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년 전 오늘… 피난민, 미군 총포 앞에 희생당하다

66년 전 오늘… 피난민, 미군 총포 앞에 희생당하다

박성대 기자
2016.07.26 06:02

[역사 속 오늘]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의 현장였던 경부선 철도교. 당시 탄환의 흔적이 남아있다./사진=위키피디아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의 현장였던 경부선 철도교. 당시 탄환의 흔적이 남아있다./사진=위키피디아

6·25전쟁이 발발한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인근 마을 주민 수백명은 북한군의 공격을 피해 노근리 철교 밑 '쌍굴다리'로 몸을 피했다.

66년 전 오늘(1950년 7월 26일) 이 일대에서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려던 미군 제1기갑사단 7기병연대 예하 부대가 갑자기 피난민들에게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북한군이 이들 속에 숨어서 들어온다는 이유로 이들 부대에 "미군의 방어선을 넘어서는 자들은 무조건 적이므로 사살하라. 여성과 어린이는 재량에 맡긴다"는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미군은 500여명의 피난민들에게 전투기를 이용해 머리 위로 포격을 퍼부은 것은 물론 기관총을 쏘아댔다. 피난민들이 철교 밑으로 피신하자 미군들은 뒤쫓아가 이들을 사살했다.

이날부터 29일까지 3일간 계속된 무차별 폭격과 사격으로 135명이 숨을 거두고 47명이 부상을 입었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실제 희생자는 400명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학살은 가해자들의 은폐로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고 묻혀 있었다. 가해자들이 군인인 탓에 진급 누락을 우려해 진실을 덮으려 했기 때문이다. 노근리사건 피해자인 정은용씨가 1960년 주한미군소청사무소에 손해배상과 공개사과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이 사건이 외부에 처음 알려졌다.

하지만 당시 미군 측은 소청을 기각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한 학살이 다시 세상에 알려진 건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라는 제목의 실록 소설이 출간되면서다. 1994년 4월 정은용 노근리양민학살대책위원회 위원장이 유족들의 비극을 묶어 출간한 이 책으로 '노근리 학살'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언론의 취재가 시작됐고, 학살의 진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미 양국 정부도 1년 3개월 간의 진상조사를 시작한다. 결국 2001년 1월 당시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노근리 사건에 대한 유감표명 성명서를 발표한다. 하지만 사건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발생했다고 밝히면서 학살의 고의성을 부인한다.

그나마 2004년 사건의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하는 법안인 '노근리 사건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사망 150명, 행방불명 13명, 후유장애 63명 등의 희생자가 인정받게 된다. 2011년 10월엔 국비 191억원을 들여 학살 현장 인근 13만2240㎡에 '노근리 평화공원'이 조성돼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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