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무슨일이?
과거 오늘, 우리 사회와 세계에서 일어난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 문화, 정치적 변화를 되짚어봅니다. 잊혀진 이야기부터 잘 알려진 순간까지, 오늘의 역사가 전하는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세요.
과거 오늘, 우리 사회와 세계에서 일어난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 문화, 정치적 변화를 되짚어봅니다. 잊혀진 이야기부터 잘 알려진 순간까지, 오늘의 역사가 전하는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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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였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과 이론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1952년부터 본격화된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 개발 경쟁에 대해 문제를 공감했다. 1954년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당시 베트남과 전쟁을 하고 있던 프랑스에 수소폭탄을 공급할 용의를 내비치고, 장제스에게도 같은 제안을 하면서 핵에 대한 위기는 확산됐다. 핵에 대한 공포를 정확히 예상했던 지식인들은 이 같은 상황을 두고만 볼 수 없었고,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61년 전 오늘(1955년 7월 9일) 러셀이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그는 런던 칵스톤 홀에서 '핵무기 없는 세계와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호소하는 선언'을 발표한다. 러셀이 선언문의 초안을 작성했고, 아인슈타인을 시작으로 조지프 로트블래트·막스 보른·프레데릭 졸리오 퀴리·히데키 유카와 등 9명이 서명을 통해 동의했다. 이들 대부분은 자신들의 학문적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한 저명한 지식인이었다. 선언문에는 "향후 세계대전이 일어날 경우 틀림없이 핵무기가 사용될
1994년 6월 전쟁 일촉즉발까지 갔던 남·북한은 7월 들어 외교 협상 국면으로 급전환된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 이후 성사된 첫 남북정상회담이 같은 달 25일로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7월 9일 낮 12시 북한의 조선중앙방송 등 주요 언론들이 갑자기 특별방송을 시작했다. 화면에 등장한 아나운서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수령님께서 심장혈관의 동맥경화증으로 치료를 받아오다가 겹쌓이는 과로로 인해 7일 심근경색이 발생했고 심장쇼크가 합병돼 모든 치료를 다했으나 심장쇼크가 악화돼 8일 오전 2시 사망하셨습니다"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세계에 알린다. 22년 전 오늘(1994년 7월 8일) 북한의 절대권력자 김일성 국가주석이 82세의 일기로 사망한 것. 1912년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태어난 그는 1931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해 항일 투쟁에 뛰어들었다. 그러다가 1945년 소련군과 함께 북에 진주해 194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된 후 초대 수상에 취임한다. 36세의
1999년 2월 동계아시안게임을 성공적으로 치른 강원도는 대회 폐막식에서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 의사를 표명한다. 전북 무주와의 유치 경쟁 끝에 2002년 1월 개최지 자격을 얻은 강원도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유치 신청도시로 공식 통보하고 홍보에 나선다. 계획서만 제출한 채 경기장의 예정지인 허허벌판에서 IOC 조사평가위원회의 실사를 받았지만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연출한다. 하지만 개최지로 선정될 수 있는 과반수의 지지를 얻지 못해 2차 투표가 진행됐고 밴쿠버에게 53대 56으로 패한다. 가능성을 확인한 평창은 재도전에 나선다. 첫 도전 당시엔 부정적이던 시각도 바뀌면서 각계각층의 지원이 이어졌다. 2014년 대회 유치에서의 경쟁상대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와 러시아 소치였다. 경쟁은 이전대회보다 더 치열했다. 평창은 1차 투표에서 또다시 1위를 차지했지만 과반수의 지지를 받진 못했다. 소치와 벌인 2차 투표에서 잘츠부르크 표를 잡지 못한 평창은 결국 4년
