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전 오늘…'비키니 수영복'에 유럽이 발칵

70년 전 오늘…'비키니 수영복'에 유럽이 발칵

박성대 기자
2016.07.05 06:00

[역사 속 오늘] '다리노출=외설' 분위기 속 파리 수영복 대회에 등장한 '비키니'

1946년 7월 5일 프랑스 디자이너 루이 레아드가 개발한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미셜 베르나르디니./사진=위키피디아
1946년 7월 5일 프랑스 디자이너 루이 레아드가 개발한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미셜 베르나르디니./사진=위키피디아

19세기 유럽의 의사들은 우울증을 겪는 환자에게 수영을 권했다. 수영이 치료 목적뿐 아니라 일종의 놀이로 인기를 끌면서 수영복은 '유럽의복사'에까지 등장한다.

여성의 수영복은 일상복과 큰 차이가 없었다. 여성들은 수영할 때 코르셋 위에 드레스를 입고 물에 들어갔다. 1900년대 초 수영복으로 팔렸던 의상도 몸의 굴곡이 평상복보다 더 드러났을 뿐 긴 소매와 무릎 밑으로 길게 내려오는 바지로 이뤄졌다.

그러던 중 수영복 역사의 한 획을 그은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70년 전 오늘(1946년 7월 5일), 파리 모리토르에서 열린 수영복 대회에서 당시 유럽사회를 깜짝 놀라게 한 수영복이 등장한 것이다. 대회장을 가득 메운 1만여명의 사람들 앞에 한 여성 모델이 등과 배, 다리를 훤히 드러내고 손수건만한 천으로 가슴과 국소부위만 가린 채 나타났다.

프랑스 디자이너 루이 레아드(1897~1984년)가 개발한 파격적인 수영복의 등장에 관중들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레아드는 수영복을 선보이기 나흘 전 있었던 미국의 공개 핵실험 장소의 이름을 따서 수영복에 '비키니'라는 이름을 붙였다. 핵폭탄 실험으로 세계의 눈과 귀가 쏠린 산호섬의 이름을 수영복에 그대로 쓰면서 관심을 이끈 것.

당시 유럽에서의 '다리 노출'은 '외설'로 여겨졌다. 때문에 레아드는 비키니 수영복 모델을 구하기 위해 카바레 스트립 댄서인 미셜 베르나르디니를 설득해야 했다. 당초 우려와는 반대로 베르나르디니는 대회출전 후 유명인사가 됐다.

레아드는 흥행을 예감하고 곧바로 상표 등록을 했지만 돈을 벌지는 못했다. 극소수의 육체파 여배우를 제외하면 비키니 수영복을 입으려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당시 대중에게 비키니 수영복은 생소했다.

게다가 바티칸은 비키니 수영복을 '부도덕한 옷'이라고 비난했고, 이탈리아와 스페인, 포르투갈에선 아예 법적으로 착용을 금지시켰다. 소련도 '퇴폐적 자본주의의 또다른 샘플'이라고 깎아내렸다.

비키니는 프랑스 여배우 브리짓 바르도가 1956년 영화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에 입고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비키니에 대한 대중의 인식도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비키니는 히피 문화가 전세계적으로 퍼지면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대중화됐다.

우리나라에 비키니가 도입된 배경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1961년 (주)한국샤크라인의 전신인 백화사가 '상어표'라는 브랜드로 투피스 수영복을 내놓은 것이 국내 첫 비키니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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