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무슨일이?
과거 오늘, 우리 사회와 세계에서 일어난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 문화, 정치적 변화를 되짚어봅니다. 잊혀진 이야기부터 잘 알려진 순간까지, 오늘의 역사가 전하는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세요.
과거 오늘, 우리 사회와 세계에서 일어난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 문화, 정치적 변화를 되짚어봅니다. 잊혀진 이야기부터 잘 알려진 순간까지, 오늘의 역사가 전하는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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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1월 미국 해군 잠수함 노틸러스가 첫 운항을 시작했다. 노틸러스가 이전 잠수함과 다른 것은 연료였다. 이전까지 잠수함은 디젤을 이용한데 비해 노틸러스엔 우라늄이 쓰였다. 가압수형 원자로 1기, 증기 터빈 2개가 탑재된 세계 최초의 핵잠수함이었던 것이다. '앵무조개'를 의미하는 노틸러스는 기준 배수량 3530톤, 길이 97.2m로 크기 또한 당시 최대였다. 노틸러스라는 이름은 1870년 J 베른의 공상과학소설 '해저 2만마일' 나오는 가상의 잠수정에서 딴 이름이다. 해저 2만마일에 등장하는 신비의 잠수함 노틸러스는 바다속 세계를 탐험하는 희망의 상징이었다. 미 해군이 최초의 핵 잠수함에 이 이름을 붙인 것도 수행할 임무와 탐험에 대한 기대가 반영된 것. 노틸러스는 첫 운항부터 한 번에 9만6558㎞를 이동했다. 디젤 잠수함이었다면 연료만 약 1100만 리터가 필요했을 것으로 추산된다. 핵 연료 시스템이 탑재된 노틸러스호는 잠수함 안의 원자로가 만들어내는 전기로 터빈을 돌려
1972년 독일 뮌헨 하계 올림픽에서 북한에 뒤진 대한민국은 4년 뒤 열릴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에 집중했다.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건국 후 최초로 태극기를 앞세우고 올림픽에 출전한 뒤 한 번도 목에 걸지 못했던 금메달도 따야하는 목표도 있었다. 임원 22명과 선수 50명으로 선수단이 꾸려졌고 레슬링과 유도, 남녀 배구, 복싱, 사격에 출전하게 된다. 1976년 7월 17일 몬트리올 올림픽이 개막했지만 열흘이 넘도록 기대하던 금메달은커녕 동메달조차 나오지 않았다. 다행히 7월 28일 유도 80kg급의 박영철이 동메달을 따내더니 30일엔 유도 63kg급 장은경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자배구도 헝가리를 꺾고 동메달을 획득한다. 대회 마지막날 전까지 금메달 소식이 들리지 않으면서 첫 금메달 획득이 멀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대회 마지막 날인 40년 전 오늘(1976년 8월 1일) 레슬링의 양정모가 대한민국의 올림픽 첫 금메달을 따낸다. 양정모는 이날 오전 몬트리
"내 죽음이 헛되지 않고 이 나라의 민주 발전에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이 같은 유언을 남긴 죽산(竹山) 조봉암 선생은 57년 전 오늘(1959년 7월31일) 사형장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를 구제하기 위한 변호인단의 재심 신청이 대법원에 의해 기각된 지 18시간 만이었다. 조봉암의 죄목은 국가보안법 위반죄와 간첩죄였다. 1959년 2월20일 대법원은 조봉암이 대남 간첩 양명산(본명 양이섭)을 통해 간첩행위를 했다는 명목으로 조봉암과 양명산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선고의 주요 근거는 양명산이 2심에서 허위라고 번복했던 자백이었다. 61세의 나이로 사형대에 오르기 전까지 조봉암은 대한민국 정치계의 유력한 지도자였다. 독립운동가 출신이자 공산주의자였던 그는 해방 후에 중도 통합노선을 걸었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초대 농림부장관, 국회부의장까지 맡으며 이승만 전 대통령과 함께 일하기도 했다. 이후 조봉암은 제2대, 제3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며 대권에 도전했다. 특히 1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국가백년대계의 근본인 교육의 기틀을 바로잡고 우리 사회의 큰 병폐로 문제되고 있는 과열 과외 현상을 근절하기 위해 교육정상화 및 과열과외해소방안을 만들어 시행에 옮기기로 결정했습니다. 국영기업체 임직원을 포함한 모든 공직자와 기업인, 의사, 변호사 등 사회지도급 인사들은 솔선수범해 자녀에 대한 어떤 형태의 과외공부도 금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를 위반하는 공직자는 사회정화 차원에서 공직에서 물러나게 할 것이며 기타 지도급인사에 대해서도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공사립 학교에 재직하는 모든 교수와 교사의 과외수업행위를 일체 금지하며 위반자는 교직을 떠나도록 할 것입니다. 사설학원의 중고등학교 재학생 수강을 금하며 이를 위반하는 학원에 대해선 인가취소 등 제재조치를 가할 것입니다. 1980년 7월30일 전두환 신군부의 '7·30 교육개혁조치'가 내려졌다. 이 중 하나가 과외 금지 조치다. 과외 과열로 계층간 위화감이 심각하다는 이유로 과외금지조치가 실시됐다.