1776년 독립선언을 한 미국은 1783년 파리조약에서 독립이 승인될 때까지 자국 화폐가 없었다. 당시 미국에선 영국·프랑스·스페인의 지폐와 금화는 물론 주(州)마다 발행한 화폐까지 혼용돼 쓰였다. 각 주는 정치 동맹으로 느슨하게 묶여 있을 뿐이었다. 결국 1785년 13개 주 대표가 참여하는 대륙회의(연방의회 전신)가 열리게 됐다. 주 대표들은 화폐 단일화에는 쉽게 합의했지만 어떤 화폐로 단일화를 해야되는지에 대해서는 격론을 펼쳤다. 무게나 길이·질량 등 도량형은 영국의 기준을 받아들였지만 파운드화를 쓰기엔 무리가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 국민들의 영국에 대한 반감도 있었지만 중남미와의 교역을 통해 스페인 '다레라' 은화가 널리 통용되면서 이를 무시하고 파운드화만을 사용할 순 없었다. 결국 231년 전 오늘(1785년 7월 6일) 모든 주에서 승복하자는 의미로 만장일치의 형식을 갖춰 미국의 기준통화를 '달러화'로 채택한다. 보조단위인 '센트'와 십진법 체계도 함께 도입된다. 달러는
19세기 유럽의 의사들은 우울증을 겪는 환자에게 수영을 권했다. 수영이 치료 목적뿐 아니라 일종의 놀이로 인기를 끌면서 수영복은 '유럽의복사'에까지 등장한다. 여성의 수영복은 일상복과 큰 차이가 없었다. 여성들은 수영할 때 코르셋 위에 드레스를 입고 물에 들어갔다. 1900년대 초 수영복으로 팔렸던 의상도 몸의 굴곡이 평상복보다 더 드러났을 뿐 긴 소매와 무릎 밑으로 길게 내려오는 바지로 이뤄졌다. 그러던 중 수영복 역사의 한 획을 그은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70년 전 오늘(1946년 7월 5일), 파리 모리토르에서 열린 수영복 대회에서 당시 유럽사회를 깜짝 놀라게 한 수영복이 등장한 것이다. 대회장을 가득 메운 1만여명의 사람들 앞에 한 여성 모델이 등과 배, 다리를 훤히 드러내고 손수건만한 천으로 가슴과 국소부위만 가린 채 나타났다. 프랑스 디자이너 루이 레아드(1897~1984년)가 개발한 파격적인 수영복의 등장에 관중들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레아드는 수영복을 선보이
"저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저는 야구장에서 17년을 뛰었고 팬들로부터 칭찬과 격려만 받았습니다" 77년 전 오늘(1939년 7월4일) 미국 뉴욕 더블헤더 사이에 경기장. 응원으로 떠들썩해야 할 경기장에 엄숙한 분위기가 흘렀다. 6만명 넘는 관중의 시선은 한 남성에게 쏠렸다. 그들이 주목한 남성은 루 게릭. 뉴욕양키스의 전설적인 야구선수다. 이날 그의 은퇴식이 열렸다. 루 게릭은 12년 간의 선수생활을 마감하는 소감을 밝히며 팬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가 여전히 경기장에서 뛰길 바라는 팬이 대다수였지만 루 게릭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대뇌와 척수의 운동신경 세포가 파괴돼 근육이 점점 힘을 잃어가는 근위축성 측삭 경화증을 앓아 더이상 경기를 뛸 수 없게 됐기 때문. 뉴욕 맨해튼에서 독일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루 게릭은 1923년 MLB 입성 이후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은퇴한 1939년까지 뉴욕양키스에서 뛰었다.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실력을 바탕으로 2
우리가 TV를 통해 여배우의 립스틱 색깔을 보고, 유니폼 색깔로 스포츠 팀을 구별하게 된 건 88년 전 오늘(1928년 7월 3일) 컬러TV 방송이 최초로 송출된 이후부터다. 컬러TV방송은 스코틀랜드 출신 발명가 존 로지 베어드의 손에서 탄생했다. 비누와 젤리 사업을 하다 실패한 그는 다양한 색깔로 반짝이는 네온등을 보며 컬러TV를 만들어 큰돈을 벌 계획을 세웠다. 그가 제작한 TV는 요즘 전자식 TV와는 다른 기계식 TV로, 24개의 작은 구멍이 뚫린 원판을 1분에 600번 회전시켜 이를 통과한 빛을 전기적인 신호로 바꿔 영상을 만드는 형태다. 그는 삼원색을 활용한 원판으로 컬러영상을 구현해냈고, 이를 '텔레바이저'라고 불렀다. 그는 텔레바이저를 이용해 세계 최초로 컬러TV 방송을 송출한다. 영국 BBC방송은 1929년 9월 베어드가 발명한 텔레바이저를 이용해 TV방송을 실시했다. 그러나 곧이어 발명된 '브라운관'을 이용한 전자식 TV에 밀려 존 로지 베어드의 기계식 TV는 역사
1994년 미국 월드컵을 앞두고 펼쳐진 남미 지역예선 최고의 팀은 콜롬비아였다. 콜롬비아는 '전통의 강호'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홈에서 2대 1, 원정에서 5대 0 완승을 거두며 지역예선에서 단 한 차례도 패하지 않고(4승 2무) 월드컵에 나선다. 플레이메이커였던 카를로스 발데라마, 남미 최정상급 공격수였던 파우스티노 아스프리야, 미드필더 프레디 링컨 등이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했고, 대표팀을 이끌던 프란시스코 마투라나 감독의 용병술은 이들의 능력을 극대화시켰다. 탄탄한 수비력과 화려한 공격력으로 많은 축구 전문가들이 미국 월드컵에서 돌풍을 일으킬 팀으로 콜롬비아를 꼽길 주저하지 않았다. '축구 황제' 펠레도 월드컵 전부터 "콜롬비아가 우승후보다. 브라질은 월드컵을 갈 자격도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콜롬비아 국민들의 기대가 커질 만큼 커졌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예선 조별경기 1차전부터 콜롬비아는 루마니아에 1대 3으로 완패한다.
