 돼요." 팽목항에서의 일상은 바쁘게 돌아간다. 낮이나 밤 정조시간엔 성실히 대책본부의 브리핑을 챙기고, 구조자
선장 이준석씨와 세월호의 선박직 선원들이 배를 탈출한 순간에도 승객들을 구하며 선원의 책임을 다한 '진짜 선원'들이 있었다. 세월호의 사무장 양대홍씨는 배가 기울자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배가 많이 기울었다"며 "통장에 돈이 있으니 그것으로 아이들 등록금하라"고 말했다. 깜짝 놀라 상항을 묻는 아내에게 양씨는 "지금 (단원고) 아이들을 구하러 가야한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양씨는 15일 주검이 돼 돌아왔다. 22살의 나이로 배에 오른 매니저 고 박지영씨는 사고 당시 선장의 퇴선명령을 기다리다 못해 직접 학생들에게 "배에서 나가라"라고 외쳤다. 승객들이 방치되는 와중에도 154명이 살아남은 것은 양씨와 박씨 등 승무직 선원들의 판단 덕분이었다. 한명의 학생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구명조끼를 양보했다. "언니도 어서 나가야죠"라고 말하는 단원고 학생에게 "너희들 다 구하고"라며 "선원이 마지막이야"라고 말했다. 가슴까지 물이 차오르는 순간에도 한 명의 학생이라도 더 살
#1 안산에서 26년을 거주한 시청 공무원 A씨(45)는 세월호 침몰사고 첫날부터 30일째 팽목항 상황실을 지키며 봉사하고 있다. A씨의 딸은 고등학교 2학년생. 이번에 딸의 친구 가운데 5명이 사고를 당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다른 공무원들과 달리 교대도 고사하고 일하던 그는 어깨통증이 심해져 결국 연휴 때 이틀 동안 집을 다녀왔다. 그는 "치료받으러 잠깐 안산으로 올라갔을 때 딸 손을 잡고 외식을 가는데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내가 지금 이러는 게 사치인 것 같고…"라며 한숨지었다. #2 승무원 B씨(31·여)는 사고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울하고 관련 뉴스를 보면 눈물이 난다. 뉴스를 안 보려고도 해봤지만 그럴수록 마음 한켠에 미안함이 커졌다. B씨는 "실종자 가족들은 더 힘들고 외로울 텐데 나는 너무 내 생각만 하는 게 아닌가, 내가 외면하면 안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2014년 4월 16일, 그날 이후 우리 삶은 달라졌다. 세월호에 승선한 476
(서울=뉴스1) 박응진 기자 = 불과 1달전 이날 아침 우린 모두 공범이었다.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에서 세월호와 함께 침몰하는 대한민국호를 멀뚱히 쳐다보며 내가 아닌 누군가가 수학여행 길에 나선 어린 그들을 구할 줄, 구한 줄 알았다. 금요일인 16일 전국이 맑고 초여름 날씨를 보이는 가운데 남부지방은 밤 한때 구름이 많겠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전국 아침 최저기온은 8도에서 17도로 어제보다 조금 낮겠고 낮 최고기온은 22도에서 30도로 어제보다 조금 높겠다. 바다의 물결은 동해중부먼바다에서 1.5~3.0m로 점차 높게 일겠고 그 밖의 해상에서는 0.5~2.5m로 일겠다. 동해안에는 밤부터 17일까지 파도가 높아 방파제나 해안가 도로를 넘는 곳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진도 인근 해역은 대체로 맑은 가운데 풍속 5~9m/s, 파고 0.5~1.0m 등으로 전망된다. 일부 내륙에는 아침에 안개가 끼는 곳이 있을 것으로 예상돼 교통안전에 주의가 요구된다. 기상청 관계자는 "강원도영동에
'낯설음에 대한 용서할 수 없음, 실망스러움에 대한 인정할 수 없음, 비겁함에 대한 치 떨림, 거절당함에 대한 납득할 수 없음, 부당함에 대한 조건 반사 … …. 우리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정답 이외의 것이 너무나 엉뚱하고 실망스러울 때에 분노를 느끼고 치욕스러워한다. 특히 정의롭지 못함에 대한 분노는 역사를 바꾸는 힘이 될 때도 있다.' 김소연 시인이 쓴 '마음사전'(마음산책 펴냄)이란 책에서 '분노'를 찾아보면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한달. 세월호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마음은 애처로움과 구슬픔에서 노여움과 원망, 분개와 치욕으로 변하며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다. 온 국민이 함께한 그 슬픔과 분노는 기다림을 상징하는 '노란리본'을 통해 새로운 문화와 역사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2005년에서 2009년 저는 단원고에서 가장 행복한 교사였습니다. 너무 착하고 예쁜 제자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단원고가 이런 불행을 겪다니 슬픔의 눈물은 그치질 않습니다. 사랑합니다.