35년 전 오늘(1981년 7월29일) 7m나 되는 실크 웨딩드레스를 입은 한 여성이 영국 세인트폴 대성당 앞에 마차를 타고 나타났다. 수줍은 표정을 짓던 스무살을 갓 넘긴 유치원 보모 출신의 이 여성은 '다이애나 스펜서'였다. 그와 결혼하는 상대는 영국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찰스 왕세자였다. 무더운 날임에도 수많은 군중이 세인트폴 대성당 앞에 모였다. 유서깊은 귀족 가문 출신이었지만 평범한 20대 삶을 살고 있던 여성이 차기 영국 왕과 결혼하는 '신데렐라 스토리'를 놓칠 순 없었던 것. 결혼식 당일 런던에만 왕세자 부부의 마차 행진을 보기 위해 200만여명이 모였다. 언론매체들은 촬영하기 좋은 장소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을 펼쳤다. '세기의 결혼식' '동화 속 결혼식'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7억5000만명이 이 행사를 TV로 지켜봤다. 영국 왕실 결혼식인 만큼 행사는 호화롭게 꾸며졌다. 결혼식 행사에만 쓰인 비용을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1억1100만달러(약 1250억원)에 달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왕위 계승권자였던 페르디난트 대공이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현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 시청 앞에서 암살당했다. 범인은 세르비아계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 그로부터 한 달 뒤인 102년 전 오늘(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를 향해 포탄을 쏘며 진군한다. 이미 닷새 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에 사실상 선전 포고인 최후통첩을 알렸다. 유럽 전체를 피바다로 만든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이다. 표면적으론 암살이 전쟁의 불씨를 당겼지만, 유럽 제국주의 국가의 영토 확장과 군비 팽창의 야욕이 맞부딪친 결과였다. 세르비아의 동맹국인 러시아는 곧장 총동원령을 내렸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동맹인 독일은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3일 뒤 독일이 룩셈부르크 국경을 넘어 서쪽으로 진격하면서 세르비아를 지원하는 프랑스와 벨기에의 동맹국인 영국이 참전한다.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동맹이 전
2011년 7월 25일 저녁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불안정한 대기가 중부지방에 머물기 시작하면서 수도권과 강원 영서 지역에 집중적으로 많은 비가 쏟아졌다. 강물이 넘치고, 주택이 침수되면서 전국적으로 피해신고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매년 장마철에 발생해왔던 수준의 재해였다. 하지만 5년 전 오늘(2011년 7월 27일) 우리나라 중부지역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면서 막대한 피해가 속출했다. 27일 하루 동안 서울에 내린 비는 301.5mm로, 7월 일 강수량 최대치를 경신한 것. 이전까지의 기록은 1987년 7월 27일(294.6mm)이었다. 서울 도심이 물바다가 되면서 하천 범람과 하수구 역류 등이 곳곳에서 발생했다. 특히 서초구 우면동에선 폭우로 인해 지반이 약화되면서 산사태가 일어나 피해가 컸다. 이날 오전 8시 40분 '쿠쿠쿵' 하는 소리와 함께 우면산의 토사가 우면동 형촌마을과 전원마을 아파트와 주택을 덮쳤다. 순식간에 발생한 일이었다. 16명이 사망하고 51명이
6·25전쟁이 발발한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인근 마을 주민 수백명은 북한군의 공격을 피해 노근리 철교 밑 '쌍굴다리'로 몸을 피했다. 66년 전 오늘(1950년 7월 26일) 이 일대에서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려던 미군 제1기갑사단 7기병연대 예하 부대가 갑자기 피난민들에게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북한군이 이들 속에 숨어서 들어온다는 이유로 이들 부대에 "미군의 방어선을 넘어서는 자들은 무조건 적이므로 사살하라. 여성과 어린이는 재량에 맡긴다"는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미군은 500여명의 피난민들에게 전투기를 이용해 머리 위로 포격을 퍼부은 것은 물론 기관총을 쏘아댔다. 피난민들이 철교 밑으로 피신하자 미군들은 뒤쫓아가 이들을 사살했다. 이날부터 29일까지 3일간 계속된 무차별 폭격과 사격으로 135명이 숨을 거두고 47명이 부상을 입었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실제 희생자는 400명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학살은