홍콩 일대는 1840년 아편전쟁 이후 몇 차례의 불평등조약 끝에 영국의 조차지(租借地·협정에 의해 유상 혹은 무상으로 빌려주는 영토)가 된다. 영국은 홍콩 빅토리아항을 교두보로 아시아 대륙을 공략하면서 홍콩에 영국식 정치·문화·경제 시스템을 이식한다. 공산국가 수립 후 국제적으로 고립돼 있었던 중국도 외화획득 창구로 홍콩을 활용하면서 무리한 탈환을 시도하지 않았다. 이에 홍콩은 경제적 발전과 함께 동·서양 문화가 융합된 '동양의 진주'로 거듭난다. 그러다 홍콩 내 영국계 자본들이 1997년으로 합의됐던 신계 지역 조차만기일이 다가오면서 영국 정부에 중국과의 홍콩의 장래에 대한 협상을 촉구하기 시작한다. 결국 1982년 9월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베이징을 방문하면서 중국과 영국 간 공식 협상이 막을 연다. 협상 끝에 대처 총리와 자오쯔양 중국 총리는 1984년 12월 1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협정에 정식 서명을 하면서 중국으로의 홍콩 반환이 사실상 확정됐다. 이날 맺은 협정엔
경기 화성군(현 화성시)에 위치한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은 1990년대 수도권 소재 유치원·학원·초등학교의 수련회 장소로 잘 알려진 곳이었다. 겉으로 보면 '철골구조 벽돌건물'로 보여 정상적인 인허가를 받은 청소년 수련시설로 여겨졌다. 하지만 실상은 콘크리트 1층 건물 위에 52개 컨테이너를 얹어 2~3층 객실을 만든 임시구조물이었다. 청소년 수련원으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고 여러 위험요소를 지닌 장소였다. 17년 전 오늘(1999년 6월30일) 비극이 일어났다. 이날 오전 1시30분쯤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건물 3층에서 화염이 솟구쳤다. 곧장 119상황실에 긴급신고가 접수됐고 소방차가 출동했지만, 소방서에서 현장까지의 거리는 70㎞나 됐다. 이날 씨랜드 수련원에는 △서울 소망유치원생 42명 △서울 공릉미술학원생 132명 △경기 군포 예그린유치원생 65명 △경기 부천 열린유치원생 99명 △화성 마도초등학교 학생 42명 등 어린이 497명과 인솔교사 등 총 544명이 있었다. 불길
1990년대 초 당시 단일매장 매출 기준 업계 1위 백화점인 서초동 삼풍백화점은 당초 아파트 상가 및 행정동으로 지어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삼풍그룹은 이곳에 백화점을 지을 수 있게 용도변경을 신청했고 서초구청은 곧장 허가를 내준다. 이어 쇼핑공간을 넓히기 위해 기둥을 설계보다 25%나 줄이고 불법으로 한 층을 더 올리는 설계 변경까지 손쉽게 이뤄진다. 임의적인 용도변경, 부실시공과 불법 설계변경이 물흐르듯 진행될 수 있었던 건 '부패' 때문이었다. 구청장들은 건설업체에 뒷돈을 받고 속전속결로 허가를 해줬고, 이를 감시했어야 할 공무원들과 엔지니어들도 뇌물 앞에 침묵했다. 그렇게 1989년 12월1일 삼풍백화점은 화려한 개장식을 열고 영업을 시작했다. 준공이 5년도 채 안된 1994년 건물 내부에선 균열과 뼈대 구부러짐 현상이 조금씩 일어나면서 재앙의 징조를 보였다. 기둥과 벽이 약하게 지어졌는데도, 매장을 무리하게 확장하고 옥상에 냉각탑까지 얹으면서 건물이 견뎌야 하는 무게만 늘었
"나는 몽상가가 아닙니다. 하지만 나는 기적을 믿습니다. 그래야만 합니다."(테리 폭스가 마라톤을 시작하기 전 단체에 지원을 요청한 편지) 캐나다 위니펙에서 태어난 테리 폭스는 고등학교 시절 올해의 육상선수로 선정될 만큼 촉망받던 운동선수였다. 사이먼 프레이져대 체육학과에 진학한 후에는 교내 농구팀 주전으로 활동했고 대학 졸업 후 체육교사가 되는 꿈도 꿨다. 이 소박한 꿈은 어느날 갑자기 산산조각이 났다. 그의 나이 만 18세에 골육종(무릎뼈에 생긴 암) 진단을 받고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게 된 것이다. 16개월간의 항암 치료와 재활 훈련 끝에 그가 얻은 건 다리 대신 의족. 그 순간 그에겐 다시 해야할 일이 생겼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암 환자들을 지켜보면서 암에 대한 더 깊은 연구와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테리 폭스는 암으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새로운 꿈을 품게 됐다. 자신이 의족을 달고 캐나다를 횡단하는 마라톤을 해 암 연구를 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