전 국민을 분노와 슬픔, 충격에 몰아넣은 세월호 참사 30일. 그러나 누구보다 다양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건 실종자 가족들이었다. 이들은 충격과 슬픔뿐 아니라 환희와 절망, 기대와 분노, 부러움과 외로움에 이르기까지 감정의 격변을 감내해야 했다. 초유의 오보 사태와 더딘 구조·수색이 초래한 뼈아픈 결과다. #충격 지난달 16일 오전 9시20분쯤,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해상에서 500여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조난신호를 보냈다는 '속보'가 뉴스를 장식했다. 침수로 인해 선박이 20도 기울었다는 것. 국민들은 경악했지만 실시간으로 뉴스를 지켜보며 구조를 기대했다. 그러나 배는 오전 10시쯤 90도 이상 기울더니 급격히 뒤집혔다. 온 나라가 '충격'에 휩싸였다. #환희 오전 11시쯤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라는 긴급속보가 나왔다. 많은 가족들이 가슴을 쓸어내렸고 학교 관계자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대책본부는 '오후 1시 현재 368명 구조'라고 발표했다. 충격에 빠졌던
지난달 15일 밤 9시, 짙은 안개가 낀 인천 연안터미널에서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 등 승객 476명을 태운 세월호가 제주로 출항했다. 다음날인 16일 오전, 세월호는 출항한 지 12시간이 채 되지 않아 진도 인근 맹골수도 해역에서 침몰하기 시작했다. 왼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배는 빠른 속도로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6825톤급 대형 여객선인 세월호는 단 150분만에 바다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오전8시48분~9시7분: '쿵' 소리와 함께 선체가 기울다 세월호에 이상이 생긴 것은 16일 오전 8시48분이다. 맹골수도에서 5도 변침을 하던 중 '쿵' 소리와 함께 배가 기울기 시작했다. 같은 시간 객실에 있던 승객들도 배의 이상을 느꼈다. 배에 타고 있던 단원고 2학년 고 최덕하군은 곧바로 119에 신고했다. 8시52분, '선내에서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이 처음으로 울려 퍼졌다. 최군의 신고를 접수받은 전남소방본부 상황실은 8시54분 목포해경에 신고 내용을 전달했다. 8시5
세월호 참사로 해양경찰의 무능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15일 검·경 합동수사본부(본부장 안상돈 검사장) 등에 따르면 수사팀은 조만간 해경에 대한 수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해경이 사고 발생 직후 적절한 구조활동을 펼쳤는지 따져보겠다는 것. 해양안전을 책임지는 해경이 수사대상으로 전락한 셈이다. ◇'총체적 부실'로 점철된 초동대응=세월호 사고 수사 결과 해경의 부적절한 초동대처가 피해를 키운 정황들이 속속 드러났다. 합수부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에 따르면 사고가 발생한 지난달 16일 오전 9시46분쯤 배는 61도까지 기울었다. 9시46분은 선장 이준석씨(69)를 비롯한 선박직 선원들이 배를 빠져나와 해경 경비정 123정에 몸을 실은 시간이다. 당시 배가 기울긴 했지만 이동이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해경이 사고 후 공개한 상황보고서에 따르면 해경 헬기 B511호는 9시30분 현장에 도착했고, 123정도 곧이어 도착했다. 그러나 해경은 현장에 도착해 1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