전 세계의 관심이 영국의 한 평범한 부부가 낳은 아이에 집중됐다. 아이는 2.6킬로그램으로 작은 편이었지만 건강했다. 결혼한 지 9년 만에 아이를 얻은 부부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기자들은 이 금발의 작은 여자 아이를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시험관 아기'라는 별명을 얻은 이 아이는 전세계에서 태어나자마자 유명해진 '스타'가 됐다. 38년 전인 1978년 7월25일, 세계 첫 시험관 아기 루이스 브라운이 태어났다. 이 아이의 탄생으로 아이를 갖기 어려웠던 부부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루이스 브라운의 부모인 레슬리 브라운과 존 브라운 부부는 9년 동안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원인은 루이스의 엄마인 레슬리의 나팔관 막힘 현상이었다. 하지만 레슬리는 포기하지 않고 아이를 갖기 위한 치료를 받았다. 그러던 우연치 않게 로버트 에드워즈 박사와 패트릭 스텝토 박사가 인공수정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에드워즈 박사는 1960년대부터 인간수정에 대해 연구했다. 스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브이!" 위의 가사를 멜로디 없이 그냥 읽는 이는 없을 것이다. 40년 전 오늘(1976년 7월24일) 서울 충무로의 대한극장과 청계천 세기극장에서 '로보트 태권브이(V)' 주제가가 처음으로 울려 퍼졌다. 이날은 마침 초등학교의 여름방학이 시작된 첫 토요일이었다. 어린이들은 키 56m, 몸무게 1400톤에 달하는 거대 로봇 태권브이에 열광했다. 개봉일 대한극장 앞에는 3.5m의 로봇 모형까지 세워져 영화를 보기 위해 몰려든 어린이들을 즐겁게 만들었다. 영화는 당시 서울에서만 약 18만명의 관객을 모으는 진기록을 세웠다. 태권도 유단자인 주인공 '훈'이 태권브이와 혼연일체가 되어 태권도 기술로 적을 물리치는 권선징악의 이야기는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언제든 크게 따라 부르고 싶은 힘찬 멜로디의 주제가 역시 인기에 한몫했다. 어린이들은 너나할 것 없이 영화에 등장하는 태권브이, 훈이, 영희, 메리, 김 박사, 카프의 흉내를 내며
어린이 : 어린 아이를 대접하거나 격식을 갖추어 이르는 말.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어린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여기지 않던 시절. 아이들은 자신의 이름보다도 '애녀석' '아해놈' '어린놈'과 같은 천대어로 불리는게 익숙하던 때가 있었다. 사람이라기 보다 부모 소유의 물건으로 여겨지던 때였다. 소파 방정환 선생은 이런 아이들에게 '어린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붙여줬다. 민족의 장래이자 미래의 주인공인 어린이들은 보호받아야 할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처음으로 주창한 사람이 그였다. 방정환이 이 같은 인식을 갖게 된 것은 부친의 영향이 크다. 상인이었던 그의 부친은 사업 실패에 따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천도교(동학)인이 됐고 방정환 역시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게 됐다. 그의 장인은 천도교의 3대 교주인 손병희다. 방정환은 인간 평등 사상을 강조하는 천도교의 교리에 따라 어린아이도 사람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게 됐다. 결혼 후에는 이 같은 가치관을 더 적극적으로 실행할 수
5년 전 오늘(2011년 7월 22일) 오후 3시 30분쯤(현지시간)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의 중심부에 위치한 17층짜리 정부청사 건물 부근에서 폭파 사건이 발생했다. 대파된 자동차가 근처에서 발견되면서 차량 폭탄테러로 판단됐다. 폭파가 발생한 정부청사의 맨위층에는 총리부가 있었지만, 마침 노르웨이 총리는 집무실이 아닌 자택에 있었다. 이 폭발로 현장에서 8명이 사망하고, 7명의 중상자를 포함한 15명이 부상했다. 그나마 휴가철이라 폭발 장소 인근에 평소보다 사람들이 적었던 것이 위안거리였다. 도심 내 추가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곧장 오슬로 시내로 통하는 모든 도로가 폐쇄됐다. 경찰은 지역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하지만 테러의 진짜 목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오슬로에서 북서쪽으로 약 30km 떨어져 있는 우토야 섬에선 노르웨이 노동당 청년부의 집회가 열렸는데, 10대 청소년들이 약 650명 참가하고 있었다. 정부청사 폭파 사건 직후, 경찰관 제복을 입은 한 남성이 섬에 상륙해 폭파 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